뭔 검사 예약장이 뭐 그리 많은지. 꼼꼼한 사람 아니랄까 봐 시간별로 정리해 야무지게 챙겨 온 엄마를 보곤 웃음이 났다. 어김없이 지하철을 타고 수다를 떨며 병원에 도착했다.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병원의 지리는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넓은 병원에 화장실이 어딘지, 검사실이 어딘지, 굽이쳐 있는 복도를 따라 헤매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우리도 그중 하나였다. 20대인 나도 이런데, 엄마가 만약에 혼자 왔다면? 같이 올 수 있는 날은 무조건 같이 와야지. 다짐했다.
엄마가 받은 많은 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바로 유방촬영이다. 유방촬영은 압박을 통해 진행된다. 유방을 납작하고 균일하게 압착시킬수록 방사선 노출은 덜하고, 보다 확실한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의 즉 유방을 매우 납작하게, 판때기로 가차 없이 눌러버린다는 것. 그래서인지 유방촬영을 옆에는 ‘통증’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따라붙는다.
검사실은 고함 소리로 가득했다. 엄마도 잔뜩 겁을 먹고 검사실로 들어갔는데, 익숙한 목소리의 고음이 들렸다. “못하겠어요, 더 못하겠어요.” 소리가 들렸지만 엄마는 나오지 못했다. 수십 분이 지난 후에야 엄마는 눈에 눈물이 잔뜻 고인채 탈출할 수 있었다. 온몸에 심하게 긴장을 한 탓인지 안 그래도 하얀 피부가 창백하게 질려있었고, 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가 걷는 것도 어려워했다. 검사 후 진료 날까지 기다리는 기간 동안 엄마는 몸살에 시달렸다. 그리고는 다시는, 다시는 받고 싶지 않은 검사라는 말을 반복했다.
어김없이 찾아온 대기와의 싸움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유방에 문제가 있다는 뜻인가. 다들 언제 자신의 병을 알게 되었을까? 저 사람은 항암하고 있나 보다. 가발인가? 엄마도 암은 아니겠지…
짧은 생각들을 따라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새엄마의 차례가 되었다.
변한 것 하나 없는 어두운 방, 주황색 불빛 아래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검사결과를 보니까요, 유방암이네요.”
“…”
“여기 이 하얀색 동그라미 보이시죠? 이게 암입니다. 그래도 동그랗게 모양이 예쁜 편이에요. 심하면 항암을 해서 크기를 줄인 다음 수술을 하는데, 환자분께서는 수술을 하고 항암을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
“수술이 지금 너무 밀려있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습니다. 두 달 정도 뒤로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할 것 같고요. 수술 후 가슴 재건술 여부를 고민하셔야 합니다. 나가계시면 옆 방에서 간호사 분이 불러서 설명해 주실 거예요.”
유방암이었다. 암에 걸려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선택지들이 엄마를 기다리며 기웃기웃 튀어나와있었다. 바로 옆으로 방을 옮기니 간호사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암을 제거하게 되면 한쪽가슴이 없어져요. 그래서 재건을 할지 말지, 할 거면 어떤 유형으로 하실지 다음 진료까지 선택하시면 되세요"
그저 익숙 한 일이라는 듯 메뉴얼을 읊는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게 별 일이 아닌건가? 헷갈렸다.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한다. 그 나쁜 사건 자체는 의미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그 일을 받아드려야하는 남은 현실이 더 괴롭게 만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