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해단 Oct 04. 2023

발견

"딸, 이리 와서 엄마 가슴 좀 만져 봐."


내가 엄마 가슴을 왜 만져!,라는 말이 튀어나오기 직전, 엄마의 말이 이어졌다.


"목욕탕에 갔는데, 나라시 이모가 엄마 가슴에 뭐가 만져진대."





엄마는 '건강한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취미로는 암벽등반과 백두대간을 하고 있었다. 술과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고 단 음식은 잘 먹지 않았다. 나에게 엄마가 암벽등반을 한다는 것은 큰 자랑이었다. 여름이면 푸르른 절벽에 매달려있는 사진을, 겨울엔 하얀 빙벽에 매달려있는 사진을 볼 수 있었다. 40대 후반의 아줌마가 하는 취미로서 꽤나 멋지지 않은가?


엄마는 큰 병원을 이리저리 알아보고는, 알아서 척척 진료 예약을 잡았다. 부산에서 제일 유명하다면 유명한 대학병원의 유방외과였다. 첫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엄마와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세상에 아픈 사람 왜 이렇게 많아?


예약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오후 예약시간보다 넉넉히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전진료환자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게 늘어진 소파의 사람들은 긴장된 표정, 지친 표정, 익숙하다는 표정 등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소파의 공간은 곧바로 부족해졌고, 자리싸움으로 이어졌다. 환자가 앉아야 하는데 보호자가 왜 앉아있냐느니, 잠시 화장실 다녀올 테니 자리 좀 맡아달라느니, 바글바글거리는 사람들로 정신 차릴 틈이 없었다. 좁은 장소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진을 다 뺐지만, 더 고통스러운 건 대기시간이었다. 한 사람씩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남겨진 모두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마이크에서 나오는 반가운 이름에 엄마와 나는 벌떡 일어나 한껏 미소를 띠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또 좌절. 들어온 방도 대기실이었다. 또 시작된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바깥과 분리되어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엄마, 뭔가 큰 일 아닐 것 같아. 그냥 몽우리 아냐?"

"나도 그럴 것 같아."

키득거리며 함께 셀카를 찍고 수다를 떨었다. 땡땡이치고 데이트하러 나온 기분이었다.


드디어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진료실은 고요했으며, 어두웠고, 주황색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이리저리 문진을 하고 바로 옆 커튼 속으로 들어가 엄마의 가슴을 이리저리 진찰하였다. 그리고 하는 말이 "검사해 봐야 안다."는 것.


아, 이 무슨 지루한 예고편인가. 하루를 투자한 것 대비 별다른 소득 없이, 5분도 되지 않는 진료를 끝내고 진료실을 나왔다. 1층 예약창구로 내려가 각 검사마다의 예약시간을 잡고 진료날도 다시 잡았다. 엄마가 일을 빼야 할 날도 늘어갔다.





이전 12화 아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