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시를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다. 아, 읽고 음미하는 건 여전히 좋아한다. 과거형인 '좋아하던' 의미는 시랍시고 울적한 마음을 활자에 담아 보려 애쓰던 시기다. 시를 썼다기보다 끄적거렸단 표현이 적확하겠다.
여하튼 김지하, 기형도, 황지우, 최영미 등 나름 많은 시집을 읽었다. 달리할 게 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염세적이고 우울했기에 뭔가 쏟아내야 한다고 스스로 세뇌했다.
하지만 천성이 어디 가겠나. 인생에 갑작스레 얹힌 장애는 금세 태초부터 있었던 것처럼 올라타 버리고 이제는 넋 놓고 산다. 지금은 시는 쓰던 것에서 딸아이가 간간이 선물이나 해줘야 읽으려나.
오랜만에 시를 읽는다. 사실 시는 굉장한 상실이나 깊은 상처 같은 게 담겨서 마음이 절절해져야 그게 시라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세상도 사랑도 그 무엇도 그래야 마음이 흔들린다고. 그런 이 시집은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한 이야기들을 쉽게 그러면서 마음을 담겼다.
살짝 아련하기도 했다가 상큼하기도 했다가 봄처럼 싱그럽기도 했다가. 시인도 자신이 일상에서 느끼는 그런 울림이 독자에게 통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 시 하나에 그림 한 점을 얹어 놓았다. 그림은 내 볼 줄을 모르니 노코멘트다.
그대의 꽃잎으로 나의 마음을 물들이다
그대의 이파리로 나의 힘든 하루를 동여매다
그대의 꽃대에 새겨진 사랑을 세며
메마른 시간을 견디다
- 봉선화 1 -
봉선화 연정을 노래하던 현철 아저씨의 구성진 가락보다 더 구성진 시인의 사랑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오늘 하루 동여맬 이파리가 남아있지 않은 나는, 사랑은 여전히 견뎌야 하는 메마른 시간일 뿐인데.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팍팍하고 바삭해진 마음이 위로받는다. 그리고 '누군가 슬픈 노래를 부르면 가슴이 찌르르 울린다'라는 표현에 이렇게 달 뜨는지. 역시 시는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