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목 May 06. 2020

[철학] 천년의 수업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나는 '경계를 허문다'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흥분되고 생동감 넘친다. 그래서 그런 것이겠지만 천년도 아니고 2,500년 전 철학자들의 이야기와 신화로 버무려지는 책 내용이 살짝 숨이 가빠질 정도로 흥분을 주었다.


'질문하는 삶'에 대한 질문. 나는 사실 자라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은 '쓸데없는 말'이었다. 지적 호기심이었는지 답을 찾기 위한 단순한 질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집에서 학교에서 하는 질문은 대체로 그렇게 쓸데없이 불필요한 질문으로 취급받았다. 특히나 선생님들의 노기 어린 대답은 "그냥 외워, 새끼야"였다.


이 책은 인생에서 질문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부터 '나'를 알아가는 질문,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 삶과 죽음을 통한 치열하게 사는 것에 대한 질문, 행복한 삶에 대한 질문, 나와 우리의 연대에 관한 질문, 변화하는 세상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역사 발전을 위해 허물어야 할 경계에 대한 질문, 타인 이해에 대한 질문, 마지막으로 역사를 이루는 경험에 대한 9가지 질문을 통해 지혜의 문을 열게 돕는다.


놀랍도록 빠져드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는 어릴 때 만화로 익혔던 서양 역사의 한 장르가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우려했던 '친부 살해'의 역사가 잔인하기도 하지만 그런 신화적 역사를 토대로 문화와 역사를 발전시킨 그들의 철학적 지혜가 부럽다. 책을 덮은 후에 여운이 남아 유튜브를 찾았다. 개인적으로는 강연보다는 책이 더 몰입감이 있다.


저자는 인생에 방향을 잡고 노를 '제대로' 저어 나가려면 질문을 '제대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것도 굵직한 질문을. 한데 대부분 우리가 자문하는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누구'며 혹은 '내가 뭘 좋아하는가' 같은 것들이 아닐까. 게다가 제대로 된 질문은 어떤 것인지, 그래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모른다는 게 문제이지 않을까.


'판단을 보류'하는 에포케의 중요한 의미는 어쩌면 사회복지현장의 실천가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가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실천에 대한 자기 신념이 강해진다. 물론 어떤 일을 추진하는데 신념은 중요하지만 그 신념이 대상과의 갈등을 만든다면, 한편으로 '자신의 신념은 괄호 안에 넣어두어야 한다'던 대학원 교수님의 말처럼 어쩌면 그런 것이 바로 에포케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내가 누리는 평안의 일부가 타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얻은 것임을 깨달았을 때 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다시 부딪히게 됐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나'는 물론이고,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나' 또한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고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p60


커피 한 잔의 여유에서 시작된 질문이 어느새 커피를 생산하는 어린 노동자의 불평등에 대한 생각으로 펼쳐질 때 우린 삶에 대한 공정이나 공평을 때론 정의를 추구하는 삶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저자의 철학에 어느새 매료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당신들은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가?" p68


소포클레스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크다'라고 했다는데 역시나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일이 단순히 내가 무얼 좋아하고, 하고 싶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같은 단편적인 질문이 아닐 테니까. 존재란 '왜?'가 가지는 끝도 없는 나락일지도 모른다. 그게 긍정이든 부정이든.


쉰이 넘은 나이 고개를 파묻고 단숨에 읽어 나가는 동안 노안으로 흐릿해지는 활자 탓에 자주 고개를 들어야 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저자가 끌어 나가는 '나'라는 질문은 흥미롭고 매력적이어서 멈출 수 없다. 단순한 질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서 뭣이 중헌지 그래서 자신의 삶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 현명한 질문과 현실적 고민과 힘겨움에 매몰되지 않도록 조용한 위로도 잊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지 않은 사람은 없으므로.

"저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조금 다른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못 들어간다고 인생이 끝나지 않아. 회사는 네가 만들 수도 있어. 중요한 건 너를 믿고, 도전하고 너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거야.’ 이런 말이야말로 아이의 자존감과 창 조적인 도전정신을 북돋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세대에게 도전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 자유의 열망을 자극하는 것, 겁먹지 말고 하늘을 향해 맘껏 한 번 날갯짓 해보라고 응원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훌륭한 기성의 틀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기성세대의 역할일 겁니다." p239


이 책은 과거 저자의 솔직 담백한 경험이나 고민, 방황을 이야기하며 현재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안주하지 말고 틀을 깨고 도약할 것을 조언한다. 기성세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삶의 통찰을 기대하기도 하며, 나아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도덕이나 윤리, 정의 같은 단편적인 철학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질문하는 철학을 맛보게 하는 매력 넘치는 책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