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상사가 아니다.
워커홀릭에 빠진 직장 상사를 만난다면 둘 중에 하나다. 빠져들거나 벗어나거나. 이 영화는 그 이야기를 하는데 직장 상사에게 빠지지 않고 하퍼(조이 도이치)에 흠뻑 빠지게 된다. 이 미소가 빛나는 여인네를 언제 봤던가 했더니 <7번째 내가 죽던 날>에서 마음을 흔들었던 여인네다.
영화는 한 건물에서 워커홀릭 직장 상사를 모시는 하퍼와 찰리(글렌 파월)의 고단한 일과를 시작으로 직장 내 갑질의 끝판왕들을 보여준다. 온 갖 히스테리와 '늘 새로운 것'을 찾아오라고 메가폰을 잡는 키얼스틴(루시 리우)과 과격하고 저돌적인 투자 전문가 릭(테이 딕스)의 심기를 맞추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야 하는 비서인 두 사람을 통해 우리 하루가 얼마나 비참하고 쓸쓸해지는지 보여준다.
물론 하퍼와 찰리가 그런 비이성적인 상사의 갑질의 버텨내는 일이 단순히 밥줄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었던 하퍼에게 키얼스틴이 멘토였고, 과격하고 저돌적인 투자 전문가 릭의 눈에 들어 승진과 아울러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투자 전문가가 되고 싶은 찰리에게 릭은 넘어야 할 벽이다.
고단한 삶의 끝판을 보여주는 이 둘이 두 상사를 연애질로 묶어보자는 작당모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기들의 연애질로 마무리하는 건 사실 안 봐도 비디오일 만큼 뻔하지만 나름 매력적인 부분도 적지 않기도 하고 하퍼의 미소에 용서가 된달까.
어쨌거나 이 영화는 이런 내용과는 다르게 '잘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인다. 멘토의 온 갖 비위를 맞추지만 현실에서는 정작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하퍼를 통해 뭣이 중헌지를, 승진을 위해 더럽고 치사한 꼴을 당해도 버티기만 하는 건 자신도 잃고 결국 토사구팽이라는 깨달음만 얻는다는 결말로 치닫는다.
직장이라는 곳에는 '또라이 법칙'이라는 게 존재하고 언제나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며 밥줄인 이상 놓는다는 건 지옥의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일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나름의 로맨틱이 존재하고 성과에 대한 만족감이나 열정 비슷한 게 살아남아 있기도 한 곳이라는 걸 되새기면서 다시 한번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과 '할 수밖에 없는 것' 사이에서 나를 다독이게 된다.
직장 상사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