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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Mar 30. 2020

[용길이네 곱창집]

근데 내일이 꼭 좋은 날일 필요가 있을까


요 근래 이렇게 복잡다단한 영화를 본 적이 있었나. 그나저나 왜 곱창일까. 평생 일하고 일하고 일만 한 용길이는 왜 곱창을 팔았을까. 그것도 외상 값을 받을 수 있도록 신에게 빌어야 할 정도로. 그리고 용길이는 왜 가만히만 있을까 싶었다. 딸들이 남자 문제로 서로 생채기를 내는 모진 말에도, 그런 반푼이 남자들이 멱살잡이에 주먹다짐을 하는 이런저런 소동에도 묵묵히 지켜만 보았을까. 토키오의 지옥 같았던 학교도 용길이는 왜 견디라고만 했을까.


계속 답답했다. 과묵하고 채근하지 않는 용길이의 삶의 태도는 지치게 할 정도였다. 화를 내고 심지어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도 참기만 하는 그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린 여기 일본에서 계속 살아야 하니까!"라는 외침을 듣기 전까지는.


이 영화는 가슴 아프지만 결국 버려진 이들의 막연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걸 체념한 듯, 앞으로 계속 살아야 할 일본에서 내일을 희망한다는 건 오히려 죽는 것만 못했을 토키오가 자살한다. 그리고 1년 후 용길이 자신을 삶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그제서야 용길이는 남이 아닌 나일 수 있고, 일본에서 살아온 재일의 이야기일 수도, 한국에서 살아온 재한 그도 아니면 어디에서든 살아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판자촌을 벗어나지 않는다. 간혹 원경으로 도심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건 그저 병풍처럼 보이는 다른 세상일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그들만 있다. 가난하고 삶에 지친 이들. 보통 이하. 하지만 그들은 자주 웃는다. 그래서 더 서글플지도. 어차피 삶은 하루하루 내일을 희망하며 일하고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며 살다가 고개를 문득 들었을 때 우린 이미 미래보다는 과거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 두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게 아닐까 싶은 참 서글픈 인생 이야기다.


덧붙여 보자면 용길이네 곱창집엔 반푼이들만 들락거린다. 공무원 같은 애들은 들어올 생각도 안 한다. 팔이 없거나 다리를 절거나 대학을 나왔지만 죄책감에 허덕이며 방황하거나 리어카 엎어먹고 향수병에 징징거리거나 사랑에 빠진 유부남 같은 다들 뭐 하나씩은 결핍된 사람들이 모인다. 그렇다고 비하하거나 위로한답시고 동정하지도 않는다. 한국말을 못 하는 일본인이거나 일본 말을 못 하는 한국 사람이거나 그저 부족한 사람들도 어떻게든 산다는 이야기다.


갈 수 없는 곳과 있을 수 없는 곳 사이에서 견뎌야 하는 참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희망을 노래하기엔 너무 절망적인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어떤 절망에도 잠깐의 희망은 있으며 그런 희망으로 하루를 버틸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용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군데군데 혈연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람들은 뱀파이어도 아닌데 참 '피'를 중요하게 생각하긴 한다. 곱창집 주인 용길(김상호)과 아직은 쓸만한 영순(이정은)은 재혼 가정이다. 용길이 시즈카(마키 요코)와 리카(이노우에 마오), 영순이 미카(사쿠라바 나나미)와 함께 새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둘 사이에 토키오(오오에 신페이)가 태어났다. 서로 피가 섞이긴 했지만 같은 피는 아니라는 토키오의 내레이션이 그래서 더 남달랐달까. 어쨌거나 용길네 곱창집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가족이 아님에도 서로 자기가 이쯤이면 가족이 아니냐고 으쓱대기도 한다.

출처: 다음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


"좋은 봄날 저녁이다. 이런 날은 내일을 믿을 수 있지.
설령 어제가 어떤 날이었든지, 내일은 꼭 좋은 날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용길이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끌려가 팔을 잃었고 큰 딸 시즈카는 어릴 때 다리를 다쳐 장애인이다. 토키오는 끔찍한 이지메에 말을 잃었다. 그리고 용길네 곱창집을 들락거리는 사람들 역시 각자의 인생에서 열심인 사람들은 아니다. 어쩌면 사지 멀쩡하지만 열심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용길만 열심히 사는 듯 보인다. 하지만 툭툭 던져지는 이야기 속에 아무 생각 없이 살아야 살 수 있는 인생이며 하루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일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서라도 빨리 지나쳐 버려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용길이의 주문 같은 내일에 대한 희망은 절망 속에서 간절한 염원 같은 것이었을까. 용길은 정말 내일이 어제의 일을 까마득히 잊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으리라 믿었을까. 붉게 물든 석양과 다른 이가 쏘아 올린 불빛의 아름다움이 내 것일 수 있을까. 용길이가 땅에 주저 않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집과 팔을 돌려 달라고 하며 처연하게 눈물짓는 모습과 결국 각자의 인생이라는 듯 영길과 영순만 남는 장면은 먹먹하면서도 염려스러운 우리네 삶을 본 듯해서 눈물이 났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내일의 좋은 날을 희망하느라 오늘이 좋은 날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쳤던 영길과 영순이 활짝 웃는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산다는 건 다 그런 것일지도. 설령 아무리 힘든 어제가 있더라도 내일은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희망에 기대는 것. 우린 이 영화에서 그걸 기대할지도 모른다.

출처: 다음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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