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와 세 남자
한밤의 침입 사건 이후, 공간을 침범당했다는 게 얼마나 불편했던지
밤새 어둡고 시끄런 꿈속을 헤맸다
뒤늦게 눈을 뜬 나는 쫄보 K의 빈자리를 쳐다보았다
'뭐야 간다는 말도 없이 간 거야'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숙소로 들어오는 쫄보 K!
"돈 찾아왔냐?"
"건터야 어젠 미안하다 내가 학폭 트라우마가 있어서..."
"학폭? 돈** ***고 ** 가라 * *** **** ** 않으니까~"
"아니 곤란하게 안 할 테니까 조금만 더 지내게 해 주면 안 될까?"
"난 ** **** 네 **필요한 거지"
K는 그곳에 남아있길 원했다
좀 더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어 주고자
"K야 너 중고차 영업한댔지? 그럼 올라가서 차 끌고 내려와라 그럼 함께 있게 해 줄게"
"어? 자동치는 왜?"
"놀~라긴! 아무래도 둘리를 위해서라도 차가 필요할 것 같아서 응?"
"나 면허가 없어"
"면허도 없는 녀석이 중고차 영업이라~"
녀석은 내게 현금을 내밀며 조금만 더 머물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돈이 필요했던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우리는 원치 않는 묘한 동거를 이어갔다
왜 하필 이 녀석이 생각났을까
그건 아마도 친구를 비롯한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행방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참, 이 녀석이 굳이 돈을 들고 나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자긴 첫사랑도 없고, 첫사랑을 찾아 낯선 곳으로 무작정 떠난 내 여정이 부럽다고 했다
물론 내 첫사랑이 궁금하기도 했을 터다
바로 그 점이 난 못 미더웠다
예정에 없던 녀석이란 말이다
본래 친분이 없던 녀석이 내 인생 깊숙이 들어온 것 같아 함께 지내는 내내 불편했기에 일부러 많이 갈궜다
둘리는 한밤의 침입에 대해선 모른다
나에 대해 알고 있던 P가 날 소개해 달래서 둘리가 P를 데리고 와서 인사시켰다
P와 난 그날 처음 만나는 사이처럼 연기했다
굳이 '한밤의 침입'에 대해 알리고 싶지 않은 큰오빠, 작은오빠의 배려였다
둘리와 현지 오빠 P는 이제 함께 내 숙소를 방문했다
둘리는 여전히 밝고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고, P는 묵묵히 둘리 곁을 지켰다
현지 남매의 방문은 분명 나에게 위안이 되었지만, 한편으론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둘리와 애인 사이는 아무도 없다
나도 P도 그냥 오빠였기 때문이다
의남매! 이건 내가 둘리의 유일한 오빠일 때만 어울리는 그런 단어라 생각했는데..,
아무튼 둘리는 중학교 때 오빠가 없는,
타지에서 새로운 오빠를 확보한 꼴이지
(내가 보기에...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하~)
그러다 중학교 때 오빠가 찾아오는 바람에...
둘리와 나, 그리고 P.
우리는 마치 의붓남매도 친남매도 아닌, 어쩌다 삼 남매가 되어갔다
오빠가 둘인 둘리는 마냥 행복해했고 어쩌다 곱싸리 끼는 '달려라 하니'도 함께 어울려 우리들의 관계는 동네방네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둘리와 하니가 하교 후 단골집처럼 가는 분식집에서 이것저것 시켜 먹고 있을 때였다
어딘지 낯설지 않은 여학생 대여섯 명이 분식집 안으로 들어오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둘리와 하니!
떡볶이 먹다 말고 인사를 하네?
'선배들인가 보군' 했다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저희 모르시겠어요?"
"???"
"떡볶이 언제 사주시나 기다리다가 오늘은 직접 왔어요 풉!"
"아~ 방학 때 만난 학생이구나 미안~ 이름이..."
"뭐예요? 기억하겠다고 하시더니 이름도 까먹으셨네! ㅋㅋ"
"아~ 미안 오빠가 살 테니까 우리 둘리랑 하니 이쁘게 봐주고~ ㅋㅇㅋ"
"갑자기 오빠요? 이제 두 번째 만났는데?"
"떡볶이 먹으러 너네가 찾아왔으니 오빠로 하자 ㅎㅎ"
"떡볶이로 오빠소리 듣겠다고요?"
"저기요~ 사장님! 여기 학생들 달라는 데로 다 주세요 계산은 얘가 할 거예요"
하며 내 옆에 앉은 K를 지목했다
"아저씨가 사는 거 아녜요?"
"아저씨가 뭐냐? 군대도 안 간 사람한테... 내가 지갑을 맡겨놔서 그래~"
잊고 지내던 떡볶이 소녀가 친구들을 왕창 데리고 나타났다
둘리를 위해선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분식집이 넓지 않았던게 천만다행이다
잠시 후 P까지 합류하자 좁은 분식집은 왁자지껄 학생들의 수다와 떡볶이 소녀들은 환호성까지 지르고 난리도 아니다
저 중에도 분명 P를 사모하는 학생이 존재하겠지
P! 이 녀석 팬층이 두터운 거 같았다
그러면 둘리가 더 걱정스러운데 말이다
화제를 돌려야 했다
"P야! 하니가 너 좋아하나 봐"
"네?" "뭐예요 제가 언제요?" "무ㅓㅇㅑ?"(떡볶이 테이블에서 들리는 숙덕숙덕 ~)
"아니~ P 너만 온다 하면 '하니' 넌 학원도 안 가잖아 ㅎㅎ "
"나 땜에요?" "아니~ 그건~~~"
"그럼~ 나 때문은 아닐 테고 ㅋㅋ 그건 뭐?"
"그건~ 둘리가 같이 있어 달래서~"
"아닌데 둘리는 너 없이도..."
"오빠 그만~ 그만!"
상황정리하는 둘리!
둘리의 낯선 모습이었다
그렇다 둘리는 분명 얼굴이 볼그레져서 대화를 끊은 것이다
하니는 분명 P를 좋아했다(얼굴에 쓰여 있었다)
둘리는 그래서 P에게 솔직한 마음을 표현 못 한 거다
스므살 내 눈엔 분명 그렇게 보였다
옆 떡볶이 테이블에선 백색소음(블라블라 ~)이 여전히 들려왔다
(저 녀석들 둘리 괴롭히면 안 되는데...)
기회를 봐서 떡볶이 소녀에게 귓속말을 남겼다
"너네 학교 짱 한 번 델꼬와~ 경양식 집으로.. 오늘처럼 떼로 오지 말고 알았지?"
P가 숙소에 함께 찾아오면서부턴 일부러 막차 시간 전에 돌려보냈다
크지 않은 동네에서 둘리와 관련된 소문이 돌고 있음을 감지했고 둘리도 수긍했다
둘리도 하니와 함께 학원을 다녔는데 나를 만나면서부터 학원을 거의 안 갔으니 둘리 이모와 둘리 엄마의 귀에 안 들어갈 리 만무했다
둘리 엄마에게 찍히기 싫은 큰오빠!(난 둘리 엄마한테 눈밖에 나고 싶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찾는 둘리를 핑계로 P 역시 거의 매일 나를 찾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둘리를 찾은 거지
그러던 어느 주말 여름의 끝을 향해가는 그 시간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지역 관광지 나들이를 했다
둘리는 그날 새벽부터 김밥을 비롯한 도시락을 준비했고 아침 일찍 우린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근교 관광지로 떠났다
어느 폭포가 너무 이쁜 그곳에서 물장구도 치고 도시락도 까먹고 사진도 찍었다
둘리와 나, 둘리와 P 그리고 나와 P 그리고 어쩌다 삼 남매 이렇게 한 컷씩 찍었다
둘리가 K도 함께 찍자고 하는 걸 내가 단칼에 "안돼!" 하고 제지시켰다
'내 인생 가장 소중한 시간에 그 녀석을 끼워넣다니...
그건 아니지 Never! 절대 안 돼!
내 인생에 P가 들어온 것까지만 인정할게 둘리야
난 네가 K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듣기 싫다고!'
"둘리야! 쟨 사진 찍는 거 안 좋아해 그치?"
K를 쳐다보며 눈치를 줬다
암튼 그날은 넷이서 폭포 인근 맛집에서 저녁을 배불리 먹고서 저녁 늦게 시내로 돌아왔다
P는 오토바이가 있었지만 난 둘리가 그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걸 허락지 않았다
뒷자리에 탄 둘리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상상이 스치는 순간 머리가 살짝 아파왔다)
"둘리야 P야 오늘 즐거웠다 다음에 또 가고 싶은데 시간이 될까 모르겠네"
"오빠들~ 나도 오늘 기분 최고로 즐거웠어 K오빠도 고생 많았어요~"
"응~"
K를 향해 "뭐가 응이야? 네가 고생한 게 뭐 있다고! P는 둘리 버스 타는 거 보고 갈 거지?"
다행히 P의 집은 둘리와 정반대 방향이었다
"네 형님~ 둘리 가는 거 보고 가야죠 ㅎㅎ "
"응~ 그래 안 그러면 그것도 이상하지 네가 있어서 형은 든든하다"
"ㅎㅎ", "ㅎㅎ"
둘리는 버스에 오르고 우리 쪽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든다
"잘 가~ 또 보자 둘리야!"
"잘 자요 오빠들~^^"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세 남자!
K를 쬐려 봤다
얼른 손을 내리는 K
"형님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쉬십시오~"
"그래 덕분에 형도 즐거웠어 운전 조심하고~"
그렇게 P를 돌려보낸 후 K를 데리고 근처 호프집에 들어갔다
"야! 너 둘리한테 흑심 품는 거 아니지?"
"흑심은 무슨~ 아냐 절대로"
"니 눈빛은 왜 흔들리는데? 너~ 내 말 우습게 듣지 마~"
"응~ 알았어"
일요일인 다음날은 둘리도 하루 쉬는 날이다
이모랑 성당도 가야 하고 과제도 해야니까
이래저래 한주 정리도 필요하니까 말이다
근데 일요일 저녁
하니가 숙소로 찾아왔다
"달려라 하니? 네가 어쩐 일이야?"
"건터 오빠~~"
덧글
배경사진을 AI 이미지로 살려봤는데요
왼쪽 레옹은 돌을 밟고 올라선 겁니다 ㅎㅎ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