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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호리 Jan 09. 2019

출근길 전철일기 - 사색의 맛

2019년 1월 9일 또 추움

아.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출근이닷.

신입사원이 아니고서야 출근이 기다려지는 경우가  있을까? 국내 최초다. 너무 비약적이니 생애 최초다 정도로 해둘까? 어쨌든 전철일기를 시작하면서 출근길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


글을 쓰는 것은 단순히 생각을 문자화 또는 활자화한다는 것을 넘어, 타이핑을 하기 위한 ‘사색’을 하는 재미와 가치가 있다.


루틴 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사색을 할 일이 줄어든다. 그냥 회사 가고 그냥 일하고 그냥 밥 먹고 동료들이랑 맨날 하던 이야기하고, 그냥 그냥 업무 일정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퇴근길 횡단보도에 서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대로 전철에 오르면 어느덧 늦은 저녁 집에 도착하고 딱히 하는 일 없이 밥 먹고 씻으면 자정이 가까워진다. 정작 내가 오늘 “나로서” 뭐하며 살았는지. 어쩌면 좀비 같은 주중을 살아간다.


물론 중간중간에 친구와 만나 술도 마시고 왁자지껄 떠들며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지만, 인생의 장도와 큰 흐름에서 보면 그 역시 루틴 한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술김에 머릿속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것에 어떤 사색이 있지 않다. 입이 생각하고 입이 말하고, 다음날 머릿속에는 입이 생각한 말들이 남아있지 않다. 깊이나 이치나 가치가 없다. 다시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면 완전 반대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얕다. 그러니 그것을 사색이라고 하기 어렵다.


내게 주어진 35분 전철 타임이 그런 사색의 시간이 된다면 이 어찌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전철일기 표지를 후다닥닥 만들어봤다


어제 쓴 글들에게 “막글”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그것은 글의 형식에 대한 말이다. 그냥 막 써 내려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품화되기 위해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다듬고 고치고 유려하게 미려하게 쓰지 않고 일단 막 퍼담는다는 것이다.


“막글”이지만 그것에도 사색은 있다. 내가 지금 뭘 쓰는지 왜 쓰는지에 대한 정신의 줄기를 잡고 써 내려간다. 안 하던 일을 하면서 스스로 그것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니 거기엔 사색이 필요하다.


아무리 막글이라지만 원래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의 스타일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한 일상의 찰나를 잡아내는 그런 류의 글. 가령 “바나나 시식코너에서 생긴 일” 같은.. 그것이 원래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다. 가령 35분간 전철 안에서의 이야기 중 2-3분 찰나에 일어난 소소하지만 뭔가 느낌 있는 인상을 35분간 읽을 수 있는 글로 풀어내고 싶다.


가령 ‘내 앞사람의 핸드폰 케이스 컬러는 저 사람의 옷차림과 밸런스가 맞는가’라던지. ‘저 군인과 옆에 앉은 한 계급 선임의 현재 심리 상태에 대한 고찰’이라던지...


아. 도착해버렸다..


by Dooh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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