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밑에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주디 갈란드가 누군지 몰랐다. 당연하게 오즈 마법사의 도로시였다는 것도 몰랐다. 그저 비썩 마른 르네 젤위거의 상념에 젖은 눈빛에 매료되 보게 된 영화다.
영화는 은막 속 스타들의 삶이겠거니 했던 마음은 스타가 아닌 엄마 그리고 똑같은 사람이길 바라는 한 여인의 삶을 노래한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던 주디의 삶은 스크린 뒤에 감춰진 학대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야 했다. 그런 유년기를 거친 주디는 아이들에게 애착을 보이며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영화는 떠돌아다니며 공연으로 먹고사는 주디가 졸지에 거처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를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또 플래시 백으로 과거의 주디, 그러니까 주디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아동 학대에 가까운 대접이나 첫사랑에 매몰차게 거절당하는 모습 역시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주디의 모습을 통해, 그러니까 한 알부터 시작한 수면제를 한 움큼을 먹어도 잠들지 못하는 일이나 눈빛만 지긋하면 사랑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일이나 아이들을 맹목적으로 보이는 태도에서 그녀의 불안정한 심리나 정신을 관객에게 가늠하게 한다.
"노래하는 저녁 1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엄마이고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에요."
결국 맹목적이던 아이들과 떨어져 영국으로 가야 했던 그녀의 불안정한 삶은 순탄할 수 없었고 공연이 순조로울 수 없던 주디는 관객들의 야유로 결국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음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보통의 사람처럼 살고팠지만 그럴 수 없었음을 확인하는 일은 아니었을까. 마지막 타인의 공연에 한 곡만 부르게 해달라고 애걸해야 했던 그녀의 삶은 결국 무대 밑이 아닌 무대 위였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노래이자 우리들의 노래라 했던 오버 더 레인보우는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