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 아니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이제는 '숨을 쉰다'라는 자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할 정도라는 것을 실감한다. 황사에 미세먼지, 이제는 바이러스까지. 맑은 공기로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숨을 쉴 수 없게 된 것인지 이젠 기억도 하지 못한다.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이 바이러스 여파는 불평등으로 얼룩진 계층을 더욱 심화시킨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은 이들의 최후의 보루 같은 사회복지시설 역시 닫아 걸었다. 생존을 위한 돌봄은 멈추지 말아야 하지만 감염은 그 누구도 예외일 수밖에 없으니 안타까울밖에.
이런 시국에 이 바이러스의 창궐을 예상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급소환 되었다. 재패니메이션 아키라가 그랬고 한국 영화 감기 그랬고 이 소설 <어둠의 눈>이 40년의 시간을 거슬렀다. 정확히 예견했다는 이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 집어 들었다.
"모두 너무 음모론적이군요." p236
"평범한 사람 둘이 어딘지도 모르는 정부 기관을 상대한다고요?" p239
"자기 보존 본능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강력한 욕구라고요. 우린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예요. 필요하다면 누군가를 죽여서라도 살아남아야 해요." p347
여기저기 의미심장한 문장이 탐독을 부채질한다. 한 소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음모인지 의문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죽은 지 1년도 넘은 아들 대니로부터 시작되는 일이 사건이 된다. 그리고 엄마 티나와 전직 정보부 군인이자 변호사인 엘리엇이 신비하고 의문스러운 일을 뒤쫓는 단 4일간의 이 이야기는 꽤나 긴장감 넘치고 몰입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서 드러나는 코로나와 너무 흡사한 이야기에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을 맛보게 된다. 한데 사실 이 책이 더 놀랍고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중국 지명 '우한'이라든지 코로나의 증상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에볼라, 메르스를 넘어 현재 진행형으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있는 코로나까지 주기적으로 전 세계는 신종 바이러스에 허둥대는 일이다.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고 전혀 손도 못 쓰고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일이다. 이런 일들이 그럴 리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어쩌면 누군가가 극비리에 벌이고 있는 바이러스 전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치닫게 만든다는 것이다. 전혀 개연성이 없는 말이 아니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만한 인간들이 있다는 게 더 무섭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데다가 중국의 정확한 지명과 코로나19와 증상이 정확하다는 점이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유다. 그뿐만 아니라 거대 자본주의의, 인간의 탐욕, 권력에 대한 욕망 등 충분히 영화화돼도 재미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단 한 장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