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묘한 소설이다. 나름의 표현력을 모아 모아 해보자면, 후텁지근한 습하디 습한 날씨에 머리칼은 휘날리지도 못할 정도의 얕은 바람에도 바싹 건조된 한치처럼 무미건조한 말투가 매력적이랄까.
'인생의 비달까지 내려간 사람들'이나 한다는 택배를 바닥이 있으면 그건 진짜 바닥이 아니라고, 결코 하고 싶지 않은 택배를 시작해 버린 남자가 택배를 시작했다는 이유로, 아니 어쩌면 담배를 나눠 피웠다는 이유로 죽을 뻔했다는 설정이 왜 매력적일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한번 그렇게 느꼈다. 아주 찐하게.
택배가 쉴 틈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숨 쉴 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무식이란 건 알아야 하는 걸 모르는 거지 몰라도 되는 걸 모른다고 해서 무식하다고 하진 않아." p43
이 남자 꽤 매력적이다. 시크하다고 하기엔 건방지고 박식하다. 그 박식함을 비아냥에 할애하는 게 불안불안하지만 어쨌거나 현재보다는 과거가 궁금한 남자다.
"연민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지지 못하면 동정으로 전락하고. 누구에게도 누군가를 동정할 권리가 없다. 그게 내 생각이었다." p60
이 남자 또 매력적이다.
'돼지와 뒹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버나드 쇼가 했거나 말거나 나는 이 남자에게서 배운다. 진짜 그러면 안 된다는 것과 사람 좋다는 말은 상대방이 호구로 본다는 뜻이라는 박명수의 말이 스친다. 우린 모두 싸움닭이 되고 싶진 않지만 결국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조련하고 있으니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으면 늘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 남자가 그러니 참 새롭게 다지게 된다.
처연한데 참 결기는 넘쳐 이 남자 또 매력적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남자는 내가 매주 사는 로또의 가치도 이해하고 있다. 어떻게든 날로 먹고프다. 아! 이 책의 묘한 매력을 알았다. 그건 '정말이지 묘하게 신경을 거스르게 만드는 말투'다.
"같은 보폭과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지. 말은 쉽게 들리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무척 힘들어. 얘기를 나눌 상대도 일상의 변화도 없어. 매일 똑같은 택배와 고독만 있지. 뭐, 성격만 맞는다면야 구도 행위로 볼 수도 있겠지만." p150
택배란 '매일 같은 보폭과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라는 남자 말이 묵직하게 가슴을 내리누르는 이유는 아마 내가, 어쩌면 우리가 매일 그렇게 멈추지 못하고 꾸준하게 버텨야만 해서일지도 모른다. 울컥했다.
Job과 Call의 차이. 사회복지사는 잡인지 콜인지. 난 잡인지 콜인지. 젠장.
사실 '택배가 도착하자 인생이 흔들렸다'라는 문장만 보고 피범벅이 되는 하드보일의 살인 사건을 다루는 쫄깃한 소설일 것이라는 의도치 않는 착각을 했다. 한데 이 착각이 가져온 파장은 무려 4시간을 엉덩이가 딱딱함을 조금 넘긴 쿠션감 있는 의자에 앉혀 놓았고 지금 난 요추 5번에서 8번쯤 어딘가가에서 시작된 통증으로 이를 악물고 있다.
어렴풋이 작가가 택배를 포함해 여러 가지 신성한 노동을 해왔을 거라는 짐작을 했다. 그런 디테일 아무나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일을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훅 하고 빠져드는 몰입감을 가져왔다. 그렇게 내 맘대로 작가의 과거를 짐작했더니 결국 자기 입으로 그랬다고 그랬다.
작가가 만났다던 레이먼드 챈들러가 나에게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이 독특한 문체는 키스를 처음 해 보는 상대가 숨을 틀어막은 채로 입술을 끌어당기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숨 쉴 틈이 없다. 단숨에 읽어버린 게 너무 아쉬울 정도의 소설이다.
어쩌면 인생은 크기도 무게도 모두 다른 택배 상자가 트럭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섞이지 못하는 이유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 나나 섞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