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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호리 Jun 04. 2018

끽다끽반

喫茶喫飯

A가 전골에서 커다란 만두 한 알을 자기 그릇으로 옮기다가 만두가 그만 터지고 말았다. 속이 너무 가득차서였을까. 만두는 화산 온천 마냥 끓어오르는 육수에 약해질 대로 약해진 만두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가 날카로운 국자의 스침에 내용물을 그대로 토해버렸다.


‘잘 데려오지 못한 것인가. 국자질을 제대로 못했나. 주방에서 나올 때부터 온전치 못했던 만두였나....’ 원인은 잘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몫을 잘 간수하지 못한 A는 원망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옆사람이 "터졌네"하고 한마디를 거들자, A는 아직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것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터진 만두 위에 국물을 끼얹으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내가 "아! 영양학이 전공이라 더 마음이 아픈가..(영양물이 다 빠져나가서.. 허허허...라는 말은 차마 하지 않았다.)"하고  매우 아재스러운 이야기를 던지자, 그제야 A는 "제 마음이 터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릇에 담긴 육수의 표면 위로 형체를 알 수 없는 내장물과 작은 기름이 쓸쓸히 떠다녔다. 기분 탓인지 아니면 진짜 터져버린 만두 때문인지, 아니면 어제 마신 술 때문에 내가 기력이 없어서인지, 나의 아재 개그(개그도 아니다)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인지 우리는 각자의 그릇에 담긴 만두를 살살 달래 가며 말없이 식사를 했다.




퇴근길에 문득 점심시간에 만두 터진 일이 생각났다. A는 영양학 전공이라 그런지, 만두 하나에도 애정을 담을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아서 뭔가 달리 보였다. 자신의 일상에 애정을 담고 순간을 소중히 할 줄 아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끽다끽반’이라는 말이 있다. 차를 마실 때는 차에만, 밥을 먹을 때는 밥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끽(喫)이라는 단어는 본래 먹다, 마시다, 피우다는 뜻이 있다. 일반 생활에서는 ‘끽연(喫煙)’ ‘만끽(滿喫)’등의 말로 활용한다. 만끽은 충분히 먹고 마시며 욕구를 충족한다는 것인데,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면 결코 ‘만끽’할 수가 없다.

나를 비롯해 보통의 우리는 바빠서.. 아니 바쁘다고 생각해서 일상의 순간들을 만끽하지 못한다. 그냥 밥을 먹고, 그냥 차를 마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음식이란 것이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목적이 다가 아니다. 요즘 대부분의 우리들은 넘나 ‘미각’에 밝아져서 굳이 ‘맛집’이란 곳만 찾아다니는데, 굳이 맛집에 갔다면 보다 ‘음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게 그곳을 찾아간 이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두를 먹을 때도 밤새 고여 우러나온 멸치육수에 머금은 만두피의 그 흐물거림이나, 쫀득임이나 부드러운 미각을 느끼며 기쁨을 누릴 수 있는데, 대개는 대충 만두가 그놈이 그놈 이지하며 후루룩 들이키는 것이 현실이다. 만두 속은 어떠한가. 누군가가 김치를 담그고 발효된 김치의 양념을 씻어내 잘게 썰고, 어디선가 수년은 길러졌을 소의 어떤 부위를 다지고 갈아 거기에 계란, 두부에 각종 야채와 양념에... 그 하나하나가 적어도 천인(千人)의 손과 만달의 시간을 거쳐 왔음을 생각하면 만두 알 하나가 그리 귀중해 보일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한때 ‘끽다끽반’에 꽂혀 그걸 느껴보겠답시고 한두 주 굳이 혼자 밥을 먹으며 밥알 하나하나를 씹은 적이 있었다. 밥알의 씨눈을 느끼며 씨 뿌리던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도니울 마을의 농부를 생각하고 연근조림을 먹으며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작은 연못 속 연근 사이로 지나다녔을 붕어나 송사리 등의 연못 생태계를 연상하기도 해봤으나, 너무 생각이 과하고 지나쳐 약간은 ‘염병’ 같기도 하고, 약간은 ‘지랄’ 같기도 해서 그만두고 남들처럼 후루룩후루룩 배 채우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금세 돌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끽다끽반’ 하는 것이 확실히 인생과 일상을 이롭고 풍요롭고 가치 있게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A처럼 만두 터짐에 속상해할 줄 아는 그런 여유와 정서가 못내 부럽다. 오늘은 오랜만에 밥알을 한번 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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