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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별과 등대 Aug 18. 2020

겨울

1. 아무개에게


 아무개야 안녕? 이 편지가 너에게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받아 볼 수 있는 그때를 떠올리며 쓴다. 오랜만에 지저분해진 방을 정리하다가 상자 하나를 발견했어. 그 안에 네가 써 준 편지 한 장이 들어 있더라. 몇 글자 안 되는 내용이지만 소중하게 간직했어.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라 너는 기억을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많이 지나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 정확히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는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반에서 제일 빨리 친해졌고 집이 근처라 계속 붙어 다닌 짝꿍이 되었지.
빠른 시간 내에 단짝 친구가 된 우리는 항상 붙어 다니며 같이 울기도 하고 때론 웃기도 하고 작지만 사도고 많이 치고 다녔었지.
네가 그랬었잖아. 우리는 특이하거나 이상한 일들이 참 많았다고. 우리 가족은 가끔 너의 소식이 궁금해 함께하는 저녁이나 모임에서 너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해. 잘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얼마나 변했는지도 궁금하다고.
 아무개야. 생각나니? 참 더웠던 여름방학이었어. 평소처럼 너희 집에 놀러 가서 동생이랑 색칠공부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마당에서 소꿉놀이도 했지. 그래도 심심해 새로운 놀이가 없을까 집안을 기웃거리다 큰방의 서랍장을 열었잖아. 하얀빛을 반짝이는 진주 목걸이가 동그랗게 나무상자 안에 들어있었지. 우리는 서로 먼저 목에 해본다며 목걸이를 잡고 힘겨루기를 하다 그만 힘을 못 이기고 목걸이가 끊어지고 말았어. 놀란 우리는 엄마한테 혼이 날까 봐 울먹이며 사방에 흩어져 굴러다니는 진주알을 줍기 시작했어. 야속하게도 장롱 밑에 들어가고 서랍장 밑에 들어가 버려 다시 목걸이를 원상 복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 멍하니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한숨만 쉬었던 밤이었지.
 아무개야. 너는 목걸이를 망가뜨려 엄마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고 나는 경황이 없어 집에 늦는다는 전화도 없이 밤늦게 들어가 처음으로 회초리를 맞았어. 그런데 종아리가 아픈 것보다 귀한 진주를 잃어버린 미안함이 더 커서 울었던 기억이 나.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사고를 쳤지만 다시 생각해도 우리가 저지른 일중에 제일 큰 사고였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개야.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나와 헤어지게 되었어. 전학을 가던 날 네가 살짝 건넸던 편지가 바로 상자에 들어있던 편지야. 너를 본 것처럼 어찌나 반갑던지.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자고 했지만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겼지.
중학교에 들어와 여러 군데를 수소문해서 다시 너와 만났잖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하지만 그 기간도 얼마 가지 못 하고 분명한 이유 없이 연락이 끊어져 지금은 너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어 너무 답답해. 보고 싶고 그립다.
 아무개야. 잘 지내고 있지?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 궁금하다. 너는 날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장난꾸러기 동생은 많이 컸는지 친구들은 많은지 학교는 다니는지 질문이 한 보따리야. 나는 대학 대신 사회를 택했는데 아직 적응이 어려워 나름 고군분투 중이야.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밤새도록인데 어디로 숨었니. 어른이 돼서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잖아. 조그맣고 순수했던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어른이 됐어.
이제는 만나서 술도 한 잔 하면서 옛날 추억을 함께 얘기해보자. 아니면 커피라도 좋아.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해서 걱정이야.
 아무개야. 단 한 번도 널 잊은 적이 없어. 혹시라도 이 편지가 너에게 닿는다면 언제라도 괜찮으니까 꼭 연락해줘.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처럼 잘 기다리고 있을게. 풋풋한 20대의 아가씨로 변한 지금의 너는 어떤 모습일까!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함께한 아무개야 네가 하는 일은 뭐든지 잘 풀렸으면 좋겠어. 항상 힘내자!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아무개야. 안녕? 어색한 인사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한 번도 전하지 못했던 진심이 담긴 이 글이 백설 왕자에게 닿길 바라며.
 너의 소식을 듣고 시간이 멈춘 듯 한참 넋을 놓고 말았다.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말이 모기가 앵앵 우는 것처럼 들렸다. 오토바이 사고가 있었고 현재 의식이 없는 상태로 응급실에 있다고 위중하다했다. 많은 생각 중에 첫 번째는 지금 달려가야 한다는 거였는데 챙겨야 할 내 가정이 있어 바로 가지 못했다. 미안하다.
 아무개야. 너를 보러 가는 주말 새벽. 울산에서 서울까지 5시간이 걸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이 가쁘더라. 해주고 싶은 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무슨 생각까지 그리 들던지 가는 내내 혼란한 정신을 부여잡느라 애를 먹었다.
너를 만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씩씩하게 인사하려 했는데 보는 순간 다리부터 풀리더라. 온몸이 고무공처럼 부어올라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든데 여기저기 꼽혀있는 장비며 고무호스들은 충격이었다. 초점 없는 멍한 눈은 생명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없어 보였고 기계에 의지한 호흡은 목 안에서 꺾꺾하는 소리만 거칠게 들렸다.
 아무개야. 목으로 넘어오는 눈물을 삼키며 희미하게 웃으며 나 왔다고 인사를 했지. 심하게 떨리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켜 온기 없는 네 손을 잡았지만 반응이 없는 무심한 얼굴은 슬픔이었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면회 시간 동안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소리 죽여 눈물만 흘리다 돌아 나오면서 생각했다.
너는 마녀가 준 독사과를 먹고 긴 잠에 빠진 백설 왕자라고. 공주와 왕자만 바뀌었지 분명 너를 구해줄 공주가 있을 거라고.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너의 이야기는 끝이 나야 한다고 그래야 힘들게 살아온 시간이 행복으로 마무리된다고. 아니면 너무 억울하고 부당하니까.
 아무개야. 잠에서 깨어나도 평생을 뇌사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또 한 번 무너졌다. 어디서부터 받아들여야 할지 엄두가 안나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았다. 눈을 감으니 너와의 추억들이 하나씩 떠오르는데 미치겠더라.
첫 만남이 기억나니? 나를 보고 키가 난쟁이 똥자루 만하다며 놀렸지.
화가 난 나는 주먹을 날려 너를 쌍코피를 터지게 했다.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했던 우리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속 얘기들을 주고받는 삶의 동반자가 될 줄 어떻게 알았겠니.
 시간이 가면서 알게 된 너라는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가장으로 살았고 너를 위한 하루는 없었지. 하지만 힘들어도 가을 하늘처럼 눈부시게 맑았고 단풍처럼 마음도 고왔다. 일이 힘들어 유난히 고된 날은 일부러 웃으며 매일 웃는 날을 만들자고 어깨동무를 했었다.
 아무개야. 철없던 질풍노도의 시절. 청춘이라는 인생의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며 서로의 이름을 가슴 깊이 의리로 새겼다. 어른이 되어서는 시원한 욕 한마디 안주삼아 쓰디쓴 소주 한 잔에 같은 편이 되었다. 힘듦의 무게는 덜어주고 기쁨의 추는 서로 얹어주며 누구보다 의지했던 소중한 네가 이렇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다. 꿈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무심한 시곗바늘이 달려 도착한 곳에는 웃으며 마주할 우리가 있을까? 귓가에 들렸던 너의 환한 웃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아무개야. 글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내 마음이 꼭 너에게 닿길 바란다.
부디 꿈속에서는 갈 곳을 잃은 나침반은 내려놓기를. 제발 고개 들어 하늘을 봐. 그 밤하늘에 눈부시게 빛나는 별을 따라 걸어와. 그리고 도착한 길 끝에서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약속.

                       백설 왕자를 사랑한 난쟁이 똥자루가.




 아무개야. 어제부터 더위와 함께 눅눅한 습기가 가득하더니 아침에 눈 뜨니 비가 내리더라. 장마의 시작이라는 뉴스에 예전 같으면 빨래 걱정에 비가 새는 곳은 없나 살폈는데 이번만큼은 아무개 걱정이 먼저 들더라. 가만히 있어도 등으로 흐르는 땀에 옷이 달라붙어 불쾌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인데 방역복을 입고 고글까지 쓴 채 사람들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을 모습이 떠오르니 가슴이 찡하다.
 아무개야. 처음 만났던 날 생각이 난다. 제법 큰 키에 짧게 깎은 머리를 하고 꾸벅 인사를 하는데 얼굴에는 긴장이 가득했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나를 쳐다보는 가느다란 눈이 살짝 떨리는 걸 보았단다. 커피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베트남에 파견근무 마치고 돌아오면서 고르고 골라 샀다며 커피가 든 상자를 내 책상 위에 놓았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손바닥에 흥건한 땀이 툭 떨어지는 걸 봤어. 그때 알았어. 나이에 맞지 않게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사람이구나. 큰아이와 열 살의 나이 차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심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고 나와도 그리 큰 차이가 없는 탓에 솔직히 반대를 하려 했었지.
 “결혼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듬직한 체구에서 울리는 낮은 저음이 굳은 각오를 한 듯 미동도 없이 나를 바라봤지.
 “알겠네. 단, 조건이 있는데 일 년이 지나면 A/S는 안 되네. 일 년 안에는 하자가 생기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하던 책임을 지던 가능한데 그 후는 둘이 해결하게. 절대 장모 찬스는 없네!”
생각지도 못한 답에 멍한 눈으로 얼음이 된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 가끔 술자리에서 웃으며 이제 일 년이 지나 아무것도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못한다고 시간이 참 빠르다 이야기했지. 맞아. 시간은 빨리 흐르네.
 아무개야. 여자만 있던 우리 집에 아들 하나 생겼다고 잘하겠다 큰소리쳤지만 살아보니 세 식구 빠듯한 살림살이에 얼굴은커녕 안부 전화 한 통이 힘들지. 서운함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처가에 손 벌리고 가정불화 만드는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이해하고 살아가지.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건 결혼식을 시켜줘야 하는데 손녀가 4살이니 늦어버린 시간만큼 엄마의 짐이 한없이 무겁다. 남들은 알까? 상견례를 바깥사돈 장례식에서 했다면 믿을까?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아무개의 슬픔은 자식이 꺼내놓는 이별이지만 너무 편해 보이는 영정사진 속 얼굴은 눈물보다는 애잔한 가슴이었지. 폐암으로 투병했다고 퉁퉁 부은 눈으로 어머니를 소개할 때 심장이 땅으로 떨어졌지만, 표를 낼 수 없었지. 어머니 역시 폐암에 자궁암으로 항암치료 중이었고 머리카락이 빠진 머리는 털실로 짠 모자를 쓰고 계셨지. 정말 뼈 위에 가죽만 씌운 모습으로 깊은 이야기를 침묵에 가둔 퀭한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아파서 마주 보고 같이 울었지. 혹시나 충격으로 또 장례를 치르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했고 다행히 지금까지 치료도 잘 받고 운동도 하고 살아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아무개야. 얼마 전부터 병원으로 파견이 되어 출근하니 고생이 많지? 의사와 간호사들과 똑같이 방역복에 고글까지 쓰고 코로나 검진을 하러 병원에 오는 분들의 체온을 재고 안내를 하고 대기자도 살핀다고 들었다. 정해진 일보다 힘든 건 짜증 내는 사람, 화가 폭발해 소리 지르는 사람, 설명해도 못 알아듣고 수 십 번 묻는 사람, 마스크 착용 안 한 사람 등 별의별 사람들의 불만을 끌어안아야 하는 일이라 정신이 없을 거야. 물론 힘들겠지.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대한민국이 아니라 온 세계가 함께 이겨나가야 할 고통의 중심에 자랑스럽게 서 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내 식구라 여기고 손 내밀어주기를 바라. 어려울수록 참된 용기는 희망이 되고 어두울수록 작은 촛불이 빛으로 세상에 퍼지는 것처럼 아무개의 수고로움이 기적의 모래 한 알이 되었으리라 믿어. 거대한 빌딩도 한 알의 모래들이 모여 이룬 완성품이 이니까.
 아무개야. 시대가 어려우면 영웅이 나오는데 대한민국을 지키는 영웅중 한 명이라 기뻐. 어디에 있어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말고 지금보다 조금 안정이 되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고. 내가 살 테니 걱정 말고. 비가 계속 온다 하니 단단히 무장하고 건강 챙기면서 특히 끼니 거르지 말고 먹어야 이겨내니까 알겠지? 우리 가족이 되어 참 좋다는 말 했던가?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고 앞으로 열심히 잘 살 거라서 엄지 척! 만나면 웃고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든든한 아들 노릇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보세.

인연이 되어 감사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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