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코엘료의 문장이 훅 하고 가슴으로 들어온 순간은 뜻밖에도 내가 빛나는 것을 깎아 먹고 있을지 모른다는 아니 분명한 순간들이 떠올라 버리면서입니다.
스물한 살 느닷없는 사고로 장애인이 되고 이일 저일 참 열심히도 했어요. 장애인이 되었다고 그저 눌러앉아 있기엔 너무 한창인 나이었기도 하고요. 그러다 한참이나 늦게,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신입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거의 이십 년이나 차이나는 동료들과 하루 대부분을 지내야 하는 일이란 코엘료가 말한 '무난함'을 장착해야 가능한 일이었어요.
섣부른 조언은 순식간에 저를 꼰대의 위치에 올려놓았고, 가끔 단호한 목소리로 'NO'를 말할 때는 나이 값에서 우러나오는 융통성 없는 고지식함이 되기도 하죠. 게다가 때때로 사람들의 가벼운 무시와 어처구니없는 친밀감에도 그저 무던한 미소를 띠지 않으면 나이 먹은 평직원의 삶은 팍팍해질 따름이죠.
제가 빛이 날 시기는 한참이나 지나버려 이젠 스러지는 이 빛조차 꺼트리지 않으려면 더 이상 나를 깎아내리지 말아야 할 텐데 가능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짧지만 짧지 않은 긴 여운을 전하는 문장과 삽화는 가슴 두근대가가 울컥했다가 미소 짓게 되는 시종일관 다른 모습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멋진 사람이 되세요.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데 시간 낭비는 하지 마세요." p20
멋진 사람이라기보다 저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팠던 적이 있어요. 운동을 했던 만큼 단단한 몸과 밝고 친화력 넘치는 사람이었거든요. 지금은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만드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장애라는 특징이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특이하거나, 흥미롭거나, 안쓰럽기도 하고 심지어 도와주어야 하는 복잡한 관계를 만들나 봐요. 그러다 보니 저라는 사람보다 장애를 먼저 설명하거나 증명해야 하는 일에 쉽게 피로도를 느끼죠.
"화들짝 놀라고 맙니다. 실은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꿈을 포기했다는 것, '멋진 싸움'을 피했다는 것을 말이죠." p81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 바다와 비닐하우스를 구분하지도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스페인 콤포스텔라 대성당 광장에서 플라멩코를 추고 싶다는 꿈을 담은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를 보았어요. 보면서 계속해서 '멋지다'라는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나는 꿈이 있던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각종 자전거를 원 없이 타보고 싶어 자전거포 주인이 되고 팠던 초등학생 때의 장래희망 이후 지금은 잘리지 않는 게 꿈이 아닌가 싶어요. 은퇴까지 9년 남았으니 그때까진 버티고 버텨야 해요. 그래서 너무 현실적인 게 아닌가 싶어 창피하기도 해서 화들짝 합니다.
코엘료는 살면서 설명하느라 애쓰지 말라고 하지만 저는 반대로 살면서 이런저런 입장을 설명하거나 변명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던 날들이 떠올라 좀 마음이 가라앉네요. 신경 쓰지 마라고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산다는 게 제 입장만, 제 기분만 생각하고 살긴 어렵고 그렇다고 시시콜콜 상대 기분만 살필 수도 없으니 산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인 거 같아요.
"남 바꾸려 하지 않기. 나를 바꿀 사람은 나 말고는 없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당신도 남을 바꿀 수는 없겠지요." p193
저는 눈에 보이는 시간과 귀에 들리는 시간 대부분 핸드폰과 PC게임에만 빠져 있는 아들을 향해 모질고 가시 돋친 말을 자주 쏟아 내는 편입니다. 욕만 안 했지 그 수준이죠. 그래서 그런지 시선이 멈추게 만드는 문장이었습니다. 저는 아마 아들은 제 입맛대로 바꾸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있는 거겠죠. 그리 될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요. 이젠 멈춰야 하려나 봅니다.
이 얇고, 예쁘디 예쁜 책 속에서 코엘료는 쓱 지나치는 인생에서 가만히 멈춰서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문장들을 기꺼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언어의 연금술사 다운 빛나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달까요. 거기에 감성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일러스트까지 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여서 들고 다니지 않을 재간이 없네요. 끝나가는 봄, 코엘료의 문장으로 다시 감성 충전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