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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별과 등대 Aug 11. 2020

가을

4. 가을 운동회


 길을 걷는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 소리가 나는지 살펴보니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였다. 함성의 이유는 가을 운동회를 하는 아이들의 응원 소리였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잠시 멈춰 운동회를 구경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에 내 기억 속 초등학교 운동회가 떠올랐다.
 기린 목으로 길게 늘어난 기다림의 운동회 날. 두근거리는 마음에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청팀 헤어밴드랑 손목밴드를 끼고 체육복을 꺼내 입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 올 거지?”
기대 가득한 물음에 들려오는 대답은 실망이었다.
 “오늘 일이 바빠서 안 되겠는데 어쩌지? 다음에 꼭 갈게. 미안해.”
엄마의 말에 심통이 나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뛰쳐나갔다. 씩씩거리며 학교에 도착하니 조회대 위에는 만국기가 약 올리는 듯 메롱하고 펄럭이고 있었다. 만국기만 신나 보여 화가 났다.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선생님의 부름에 자리로 갔다. 교장 선생님의 재미없는 연설을 끝으로 국민체조를 하고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 콩 주머니를 던지는 박 터뜨리기도 하고, 온갖 장애물을 넘고 달리고 헤쳐 나오는 달리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여 온 힘을 다해서 줄다리기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친구들이랑 동그랗게 모여 부모님들이 가져오신 음식을 나눠 먹었다. 김밥과 유부초밥은 도시락 안에 먹음직스러웠고 과일의 향에 모여든 벌들도 운동회를 하는지 날갯짓에 바빴다. 고소한 치킨 냄새는 콧속으로 들어와 배를 꼬르륵하게 했다. 친구 엄마가 닭다리 한 개를 주었다. 구석 자리에 앉아 닭다리를 먹는데 아침에 엄마에게 한 말이 생각나 마음이 불편했다. 입에 넣은 음식이 내려가지 않고 계속 입안에 맴돌았다. 옆에서 열심히 김밥을 먹던 친구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저기 오는 사람 네 엄마 아니야?”
고개를 들어보니 입가에 환한 웃음을 담고 상자 가득 뭔가를 가득 들고 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 못 온다면서 어떻게 왔어?”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딸, 보고 싶어서.”
상자 안에는 가장 인기 있는 콜 팝이 친구들을 전부 주고 남을 만큼 많았다. 콜 팝을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며 기분이 좋아 어깨가 국기 게양대보다 높아졌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운동회의 마지막을 장식할 계주 시간이 됐다. 막상 차례가 다가오자 떨렸지만 달리기 하나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반대표로 나왔기에 책임감도 따랐다. 출발 신호에 맞춰 열심히 빨리 달렸고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넘겨주었다. 예상대로 우리 팀이 이겼다. 운동회도 청팀이 이겼다. 엄마를 포함한 주변 분들이 모두 잘했다며 칭찬을 했다. 두둑한 상품은 덤으로 기쁨을 주었다.
 운동회 생각에 잠겨있다 출발 신호를 알리는 총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운동장에 아이들이 계주를 뛰고 있었다. 운동장 끝에서 열심히 응원하는 부모님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걸음을 옮겼다. 누가 이기든지 전부 파이팅!
어느 팀이 이겼는지 알 수 없지만 다들 오늘만큼은 잊지 못할 하루가 됐으면 좋겠다.





 딸의 어린이집에서 가을 운동회 겸 학예회를 한다고 안내문이 왔다.
요즘은 강당에서 짧고 간단히 끝난다고 하지만 내 어릴 적 운동회는 학교 최고의 축제였다. 알록달록 적힌 초대 글자에 꼭 1등을 하고 싶었던 소녀가 떠올랐다.
 “엄마. 꼭 와야 해요.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꼭 와요. 약속!”
항상 일로 바쁜 엄마가 운동회에 안 올까 봐 아침부터 신신당부했다.
하얀색 손목밴드를 하고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자신 있게 들어선 정문에는 형형색색의 만국기가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추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의 지루하고 뻔한 메아리로 시작된 운동회는 시간이 갈수록 재미있었다. 한 달을 꼬박 연습한 음악 줄넘기는 실수 없이 마무리했고 콩 주머니 던지기, 아빠 줄다리기까지도 백팀이 이겼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을 사이도 없이 운동장을 눈이 빠지라 뒤져 엄마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이겼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신나던 기분은 어느새 슬픔으로 바뀌었다. 점심시간이 오고 친구 부모님이 싸 온 예쁜 도시락에 기가 죽어 밥도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없는 구석 돌담에 앉아 아지랑이 일렁이는 정문을 보다가 체념을 하고 세수를 하려고 일어나는데 엄마가 보였다.
멀리서 양손에 뭔가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나를 찾는 엄마는 가을 햇빛을 등에 업고 있는 듯 선명하게 빛났다. 아니 선녀 옷을 입은 듯 하늘거렸다. 발이 안 보이게 달려갔더니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무겁게 들고 있던 치킨을 건넸다. 친구들도 도시락을 뒤로하고 우르르 모여 금방 튀겨 따뜻한 치킨을 나눠 먹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고소함에 눈물이 찔끔 났다. 맛있는 걸 먹어서인지 엄마가 왔기 때문인지 힘이 솟았다.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웃음이었다. 따스한 행복이었다. 시원한 그늘이었고 푸른 하늘이었다.
 ‘탕!’ 운동회의 꽃.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구름 한 점 없이 가을 하늘을 울리는 화약총 소리에 맞춰 달려 제일 먼저 골인하면 ‘1등’ 도장과 학용품 선물을 준다. 가장 자신 없는 종목이 달리기여서 매일 연습을 했다. 다른 친구보다 백배 더 연습했으니 당연히 1등은 내 차지였다.
  “별이, 파이팅!”
다섯 명이 나란히 달려 나갔다. 온 힘을 다해 결승선으로 달렸다.
 “이겨라! 힘내라!”
수많은 응원 목소리 속에 엄마 목소리만 확성기를 달아 놓은 듯 크게 들렸다. 그런데 빠르게 차오르는 숨보다 승부욕이 앞섰다. 다리가 꼬여 발목이 접히며 그대로 넘어졌다. 실망하는 소리와 나를 스쳐 가는 친구들 모습에 부끄럽고 속상해 일어날 수 없었다. 아픔을 느낄 수가 없었다. 피가 무릎에서 흐르는데 꼭 내 눈물이 흐르는 것만 같아 닦지도 못했다.
 “괜찮아. 끝까지 뛰어 할 수 있어! 별이 파이팅!”
운동장 트랙 귀퉁이에 앉아 있다 벌떡 일어나 목이 터지라 응원하는 엄마의 눈이 촉촉이 젖어있었다.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씩씩하게 털고 일어나 달렸다. 결승선에 들어서자 힘찬 박수 소리가 들렸고 손등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선생님이 찍어주었다.
 결승선에서 기다리던 엄마에게 서럽게 울며 안겼다. 엄마의 품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우리 별이. 정말 멋있더라. 엄마였으면 끝까지 못 뛰었을 거야.”
 “엄마. 1등이 아닌데. 1등 도장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자꾸 눈물이 흘렀다. 정말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랑스러운 딸로 운동회를 기억하고 싶었는데 계획을 망쳤다.
 “별아. 1등보다 더 멋있었어. 지는 게 나쁜 건 아니란다. 아름답게 질     수 있다면 1등보다 더 대단한 거야.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았잖아.”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볕에 반짝이는 엄마의 눈물이 가슴에 쏟아졌다. 나도 가슴이 몽글몽글했다. 알싸한 그리움의 기억이다. 생각해보면 운동회에 엄마가 온 것이 1등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날이었다.
아이의 운동회 안내문을 보니 엄마 달리기가 있었다.
이번엔 1등 도장을 받을 수 있을까?




(부제 : 김밥과 운동회)
  
 뜨거웠던 열기를 이긴 계절의 첫 소식은 가까운 지인의 딸이 어여쁜 아이를 출산했다는 축복이었다. 산후조리 기간 매일 미역국만 먹어 엄마가 해준 김밥을 먹고 싶다는 딸을 위해 기꺼이 수고로움을 자처한 그녀는 재료 손질에 부산했다.
 “처음엔 할머니가 된다니 이상했는데 애를 보고 나니까 얼마나 예쁜지    아무 생각이 없어지더라. 신기하지?”
입가에 걸린 기쁨이 가을 하늘처럼 맑고 푸르렀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살짝 아려왔다. 도마 위 김밥을 칼로써는 모습에 기억 속 아련한 그리움을 비집고 늙은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아! 나에게도 부엌칼로 숭덩숭덩 김밥을 썰어 입에 넣어주던 사랑이 있었구나. 발끝에서 피어나는 시린 추억이 아지랑이가 되어 온몸을 간질였다. 간지럼을 탄 자리마다 아픈 후회가 과자 부스러기처럼 흐른다.
 아버지 나이 마흔다섯 엄마 나이 마흔에 육 남매의 막내딸로 세상에 첫울음을 울고 보니 큰언니와는 스무 살의 터울이 났다. 요즘이야 워낙 늦은 나이에 결혼과 출산이 보편적이라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 시절은 마을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기 충분했다. 창피해하는 언니 오빠들은 같이 놀아주기를 꺼렸고 또래 친구도 없었던 나는 항상 혼자였다.
외로움을 일찍 알아버린 천둥벌거숭이는 하늘이 엄마였고 바다가 친구였고 모래가 집이었다.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당신에게 늦둥이는 존재 자체가 한숨부터 나오는 골칫덩이였다.
 밤바다의 안개가 고단한 새벽을 안고 마당에 들어서면 가난한 삶의 무게로 내려앉은 어깨가 자석에 이끌리듯 향하던 선착장은 치열한 전쟁터였다. 수북이 쌓인 생선 배를 가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린내가 요동을 쳤고 방향 잃은 생선 비늘은 온몸에 달라붙어 햇살을 받을 때마다 반짝이는 눈물이 되었다. 그랬다. 엄마에게 하루는 악착같이 버텨야 할 생존이었다. 자신을 돌볼 여유는 사치였고 어린 자식은 없는 살림에 보탬이 전혀 안 되는 속앓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늦둥이 역시도 세상을 조금 알아가는 눈을 뜨자 남과 다른 점을 알게 되었다. 친구 엄마들보다 유난히 늙은 모습과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비린내가 진동하는 너덜거리는 옷이 부끄러웠다. 주름마다 가득한 가난의 흔적이 그냥 싫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영악함으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학교에 오지 못하게 했다. 그랬기에 풍성한 가을바람이 황금 들녘을 날아다니던 초등학교 첫 운동회는 기쁨보다는 고민이 많았다.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았던 당신이 김밥까지 준비해 막내딸을 보러 오겠다니 가슴이 울렁이고 머릿속이 깜깜했다. 풀 죽은 모습으로 집에 오니 식구들 먹을 양까지 준비한 김밥이 쟁반마다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와이리 늦었노. 내일 운동회 때 우리 딸이 달리기 선수로 뽑혔다매. 엄마도 가서 달리기 얼마나 잘하는지 봐야지.”
김밥 끝을 잘라 입에 넣어주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미소보다 땟국물이 졸졸 흐르는 앞치마와 라면을 엎은 것처럼 뽀글뽀글한 머리와 주름이 자글자글한 이마가 먼저 보였다.
 “엄마, 내일 안 오면 안 되나? 언니 보고 오라 하면 안 되나. 엄마 늙어서 친구들한테 창피하다!”
어린 마음이 비친 속내를 들고 얼마나 놀랐으면 들고 있던 칼에 손가락이 베여 도마 위에 피가 흥건했다. 살을 뚫고 나온 붉은 아픔은 한참을 멈추지 않고 서러워했고 묵언 수행하는 스님처럼 말이 없어진 앙다문 입은 시퍼렇다 못해 푸른빛이 되었다. 자식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부모는 피눈물을 삼키고 상처 입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운동회 하는 날은 하늘이 얼마나 맑고 푸른지 하늘에 푸른 잉크를 풀어놓은 듯했다. 백군이 된 나는 흰 머리띠를 하고 흰색 운동화를 신고 열심히 응원도 하고 공 굴리기, 100m 달리기를 하고 드디어 계주 경기에 나갔다.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운동장에 대표로 나온 언니 오빠들과 함께 일 학년이라 첫 번째 주자로 출발했다. 총소리를 듣고 출발을 하고 얼마를 달렸을까.
 “수정아, 달려라. 빨리빨리. 달려.”
분명 엄마 목소리였다. 언니와 왔는데 일하러 간다고 했는데 미끄럼틀 뒤 구석진 나무 밑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는 분명 엄마였다. 이상하게 자꾸 눈앞이 흐려졌다. 누가 심장을 주물럭거리는지 울렁울렁했다.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넘겨주고 미끄럼틀로 달려갔다. 미안함을 알아버린 동심은 죄책감에 다시 어미를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어디에도 흔적이 없었다. 엄마는 몰래 숨어서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이 미치도록 슬퍼서 돌아가는 길 내내 눈물을 훔쳤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울었을 것이다. 언니는 도시락에 가득 한 김밥을 왜 안 먹냐 물었지만, 그날 김밥은 나에게 평생을 따라다니는 문신처럼 아리고 쓰라렸다.
 시간은 우리에게 잊음이란 공통분모를 주어 고맙기도 하지만 가슴 한쪽에 추억의 자리를 내어줌으로 까닭 모를 그리움을 불쑥 내놓기도 한다. 엄마의 손가락에는 그날의 베인 상처가 아직도 오롯이 남아있다.
흐르는 시간 속에 희미해졌을 뿐 아픈 흔적은 그대로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면 부모 마음 안다지만 쉰이 되어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 수 없기에 곁에 있음만으로 든든한 것이 부모라는 이름이다. 좀 더 다가가지 못한 어색한 살가움이 후회로 남았다. 저물어 가는 세월은 점점 엄마의 모습을 닮아간다.
 만국기 휘날리는 운동회의 기억도 미처 먹지 못하고 남겼던 김밥도 이제는 돌아가지 못한 유년의 안타까운 설렘이다. 남겨두고 온 집 마당 감나무에 매달린 새빨간 감처럼 고운 아련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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