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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Dec 25. 2019

윤희에게

숨겨야 하는 사랑 따윈 없다

오해했다. 스포나 정보가 전혀 없는 채로 영화를 보는 것이 이렇게 짜릿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몰입했다. 새봄(김소혜)의 깜찍한 이벤트가 단순히 엄마를 그토록 외롭게 만들었던 첫사랑 찾아주기 정도일 거라, 게다가 첫사랑은 당연히 이성일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끔찍한 편견이었다.


그럼에도 설렘은 여전했지만 눈이 시리도록 하얗던 눈으로 뒤덮인 세상 속에서 마주한 윤희의 사랑은 줄곧 처연했다.


'오겡기 데스까'로 시작하는 쥰(나카무라 유코)의 편지에 곧장 화답했지만 들려주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던 건 윤희의 사랑은 '질병'이나 '잘못된' 것으로 금기시된 과거 속에 갇혀 있어서였던 건 아닐까.


쥰에게 설레던 류스케에게 "오랫동안 숨겨왔던 일이라면 계속 숨기고 살라"라는 말에 그가 그동안 사랑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쌓아야 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딸에게 외로워서 혼자 사는 것조차 어려워 보이는 윤희의 상처 역시 쉽게 공감되지 못했다.


좀 더 외로워 보여 윤희를 따라나선 새봄이나 자신에게 무관심해서 아빠를 따라나선 쥰이나 그들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였을까. 스스로 외롭고 시린 가슴으로 만든 건 아닌지.

출처: '윤희에게'


"나는 아름다운 것만 찍어"


영화는 사실 그다지 친절하게 윤희의 사랑을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그리고 담담하게 풍경처럼 카메라에 함께 담기길 바라는 듯하다. 새봄의 말처럼 딸에게 엄마의 첫사랑은 아름다운 것이었을까?


새봄이 엄마의 오래된 필카를 손에서 놓지 않는 것처럼, 윤희가 쥰을 놓지 못하는 것처럼 시간을 담는다. 그리고 오래된 멜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우리는 새봄에게서 마틸다를 느낀다.


개인적으로 윤희에게 보다 새봄에게 몰입감을 느꼈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과거의 기억을 오롯이 현재로 끌고 들어온 새봄의 깜찍함이 곳곳에서 활력소가 된다. 새봄이 없었다면 윤희는 좀 더 오래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첫사랑은 이젠 가슴에 묻는 일은 없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지도 모르고.


출처: '윤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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