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흑역사 대결
시간이 지나고 떠올려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또 수치스럽기도 한 지울 수 없는 ‘흑역사’가 누구에게나 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초등학생 때이다. 엄마의 지인이 다섯 살인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놀러 왔다. 처음으로 남자 동생이 왔기에 술래잡기도 하고 침대에서 뛰어내리기도 하며 열심히 놀아줬다. 마당에 나와 깡통 차기를 하자 했는데 업어달라고 해서 등에 잠깐 업었다. 재미있으라고 비행기 놀이를 하는데 등에 업힌 동생이 더 빨리 달리라며 등을 밀었다. 갑자기 무게가 앞으로 쏠리며 마당 시멘트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머릿속에 내가 손을 놓으면 동생이 다친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렸지만 누나라는 책임감에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중력의 법칙은 그대로 땅바닥에 나를 곤두박질하게 했다. 얼굴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앞이 깜깜해졌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리니 피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놀란 동생이 악을 쓰며 울었다. 내가 아픈 것보다 놀러 온 동생이 다쳤을까 괜찮다며 달랬다. 달래다 보니 바닥에 하얀색 조약돌 두 개가 보였다. 주워 살펴보니 조금 전까지 내 몸의 일부였던 앞니 두 개가 깨져있었다. 무서웠다. 갑자기 눈물이 통곡으로 변했다.
울음소리에 놀라 뛰어온 엄마는 새파랗게 질려 부러진 이를 급하게 들고 냉장고로 향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우유에 이를 담아 가면 이가 붙는다며 손을 잡고 근처 치과로 발이 안 보이게 달리기를 했다.
“아니, 누가 그런 돌팔이 방법을 가르쳐 주던가요?”
치과의사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고 웃었고 결국 소중한 영구치 두 개는 이빨 요정이 가져가 버렸다. 말 그대로 앞니 빠진 개우지가 되었다.
치료하고 다시 새로운 이를 만들어 붙였다. 가짜 이를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서러웠지만 치아의 성장에 맞춰 몇 년마다 새로 갈아줘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아무도 못 알아보는데 사람들 앞에는 입을 가리는 습관이 생겼다. 혀로 한 번씩 이를 쓸어보는 버릇도 생겼다.
중학교 체육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잠시 볼 일이 있다며 자율 시간을 주셨다. 운동장에 앉아 친구들이랑 우스운 이야기를 했는데 옆에 앉은 친구가 웃다가 손으로 얼굴을 쳤다. 이게 웬일인가! 지금까지 잘 붙어있었던 이가 작별 인사도 없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얼른 입을 가리고 재빠르게 주위를 살피고 눈이 빠지라 찾았다.
“뭘 찾아. 얘기하다 말고.”
궁금해 우르르 모인 친구들이 동그랗게 원을 만들었다. 한참을 둘러싸여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빠진 이를 보여주며 설명을 하자 영구 같다고 놀리고 배를 잡고 웃었다. 놀림에 화도 나고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속이 상해 눈물이 났다.
일을 보고 온 선생님은 나의 눈물에 상황을 물었고 흩어져 있던 반 친구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빨리 찾고 들어가자. 제일 먼저 찾는 사람 과자 한 봉지다.”
함성을 지르며 보물 찾기처럼 서로 구석구석 찾는데 찾았다는 큰소리가 하수구 쪽에서 들렸다. 달려가니 하늘을 보고 드러누운 치아가 햇볕을 받아 반짝였다. 하수구 판을 힘을 합쳐 들어 올려 사라졌던 이를 꺼내 수돗가로 가서 수십 번을 씻었다. 수업을 마치고 치과에 갈 때까지 끼고 있어야 하는데 자꾸 빠졌다. 잃어버리면 안 되니 할 수 없이 주머니에 넣었다. 언제 소문이 났는지 영구가 된 나를 보려고 다른 반에서 구경을 왔다. 창피하고 얼굴이 붉어져 수업 시간 내내 고개를 숙이고 혀로 잇몸을 만지작거렸다. 사람들이 흑역사를 고르라면 그날이 단연 일등이다.
아! 잊고 싶다. 친구들아 잊어줘라. 제발.
이 대결에서 이기려면 수위 높은 흑역사를 꺼내야 한다.
대부분 음주 후의 이야기라서 글로 풀기에는 너무 센 것 같아 어릴 적 부끄러운 일을 용기 내 적어본다.
1. 초등학교 졸업사진 사건
예쁜 옷이라고는 없었던 옷장을 이리저리 뒤져 고르고 골라 입은 옷이 초록색 강아지가 그려진 티와 고동색 바지였다. 둥근 단발에 눈도 작은데 직사각형 안경을 쓴 아이는 말 그대로 패션 테러리스트였다. 졸업사진 찍는데 옷이 그게 뭐냐는 친구의 말에 깜빡하고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거나 입었다며 쓴웃음을 보였지만 사진 속 아이는 웃으며 울고 있었다.
가진 옷 중에 제일 예쁜 거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담담하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졸업 사진을 굳이 찾아서 꺼내 보고 싶지 않다. 아픈 기억은 그 자리에 두는 거지. 괜히 다가서서 말 걸면 별의별 수다로 그날을 곱씹게 하니까.
친구들아 나를 이…… 잊으시오!
2. 날다람쥐도 날다가 떨어진다.
질풍노도 사춘기 중학생 시절. 중2병의 절정을 자랑하던 가을 오후.
나는 소문난 월담계의 날다람쥐였다. 들어보니 학생주임 선생님과 선도부는 날 잡으려고 내기도 했다 할 정도다. 신출귀몰함은 가히 홍길동을 능가했다. 점심시간이면 번갈아 가며 보초를 섰음에도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는 나를 정문 안에서 지켜봤으니 분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잘 다니는 정문 옆 구멍은 익히 알려진 터라 아무도 모르는 관사 뒷담을 이용했기에 들키지 않았다. 뒤로 나가는 걸 봤는데 어느새 앞에 와 있으니 헷갈리는 동선에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다. 항상 치마 안에 체육복을 입고 거사를 도모했는데 그날은 여름 하복 치마만 입고 탈출을 감행했다. ‘찌이이익.’ 철조망에 걸린 치마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반으로 갈라져 담에 대롱대롱 매달린 나는 오도 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선생님과 선도부의 얼굴에는 수고를 보상받는 미소가 묻어있었다.
속바지 차림으로 겨우 내려와 교무실 복도에서 손 들고 벌섰던 여학생을 본 적이 있다면 혹 동창 일지 모르니 잊으시오.
흑역사도 지나고 보면 모두 추억이다.
지나온 시간의 역사 중 잊고 싶거나 지우고 싶은 날들이 많지만 돌이켜보면 이겨내고 무사히 지나왔기에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p.s: 가을이 가득한 벤치에 앉아 졸업 앨범을 펼쳤다가 다시 접었다.
아직은 혼자만 간직하련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소리가 난 곳은 도로를 사이에 둔 맞은편 커피 자판기다. 고개를 돌리지 못해 눈알만 굴려 상황을 살피니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 커피자판기 앞에는 손에 커피를 든 택시기사 아저씨들이 호기심 가득하게 이쪽을 바라보며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밤사이 실종된 정신을 빨리 들어오라 호출했다. 상황 판단이 급선무인데 머릿속이 뒤죽박죽 전쟁터다. 조각난 퍼즐을 하나씩 맞춰보니 큰일이다. 기억이 멈춘 자리는 택시를 기다리며 앉았던 계단이다. 그 후는 기억이 없다. 정말 검은 색종이다. 뭔가 잘못되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 틀림없다. 손을 뻗어 대충 더듬으니 까끌까끌한 시멘트가 손바닥에 만져졌다.
사태 파악을 해보니 벼락을 한 방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른이 넘은 아줌마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잠이 들었으니 뉴스에 나올 일이었다. 충격에 놀라 얼어버린 몸은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요지부동인데 기가 막히는 건 옆에 나란히 누운 친구가 코를 골며 편안히 취침 중인 현실이었다.
어젯밤 친구의 연락으로 오랜만에 구청 앞 고래 고깃집에 모여 왁자지껄 한바탕 회포를 풀었다. 부부 이야기에는 각자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건배를 했고 자식 이야기에는 우리도 그때가 있었으니 한 번 이해하자 술잔을 따랐다. 누구의 승진에는 부러움이 담긴 질투도 있고 불안한 가정에는 그래도 곁에 있는 사람이 쉽다는 경험도 한몫했다. 지친 일상이 머문 자리는 잔소리와 수다로 흥겨웠고 고만고만한 살림살이는 하나씩 나아지는 자랑에 시간은 새벽으로 달렸다.
구석에 앉은 나는 별로 내세울 것 없는 현실보다 못 먹는 고래고기로 인한 안주의 부재가 불편했다. 건배 잔은 계속 파도를 타는데 안주 없이 깡 술만 들이켜는 속은 늘어나는 알코올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비싸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먹기도 부담인 고래고기를 양껏 먹는 자리이니 전부 신이 났는데 나만 빈속을 부여잡고 술과의 고독한 싸움을 해야 했다. 목까지 차오른 술 덩어리를 꺼내 확인하고 싶을 때쯤 술자리가 끝났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빠른 걸음으로 신발을 신고 부리나케 나서는데 뒷덜미를 잡아채는 익숙한 손에 도망갈 시간을 놓쳤다.
“어이 한잔 더 해야지. 어딜 갈라고.”
빠져나가는 친구들은 윙크까지 하며 볼모로 잡힌 나의 등을 두드렸다.
살려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잡혀 그 건물 4층에 있는 ‘7080 노래주점’에 질질 끌려갔다. 외출 나간 정신을 수습하니 벌써 우리 테이블에 커다란 양주 두 병과 과일이며 마른안주가 미리 주문한 것처럼 놓여있었다. 이제부터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단계다. 사람이 술을 마시는 단계는 인간의 정이 오간다. 술이 술을 마시는 단계는 서로에 대해 섭섭함이 고성이 된다. 술이 사람을 마시는 단계는 내가 누구인지도 몰라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나와 싸움이 되던지 같이 나눈 대화는 안드로메다를 헤매다 우주 쓰레기가 된다. 우리는 안드로메다를 건너 은하계를 떠도는 철이와 메텔이 되어 ‘은하철도 999’를 타고 사람이 되기 위한 몸부림을 건배 잔을 부딪치며 정신 줄을 놓고 있었다. 비몽사몽이 되어 엘리베이터를 탄 기억은 있다. 기억이 끊긴 공간은 아마도 1층에 내려와 택시를 기다린다고 잠깐 바닥에 앉았으리라. 옆에 친구도 같이 앉았는데 그 상태 그대로 꿈나라로 직행했음이 틀림없었다. 그 위대한 결과물이 술에 취해 잠인 든 노숙자였다.
아직 꿈속에서 달콤한 코를 고는 친구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일어나 봐라. 여기 길바닥이다. 빨리”
보는 눈이 있어 세게 흔들지도 못해 몇 번을 꼬집고 살짝 흔들었더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가출한 정신이 돌아온 친구도 상황을 파악했다.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부끄러움보다 당장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까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직면했다. 멍청해진 머리를 굴려야 했다. 골목 어귀에는 청소를 시작한 환경미화원의 빗자루질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번의 굴욕으로 살아남는 길은 이것뿐.
“하나 둘 셋 하면 무조건 눈 감고 뛰자. 일단 골목부터 살펴라.”
친구는 심오한 결심을 한 애국지사처럼 낮은 목소리로 결사의 항전을 알렸다.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친구의 입에서 숫자가 세어졌다. ‘셋’ 소리에 잽싸게 몸을 일으킨 우리는 빛의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우사인 볼트도 그날만큼은 우리보다 빠르지 않았다.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육상선수에 뒤지지 않는 달리기는 가히 신의 영역이었다. 안전구역이라 생각되는 골목에 도착해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심장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했다. 골목에서 눈만 빼꼼 내다보니 지켜보던 기사 아저씨 한 분은 놀라서 종이컵을 놓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자판기 앞에 엎지른 커피가 아저씨의 신발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새벽 공기를 무협지의 권법처럼 날았다. 전광석화처럼 일을 마무리하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귀부인의 우아한 발걸음으로 걸으며 옷매무새며 가방을 만졌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지갑에서 고맙게도 돈만 살짝 꺼내 가고 친구는 거금이 든 지갑 채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지방 출장을 가려고 찾았던 경비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자랑하던 비싼 명품지갑도 행방불명이 되었다. 꼬질꼬질한 옷은 술 냄새로 엉망이고 땟국물이 잔뜩 묻은 얼굴은 영락없는 노숙자였다. 서로 쳐다보며 망연자실했던 그날은 평생의 대형 흑역사로 술 다이어리 안주 칸 52번째 줄에 남았다.
친구와 나는 술자리에 앉으면 가끔 이야기를 꺼낸다. 커피를 쏟은 택시기사 아저씨도 청소하던 환경미화원도 궁금하다. 밤새도록 도로 위에 다니던 사람이며 지나치던 차들이 떡 실신한 우리를 어떻게 말했을까? 하며 한잔을 기울인다. 흑역사를 겪고도 술을 포기 못 한 우리의 현재를 웃으며 또 건배한다. 다만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술은 적당히’란 교훈을 지키려 노력 중이다. 취기가 살짝 오르니 기분이 좋아진다.
달리기 한 번 하자해 볼까? 그날 새벽의 그 골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