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날과 가는 날이 장날!
동거를 제의하는 키다리 당구녀를 뒤로 하고 친구들과 선배들이 모여있는 서울 인근 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그 도시의 가장 번화한 유흥가였다
독일식 경양식집이었는데 평수가 100평에 가까운 상당히 큰 규모의 복합레스토랑이었다(경양식,독일식 호프,칵테일,양주,각종 퓨전 요리전문)
졸업을 하기전 사회진출을 한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그 가게의 직원을 도맡아 하고 있었는데 이 곳 사장의 친동생이 그지역 조폭(보스급)이었고, 규모가 있는만큼 그 가게의 사장은 2명(나이 지극한 60대 여사장과 30 후반의 남사장)이었는데 남사장은 수시로 자리를 비웠고 나이 지극한 여사장은 오전11시 출근하면 밤 12시가 넘어 꼭 마감을 하고서야 퇴근했다
이 곳엔 1년 선배가 지배인으로 있었고 친구가 주방장(짧은 경력에 칼솜씨가 타고났음), 욕쟁이 주방 할매와 주방 보조 아지매,바텐더(나중엔 내 포지션이 됨), 홀써빙 알바포함 5명 카운터 누나 까지 11명 매일 저녁 찾아오는 선배의 짝지(예고 날나리)까지 하면 12명이 부쩍대는 나름 10~20대들의 아지트였다
이 가게엔 음악DJ박스가 있었는데 전문DJ는 없었고 LP판은 꽤나 많이 있었다
가끔 손님들의 신청곡이 들어오면 선배가 없을땐 내가 음악을 틀어주곤 했는데 그때 가장 많이 틀었던 노래가 '심신'의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와 영화 '사랑과 영혼'의 ost 'Unchained Melody'였다
음악을 찾고 서툰 동작으로 음반을 틀어주며 간단한 멘트를 하는 그 시간이 난 마냥 즐거웠다
https://youtu.be/mZKQlZw-TMo?si=k5N1E6ShvS4yB9gs
당시 난 이 곳에 먼저 상주한 친구와 선후배들과 가게에서 잡아준 숙소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숙소가 2~3층을 통으로 임대해 작은 방들을 나눠서 쓰는 유흥가 뒷골목의 업소녀와 그 외 종사자들이 드글대는 그런 여인숙이었다
이 좁은 숙소에서도 참 별의별 추억들이 많았지만 ‘첫사랑’에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 대다수라 이번 글에 나열하기는 좀 부적절한것 같다
근데 이 이야기는 짤막하게 하고 넘어가야겠다 ㅎㅎ
90년 초 N 정권말 대모가 극심했던 시절이었는데 유흥가 대로변엔 하루가 멀다하고 대모대와 백골단이 대치하는 형국이었다
가끔 우린 그 중간(8차선대로변)을 뚫고 달려 포장마차촌엘 갔고 포장마차 수십개가 1,2층으로 된 비좁은 포장마차 내부에서 체루액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새벽시간 이 많은 술집의 젊은이들이 고이고이 술만 마시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한 번은 우리 패거리와 왠 양아치패들과 패싸움이 일어났지 뭔가?
이유는 딱히 생각나지 않지만 무리 중 누군가가 별일도 아닌 일로 시비가 붙었고 누군가 먼저 주먹을 날리면서 싸움이 시작되고 싸움은 자연스레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변 취객들에게 피해가 옮겨가며 싸움의 크기가 상상외로 커져 버린 것이다
단골집 사장에게 눈짖 싸인을 하곤 간신히 포장마차촌을 나와 죽음의 대로변(백골단과 대모대 사이)을 전력질주로 달려 뒷골목 여인숙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 이 도시 **들은 앞뒤 분간을 안 하는구만!’
좁은 복도에선 크고 작은 비명이 들려 온다
씻기 위해 상의를 탈의하던 친구와 난 좁은 방 별볼일 없는 살림중 무기가 될 만한 뭔가를 하나씩 손에 집어 드는 순간 불청객 여러명이 좁은 방문을 열어 젖히고 쳐들어왔다
친구와 난 각자의 무기를 머리위로 치켜들었다
그러는 사이 녀석들의 손에 든 칼(공고 다니는 녀석들이 직접 연마해서 만든 칼)을 맨살의 복부에 들이댄다
“야이~ 양아치 **들...”
“꿇어라~”
“찔러라~”
나와 친군 동시에 찌를테면 찔러보라며 배를 내 밀었다
‘그렇지 니들이 찌르려먄 벌써 찔렀지’
칼을 들고 눈이 마주친 순간 못찌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등학교때 아지트 방장 녀석이 여러명의 동창생들에게 공격 받은적이 있었는데 그녀석은 품에 지니고 있던 칼을 꺼내 휘둘렀다 (눈 뒤집힌 친구가 그 동창녀석들과 눈맞춤 했을까?)
녀석들과 우리 패거리는 밖으로 장소를 옮겼다
양쪽 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고 승부는 간단히 보기로 했다
1:1 승부로 결판을 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지배인을 맡고 있는 1년 선배가 대표로 그 쪽 패거리 대표와 대결을 하게 되었는데 싸움은 의외로 쉽게 끝나고 만다
1년 선배가 ‘싸움의 신’ 레벨은 아니었지만 덩치가 지리산 반달곰과 맞짱 뜰 정도였던지라 10여분이 지나기 전 상대편 대표로 나왔던 연장들고 우리방을 쳐들어 왔던 그 놈은 지리산 반달곰 배 밑에 깔려 숨을 껄덕였고 어느새 사장 동생 가게(요정)로 달려가 상황을 보고한 막내(고등학교 자퇴한 중학 후배)가 요정 기도 몇 명을 데려왔다
예상대로 그 놈들은 그 도시 공고 선,후배 사이로 지역 조폭 똘마니들이었던 것
칼은 압수 당했고 보스 가게 식구들을 건든 죄로 쌍코피 시전을 하며 물러나게 된다
“야~ 동네 살벌해서 살겄냐?”
그 도시에 애초부터 정이 가진 않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그 도시에서 몇개월을 지냈는데 참,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시간들이 흘러가던 와중에 주방장을 맡고 있던 친구와 대판 싸우게 되는 사건이 터진다 바텐더를 하던 난 주방 기술이라도 배워볼까 하고 주방 보조 자리가 나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갔는데 이게 이게…
비 좁고 하루종일 불과 칼과 함께 하는 그 좁은 공간은 친구와 함께 지내기엔 너무 부적절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결국 사소한 시비로 친구끼리 그 넓지않은 주방안에서 싸움이 붙었는데 종국엔 둘이 칼을 들고 싸우기에 이르렀고 그 날 홀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남사장이 달려와서 앞뒤 사정 알아볼 것 없이 나의 뺨을 날리고 손에 든 칼을 낚아챈 것
‘아~ 학교다닐땐 내 밑이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주방장 찬게 큰 벼슬이구나’
(몇달 뒤 그 주방장 친구는 내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 친구와는 아직도 몇 안남은 아삼륙 친구다)
바로 뒤돌아 그 정나미 떨어지는 도시를 떠나기로 다짐한다!
사장에게 오늘까지의 임금을 정리해달라 말하고 현찰 몇 푼을 받아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난 그 도시를 떠났다
전철을 타고 서울 **터미널로 갔다
**도 **시 가는 버스표를 끊고 **시에 도착했을 땐 어수룩한 어둠이 몰려오는 저녁 시간이었다
터미널 근처에 숙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군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다
난 ‘둘리’가 다니고 있는 여고가 있는 도시로 가는 것이다
점심때 쯤 도착한 낯선 도시에 일단은 숙박을 한 달치 선불을 주고 잡았다
8월의 땡볕이 유난히도 따가운 날이었다
‘둘리’가 다니고 있는 여고를 찾아갔다
‘아니 큰 도시도 아니고 왜 이런 곳으로 큰 딸을 보낸거야?’
바람 한 점 없는 땡볕에 땀을 흘리며 ‘건터’는 괜히 ‘둘리’엄마를 원망하며 허공에 푸념을 내 뿜었다
터미널에서 15분 정도 걸어 도착한 곳 **여고
‘어? 운동장에 애들이 왜?’
드넓은 운동장에 학생이 몇 명밖에 보이질 않는다
마침 교문을 나서는 여학생 한 무리에게 말을 거는 ‘건터’
“저기~ 학생?”
“네?”
“학교에 무슨 일 있나?”
“???”
“응~ 학생들이 별로 없어 보여서?"
“아~ 지금은 여름방학이라 자율학습 하는 아이들만 나오고 있어요”
“아~ 방학?!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방학!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방학을 생각 못 한 내 자신이 너무 어이없게 느껴졌다)
“근데 무슨일로?”
“아~ 내가 누구 좀 찾아왔거든”
“누굴요?”
“아~ 학생들 혹시 몇 학년?”
“2학년요”
“글쿠나~ 사실은 1학년에 황** 이라고 남쪽 동네에서 온 키 큰 여학생 혹시 아니?”
“아~ 알죠 걔가 신입생중에 키가 젤 크거든요 얄밉게 이쁘기도 하고 풉~”
“개학이?”
“이제 일주일 남았어요 풉~”
“아니 왜 자꾸 웃어? 창피하게 ㅋㅇㅋ”
“방학인 줄도 모르고 찾아오신거잖아요 ㅋㅋ”
“ ㅋㅋㅋ 그러게 ㅋㅋ 그래서말인데?”
“네~ 말씀하세요 ㅋ”
“음~ 개학하면 그 황**한테 나 터미널 대합실에서 기다린다고 좀 전해줄 수 있니?”
“몇시요?”
“몇시쯤 끝나는데?”
“4시 30분 정도면 청소까지 다 끝나요”
“응~ 그럼 5시에 기다린다고 좀 전해주겠니?”
“좋아요 ㅎ”
“고마워~ 2학년 *** 기억하고 있을게 ㅎㅎ”
“어머? 내 이름은 어떻게?”
“거기~ 가방에 이름표! ㅋㅋ”
“아~ 풉~ ㅋㅋ”
“그럼 부탁해 ***학생?”
“음~ 이름까지 알렸으니 어쩔수 없네요 알겠어요”
“고마워~ 나중에 떡볶이 살게~ ㅋ”
“진짜죠?”
“그럼~ ㅎ”
"저기요~"
"응?"
"누구라고?"
"아~ '건터'라고 하면 알거야"
그렇다
급하게 찾아간 그 곳엔 ‘둘리’가 없었다
땡볕에 얼굴을 찡그리며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건터’
‘아~ 일주일이라?’
인생을 살다보면 공식처럼 따라오는 일이라 각인된 하루였다
‘예정에 없던 행동은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
낯선 도시의 낯선 공간에 몸을 늬이며 ‘건터’는 ‘둘리’를 생각한다
‘니가 날 부른걸까? 내가 왜 여기 와있는 걸까?’
마이마이를 꺼내 ‘둘리’가 녹음해 준 테이프를 재생한다
'건터'가 좋아하는 유재하의 음악이 ‘둘리’의 손 끝에서 되살아난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https://youtu.be/2_f-P0dmJ4U?si=JG_ViZ2MtfaZiZfB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 가듯 떠나는 이는
제 갈길을 찾았나
손을 흔들며 떠나보낸 뒤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