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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첫사랑 09화

둘리와 만남 그리고, 불편한 동거

한 밤의 침입자들

by 레옹

일주일 동안 크지 않은 도시를 둘러보며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봤지만 소도시에 스며든 20살 청년이 비빌 언덕은 역시나 마땅치 않았다

'그래~ 둘리만 보고 가는 거야 굳이 여기에서 일할 필요가 뭐 있어'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나 앞으로 3주를 버티기엔 주머니가 너무 가벼웠다

그때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전 친구와 칼을 겨눴던 그 도시에서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이다

이 녀석은 중학교 졸업 이후 타지 공고로 진학했던 동창인데

그 도시 시장에서 우연이 만났다

아마 내가 그 도시에서 첫 월급을 타고 친구와 쇼핑을 갔을 때 일이다

봄이 오면서 회색도시의 흔적도 털어버리고 화사한 옷으로 탈바꿈하려 쇼핑을 갔었는데 그 동창을 만난 것이다


"혹시~ "


""누구?"


"건터야 나 00이~ 농구부 000"


"아~~ 몰라보겠다 왜 이리 늙어 보여. 키는 더 컸네?"


"반갑다~"


"어~ 반갑다~"


이 친구는 중학교 때 농구부였고 그땐 키가 그리 안 컸었는데 키도 한 뼘이나 더 커 있었다

복장은 정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도시에 사는 매형 사업을 도와 00 영업 일을 한다고 했다(제법 어른티가 흘렀다)

근데 이 녀석이 친구와 나의 쇼핑한 물건값을 카드로 계산해 버린 것이다


"야~ 니가 왜 우리 물건값을 계산하냐?"


"어~ 너무 반가워서 그러지 나도 월급탄지 얼마 안돼서 여유도 있고..."


"너~ 좀 이상하다? 내 의견도 안 물어보고 니 맘대로 이러는 건 좀 기분이 별로야~"


이상한 녀석이다

너무 반가워서 그렇다 하니 호의로 받아들였다




암튼 주머니 사정이 간당했던 나는 그 녀석이 생각났다

삐삐를 쳤다(그 녀석은 영업직이라 삐삐가 있었다 물론 신용카드와 현금도 있었다)


무더위에 무료한 오후를 선풍기 바람에 식히고 있을 때

여인숙 주인 할머니의 외침이 들려왔다


"건터 총각 전화 왔어~"


"여보세요? 나 건터다!"


"어~ 반갑다 안 그래도 가게에 갔다가 너 그만둔 이야기 들었거든 그래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음~ 어딘지는 알 거 없고 나 돈 좀 빌려주라"


"얼마가 필요한데?"


"00만 원!"


"그렇게 많이?"


"안되면 말고. 끊어!"


"잠깐!"


"..."


"지금 당장은 힘들고 너 있는데 알려주면 며칠 내로 내가 그리로 갈게"


"안 와도 돼! 그냥 이체해 줘~"


"아냐~ 내가 직접 가서 줄게"


"아~ 자식! 안 와도 된다니까 사람 귀찮게~"


나랑 친하지도 않았고 중학교 시절 말도 못 붙이던 녀석이 왜 저럴까 싶었지만 일단은 나도 현금을 확보해야 했던지라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드디어 개학날이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는 버스터미널 대합실은 푹푹 찌는 찜통 같았다

여기저기 손부채를 흔드는 사람들을 보고선 나도 얼른 매점에 가서 부채를 하나 샀다

혹시나 둘리가 일찍 끝날까 싶어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미리 나가서 기다렸다

무려 10개월 만의 만남이니 여고생이 된 '둘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했다 많이, 아주 많이...

그렇게 약속 시간은 다가왔고 찜통 같은 대합실 나무의자에서 부채를 연신 흔들어 대고 있을 때,

눈앞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나타났다

홀로 또는 두세 명씩 무리 지은 여학생들이 대합실로 들어오고 나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유난히 키가 큰 낯익은 얼굴 숏컷단발의 '둘리'가 저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여고생이 되더니 더 이뻐졌구나!'


'둘리'의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

뛰어오는 '둘리'를 향해 혹여나 넘어질까 걱정되어 손을 내젓는 순간, 내 첫사랑 '둘리'는 나와 마주 보고 서 있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을 먼저 눈빛으로 주고받았다

'둘리'가 나를 바라본 눈빛 중 가장 애정 넘치는 눈빛으로 기억한다


"둘리야~"


"건터 오빠~"


난 교복을 입은 아가씨 같은 '둘리'의 양손을 잡았다


"건터 오빠~어떻게 여기까지 올 생각을 했어?"


"응~ 그냥"


"그냥?"


"네 생각이 나서~ 보고 싶어 왔지"


조그만 아기공룡이 이젠 나 보다도 커버린 아가씨의 모습으로 반달눈을 하고 땀을 흘리고 서 있다

주머니에서 여행용 티슈를 꺼내 이마를 지나 눈가로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다

내 손에 들린 티슈를 가져가며,


"오빠 많이 기다렸지?"


티슈로 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는 '둘리'

난 그제야 뒷주머니에 꽂아 둔 부채를 꺼내 '둘리'의 얼굴에 연신 부채질을 했다

'둘리'옆엔 '달려라 하니'를 닮은 큰 눈에 안경을 쓴 여학생이 우리 둘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오빠 내 친구 **이"


"안녕하세요 '둘리'친구 **이예요"


"어! 반갑다~"


그렇게 우린 터미널 근처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둘리'와 난 연신 눈을 떼지 못하며 눈빛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둘리' 친구 '달려라 하니'는 음료를 단번에 비우고,


"저~ 음료수 하나 더 마셔도 돼요?"


"응~ 그럼 ㅎㅎ "


'둘리'보다 옆에 앉은 '둘리' 친구가 궁금한 게 더 많은 듯했다

-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나?

- 언제까지 계실 거냐?

- 여기는 동네가 좁아 소문이 금세 퍼진다

-둘리는 인기가 많다

-라이벌이 있다면 어떡하실 거냐?

-싸움 잘하시냐?

-둘리 이모가 간섭이 심한 편이시다 등등


옆에서 여전히 반달눈을 하고 있는 '둘리'는 친구를 제지하며 크게 웃는다


"하니야~ 너 지금 범인 취조하는 형사 같아 ㅋㅋ"


"형사? 궁금해서 그러지 ㅋㅋ "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둘은 도무지 친구로 보이질 않았다 자매처럼 보였다)


그렇게 '둘리'와 다시 만났고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둘리'는 학교가 파하면 나를 만나러 왔고 막차를 타고 돌아가곤 했다

그 사이 돈을 직접 가지고 온 중학교 동창은 이 낯선 곳에 오게 된 사연을 듣고 자기도 함께 지내면 안 되는지 물어왔고 그렇게 해주면 돈은 빌려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그 돈을 쓰겠다고 했다

밑질 게 없는 것 같아


"그래? 그럼 생활비 지출하는데 토 달기 없기다 그리고, '둘리'앞에서 설레발치지 말고 내가 사인 주면 조용히 계산하고~ 어? '둘리'한테 흑심 품지 말고~ 지킬 수 있지?"


"응~ 그럼"


그렇게 예정에도 없던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 어느 밤

'둘리'를 돌려보내고 막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방문이 열리며 낯선 침입자의 신발이 보였다

어두운 방 안에 너무도 조용한 침입이었다

꿈인 줄 알았다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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