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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별과 등대 Jul 18. 2020

여름

5. 청춘 보고서


 이번 글의 주제는 ‘청춘’이다.

어떤 글을 쓸까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청춘이 무엇일까 어떤 의미가 담긴 단어일까 궁금해졌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 시절을 뜻하는 단어라는 설명이 되어 있었다. 딱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말이다.

지금의 나는 하고 싶었던 미용의 꿈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공부를 시작할 때는 몰랐는데 미용기술을 배우면서 몸에 심한 약품 알레르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품을 만질 때마다 손가락도 모자라 팔까지 시뻘건 반점이 올라오고 물집이 터지고 가렵고 결국에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가 생겼다. 꼭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해보려 했는데 위생장갑을 껴도 나아지지 않는 지독함에 포기해야만 했다. 친구들은 사회생활을 하며 저마다의 자리에서 당당히 꿈을 키워나가는데 나만 뒤처진다는 마음에 의기소침하며 보낸 시간이 길었다.     

 사람들이 한 번씩 “꿈이 뭐니?” 물어본다.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돈 많은 백수요.” 하고 웃어넘긴다.

솔직히 꿈이 없는 게 부끄러워 장난 같은 말로 대답을 회피했다. 비교당하기 싫은 현실을 아니까 애써 외면한 것도 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돈 많은 백수가 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우습고 현실성이 없는 꿈이라 이야기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세상이 준 가장 큰 기회를 받았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풋풋한 젊음의 선물인 ‘청춘’을 가지고 있음을.

막연한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가장 멋진 배경인 청춘을 가졌으니 한번 해볼 만하다. 힘내라. 젊음아!




 인생에서 가장 예쁜 나이 20대. 인생의 사계절이 있다면 이때는 여름이며 곧 ‘청춘’이다.     

 20살. 이제 갓 사회 초년생이 됨과 동시에 자유를 얻었을 때는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세상과는 다른 현실에 하루하루가 혹독한 적응기였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인간관계를 배웠고 홀로 독립해 월세와 공과금을 벌며 돈에 대한 개념을 새로 배웠다. 노동보다 결과물은 생각보다 작다는 것과 잘해도 질투의 대상이 되어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루하루가 체험 삶의 현장이었고 집은 잠깐 잠자는 장소였다.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통장은 늘 텅 비었고 엄마에게 용돈 한번 드린 기억이 없다. 자식의 청춘을 위해 묵묵히 지켜본 엄마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럭저럭 사회에 적응이 되어 웬만한 일에는 가벼운 웃음으로 넘길 때쯤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

 항상 바라 왔던 일처럼 23살이 채 지나기도 전에 결혼을 선택했다. 속도위반도 아니었고 누가 하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예쁜 나이에 누려야 하는 것들에 작별 인사를 하고 부부의 길에 첫걸음을 시작했다. 부부의 길은 연애의 길과는 확실히 달랐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같은 공감대를 찾아가는 삶이 되었고 의견 차이의 싸움도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는 좋은 해결안이 되었다. 살아온 날이 주었던 아픔이 많았기에 살아갈 날의 희망이 위안을 주고 상처를 보듬어 안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생활이 어려워도 마음이 편하니 살만했다.

 결혼하고 다음 해 무더웠던 여름에 신랑과 나를 쏙 빼닮은 딸이 태어났다. 얼굴에 핏줄이 타 터지는 진통 속에 가슴에 안은 아이는 예뻤다. 나는 24살 꽃다운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동시에 엄마로의 나이 한 살이 되었다. 그렇게 아이와 같이 엄마로 다시 자라는 것이다. 한 살씩 나이를 먹은 딸과 엄마는 꽤 볼만한 모녀의 모습이 되었다. 같이 울고 껴안고 버텨낸 시간은 우리를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엄마 나이 네 살에 새삼 깨닫는다. 가정을 꾸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은 이뤄졌다. 그냥 저녁 한 끼 가족들이 모여 행복하게 웃으며 먹고 싶었던 소녀의 꿈을 청춘에 만들었다. 셋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아이의 애교에 녹아 웃기도 하고 신랑과 적당히 싸워가며 사는 지금이 참 좋다.

 20대에 소망했던 딱 그 모습이다. 그 안에서 이제 ‘우리의 꿈’을 준비한다. 셋이 만들어갈 세상.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딸이 이 글자는 뭐냐고 물어본다.

 “청춘! 따라 해 봐. 청춘이 뭘까?”

 “청……춘? 엄마가 얘기해줘요”

 “음……아! 엄마의 청춘은 너야”

오늘도 내 청춘은 자라고 있다.





 “야. 일단 가자.”

그 한마디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명도 반대를 하지 않았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도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누구인지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냥 훅 치고 들어온 말. 강릉 가서 해 뜨는 거 보고 싶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빠른 ktx를 타거나 직접 운전을 하거나 이른 아침 도착하는 고속버스를 타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30년 전 1990년대는 쉽지 않은 일탈이었다.

 친구 중 제법 잘 산다는 소리를 듣는 B의 늠름한 ‘포니 2’에 신경을 집중했다. 비가 쏟아지면 창문 틈으로 빗물이 비집고 들어왔지만 젊음을 싣고 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속도를 내면 벌어지는 조수석 창에 긴급 처방전은 앙증맞은 노끈을 있는 힘껏 당겨 다리 사이에 끼우는 것이었다. 와사풍이 걸린 차는 시동을 걸면 쉴 새 없이 떨었고 콜록대는 기침을 토해내는 소음기는 저세상 물건이 된 지 오래였지만 우리에게는 세상 최고의 ‘드림카’였다. 달려만 준다면 아무 문제없었다.

강릉까지 가는 시간은 대략 7시간이고 초행길이라 분명 두세 번의 길 물어보기는 있어야 했고 나머지는 각자 주머니를 뒤지는 일이었다. 서로 눈치 보기 바쁜 얇은 청춘의 주머니는 꼬깃꼬깃 접힌 지폐 몇 장과 동전이 뒤섞여 먼지와 함께 손에 잡혔다. 다섯 명이 합친 돈으로 기름을 넣고 커피 한잔 정도의 여유가 계산되자 연습이 없었다.     

 B는 운전대를 잡고 면허증을 딴 자랑을 무언의 어깻짓으로 씰룩이며 시동을 걸었다. 경쾌한 소리가 나길 기다렸지만 터덜거리는 경운기 소리가 나더니 힘겹게 시동이 걸렸다.

 “야호, 시동 걸렸다. 떠나자!”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설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출발과 동시에 함성을 지르게 했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젊음은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막무가내의 본능에 불을 붙였다. 동해 남부선을 타고 울산에서 출발한 우리는 바다를 따라 난 해안도로를 무작정 달렸다.

 여름에 익은 밤바다는 파도에 떠밀려 온 달과 별의 이야기에 더웠던 하루를 위로받고 윙크를 시작한 등대는 유혹에 넘어오지 않는 야속한 밤하늘에 하소연해댔다. 어딘지 모르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갈매기의 울음에 바다를 바라보고 카세트테이프에서 나오는 신나는 음악을 따라 부르며 음치의 절정을 고백했다.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밤이었다. 친구의 얼굴마다 즐거움이 가득하고 설렘으로 벅찬 가슴은 마냥 좋았다.

요즘처럼 내비게이션이 있어 길 안내를 해주지도 않고 멋진 휴게소가 있어 낭만 가득한 커피 한잔을 마시지도 못하는 시절. 고속도로가 뻥뻥 뚫려 스피드를 만끽하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일출 속으로 먼지를 뿜으며 달릴 수도 없던 때였다. 인사성 밝은 아이가 되어 차들끼리 막히면 서로 양보하고 마을버스 뒤에 서면 버스가 설 때마다 같이 동네에 인사했다. 그래도 좋았다. 우리의 목표인 강릉에 도착했으니 말이 필요 없었다.

 잠을 포기하고 얻은 경포대의 일출은 무모함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젊었기에 가능했던 청춘의 무모함은 서로의 가슴에 붉은 추억을 남겼다. 바다에 빠졌던 붉은 불덩이가 하늘로 떠오르자 세상은 약속이나 한 듯 밝아지고 삶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늘을 물들인 스물한 살의 해는 심장에 박혀 짜릿했다. 모두 말이 없었다. 각자의 느낌 그것만으로 가치가 충분했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나눠 마시며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야. 이거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거지. 나이 들면 절대 못 해.”

종이컵으로 건배하며 친구가 툭 던진 그 말을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살아보니 새삼 인정하게 된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지난날. 내 청춘에 대한 짧은 보고서에 젊은 그리움이 추가되었다.

청춘을 함께 한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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