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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단 Oct 04. 2023

아빠

장례식장이 생소했다. 검정 상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도 익숙지 않았다. 사람이 하늘로 떠났는데,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많은 선택지만이 남아있었다.


장례식장 음식은 뭘로 할까요? 육개장으로 할까요 시래깃국으로 할까요? 얼마를 추가하시면 회무침도 추가됩니다. 입관하실 때 옷은 무엇으로 할까요? 제사상은 하실 건가요? 

...


누군가에겐 이 것 또한 직업이고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자각했다. 눈물을 뒤로한 채 많은 선택을 이어나가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입관하는 날엔 누워있는 아빠가 너무 야속했다. 아니, 내가 야속했다. 으레 모두가 그렇듯 남겨진 사람들이 하는 후회를 똑같이 했다.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릴걸. 차마 못해준 것들만 기억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이렇게 울다간 쓰러질 것만 같았던 하루였다. 하지만 수많은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다녀야 했다. 그 와중에 쉴 틈이 생기면 술을 마셨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았기에 술만 계속 마셨다. 장례식이 끝나고 진주 집 뒤 산에 수목장을 했다. 큰 벚꽃나무 아래 아빠를 묻었다. 생각해 보니 25년을 살면서 아빠와 벚꽃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했구나.




아빠가 입관하는 날을 제외하고, 나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마지막 1년 정도를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실감 나지 않았으리라. 아빠의 폰번호도 그대로 저장해 두고, 그저 평범하고 똑같은 생활을 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기 시작하면서 아빠가 떠오르는 나날들이 늘어갔다. 정말, 정말 보고 싶어 졌다. 언제든 볼 수 있었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쫓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외면하는 것뿐이었다. 휴대폰 연락처 즐겨찾기에는 아빠의 번호가 가장 위에 떠있었고, 주고받은 문자와 사진들이 남아있었다. 


왜 내가 아빠 딸로 태어났냐는 모진 생각을 했던 시절도, 아빠 딸로 태어나서 좋다고 말했던 시절도 모두 안고 아빠는 떠나갔다. 가족에게 소홀했던 아빠는 여전히 밉고, 나랑 데이트하는 걸 즐겼던 아빠는 여전히 좋다. 아프고 난 뒤로 바보가 된 아빠는 여전히 귀엽고, 마지막까지 병으로 고생만 하다 떠나간 아빠는 여전히 안쓰럽다. 사람은 죽고 나서 평가된다고 했던가. 나에게 아빠는 그런 다양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빠의 인생을 되새길 수 있었다. -그저 내가 보는 관점뿐이고 모든 나날을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아빠는 그저 아빠답게 살아가다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완벽한 사람일 수는 없다는 것, 아빠도 처음 인생을 살아가는 거였으니, 당연히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아빠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아빠의 죽음이 나에게는 많은 배움과 경험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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