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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별과 등대 Jul 30. 2020

가을

2. 내가 좋아하는 노래


 -DJ 달-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단풍잎이 붉게 물든 가을이 오면 저마다의 사연으로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추억과 그리움을 담은 노래는 가을이란 계절과 어울려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즐거움을 준다.
 늦은 아침. 잠에서 깨어 노래를 들으려고 음악 앱을 보다가 연관 검색어에 떠 있는 노래가 눈에 띄었다.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가을 아침’이라는 노래인데 들어보니 멜로디도 좋았고 특히 가사가 마음에 들었다.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가만히 눈을 감고 노랫말의 장면을 상상하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퍼진다. 맑은 음색도 가을의 청량함과 잘 어울리지만, 이 노래의 단연 으뜸은 노랫말이다. 
 리메이크한 노래이다 보니 원곡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1991년도에 ‘양희은’이 부른 노래였고 원곡은 멜로디가 잔잔하면서 목소리는 담담하고 묵직해 뭔가 모를 푸근함을 주었다. 젊은 우리가 들었을 땐 아이유의 노래가 다가오고 나이 드신 분은 깊은 목소리에 젖은 가을을 느끼는 양희은의 노래가 딱 맞다.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 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와 구수하게 밥 뜸 드는 냄새가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오늘은 가슴에 남는 가을 노래 한 곡을 들어보는 걸로 행복지수 업!!





-DJ별-

 어느새 마지막 곡이네요. 바람이 선선해진 가을에는 왠지 모를 쓸쓸함과 공허함이 드는데요.
이걸 가을 탄다고 하나요? 같이 있어도 혼자 같고 함께 해도 외로운 그런 기분.
여러분도 혹시 지금 저와 같다면 이 노래가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랍니다. 서영은이 부르는 '혼자가 아닌 나'를 들려드립니다. 제목에서부터 든든함이 느껴지죠?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다시 햇살은 비추니까.-
가사처럼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오늘을 또 내일을 살게 하잖아요.
죽을 만큼 힘든 날도 뼈에 사무치는 아픔도 지나고 보면 스치는 바람처럼 흔적이 없어요. 다만 그 기억 속에 나를 지켜준 누군가가 남아있을 겁니다. 지금도 옆에 있다면 손 한번 잡아주세요.
 작은 위로가 필요했던 제게 큰 위로를 준 곡이었네요. 제법 쌀쌀해졌네요. 겉옷 꼭 챙기고 감기 조심하세요.
깊어가는 가을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은 밤하늘의 별도 쳐다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유를 가지길 바랍니다.
 안녕. 오늘은 여기까지. DJ별 인사드립니다. 고운 밤 보내세요.





-DJ 등대-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유달리 계절을 타는 사람이 많다. 가까운 지인 한 분은 가을만 되면 외로워 미치겠다며 하소연을 하고 친구는 바람과 함께 해마다 가을이면 사라져 버린다. 떨어지는 낙엽에 감정이 이입되어 괜히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노란 은행잎이 깔린 거리를 코트를 입고 걸어보는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길을 걷다 들리는 노래에도 가슴이 먹먹해 멍하니 하늘을 보며 쓸쓸한 그림자를 맴돈다. 그만큼 가을이란 계절은 별거 아닌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매력을 지녔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이었다. 친구들과 짧은 일탈을 계획하고 방황의 허세를 준비했다. 세상 모든 것이 삐딱해야 정상이라 생각했던 사춘기 소녀는 친구 몇 명을 모아 학교를 탈출하자는 거사를 모의했다. 왜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정답은 없다. 단지 그냥 꽉꽉 눌린 스프링이 퉁겨져 나온 것뿐. 무슨 대단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애국을 위해 비밀리에 모인 지사들도 아니었으니 어디를 가야 할지 목적지도 없는 난파선이었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 시내로 무작정 출발하면서 계획을 세우자.’ 주머니를 털어 모은 돈으로 신세계의 첫발을 들인 곳이 바로 음악다방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야 누릴 수 있는 공간에 침투한다는 임무를 부여받은 세 소녀는 일단 서툰 화장을 준비했다. 엄마 화장대를 뒤져 대충 챙겨 온 화장품의 쓰임새를 제대로 알 리 없는 초보의 손놀림은 형편없었다. 굵기 다른 눈썹에 허연 파운데이션이 마치 피에로를 보는 듯 우스꽝스럽지만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각자 엄지를 추켜세우며 만족을 표했다.
 커피 한잔에 김이 오르는 그림이 그려진 간판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문을 여니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고등학생인 걸 알아보면 어쩌지? 괜히 주눅이 들어 고개를 푹 숙이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요즘이야 음악이 필요하면 원하는 대로 여러 방법으로 듣지만,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져 빠른 노래가 느린 노래로 바뀔 때까지 들었던 그때는 라디오 방송과 음악다방이 유일하게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는 방법이었다. 더군다나 대학생이 되어야 들어가는 금단의 성역 같은 음악다방에 앉아 알싸한 커피 향이 주는 신선함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뿌연 실내에 가득 찬 젊음의 열기는 심장이 떨리고 막혔던 탈출구를 찾아낸 기쁨으로 신났다.
 건너편 DJ 부스에 앉은 뽀얀 얼굴의 오빠가 낮은 저음으로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라며 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를 보냈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신문물을 경험하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만히 누르고 있는데 귓가에  DJ 오빠의 따스한 말이 들렸다.
 “자, 다음 신청 곡은 HEART의 ALONE입니다.”
음악이 다방 안에 흐르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잔잔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울림이 좋았다. 위로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래가 끝난 후에도 한참을 말없이 식어가는 커피잔을 바라보며 다방에서 나눠준 신청 곡 종이에다 'alone'을 수십 번 썼던 날이었다. 상처를 보듬어준 노래 한 곡으로 거창했던 일탈은 물거품이 되고 각자의 집으로 무사 귀가를 했던 어느 가을 오후였다.
 사는 게 힘들어 기운이 빠지거나 혼자란 생각에 슬프고 우울해지면 습관처럼 HEART의 alone을 듣는다.
한 번씩은 서랍 속 먼지를 뒤집어쓴 카세트테이프를 만지작거리거나 CD를 꺼내 후후 불기도 하고 보물처럼 몇 겹으로 싸 둔 LP판을 꺼내 보기도 한다. 삶이 소용돌이쳤던 지나온 시간에 나를 위로해주고 붙잡아줬던 노래였다. 앞으로도 얼마나 이 노래와 함께할까?
가을을 따라 흐르는 노래가 잃어버린 추억을 깨우는 날이다. 그날 가출을 감행했던 세 소녀는 쉰을 넘어가고 있는데 좋아하는 노래는 늙지도 않는다.


     *Heart - Alone 

I hear the ticking of the clock
시계가 째깍이는 소리를 들었어요.
I'm lying here the room's pitch dark
난 여기 누워있어요. 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요.
I wonder where you are tonight
당신이 오늘 밤 어디 있을까 생각해요.
No answer on the telephone
전화를 안 받는군요.
And the night goes by so very slow
그리고 밤은 너무나도 천천히 지나가요.
Oh I hope that it won't end though
오 난 밤이 끝나지 않길 바라요 비록
Alone
외롭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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