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이다북스의 '사람이란 무엇인가' 시리즈 중 두 번째 책. 내가 왜 선뜻 서평단에 동참했는지 정확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인문학적 이야깃거리는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고 또 재밌어 하긴 하지만 주제가 교육 철학이라니. 나는 공부를 참 못하는 학생이었는데.
시작부터 책장 넘기기 쉽지 않다. 직업이 그래서일지도 모겠지만(난 사회복지사다. 그것도 장애인복지관에 근무하는) 특수학교에 관한 스코틀랜드 이야기는 마치 호그와트보다 더 판타지 같았다. 특수 학교는 고사하고 장애인이 한 아파트에 산다고 쫓아내려는 (먼 얘기도 아니고 2020년 6월 23일, 대구의 한 아파트 일이다.) 개인 이기주의를 넘어 이제는 지역 이기주의로 가뿐히 상승한데다 비교적 자주 접하는 상황인지라 정말 그들의 이야기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로 들렸다.
"사람이 사람에게 쓰는 말에는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람의 인격이나 사람됨이 아니라 물질적 가치가 그 사람의 품격이라고 말하는 사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p19
단순히 교육에 관한 철학을 풀어내서 인재 양성이나 교육에 대한 틀에 박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불평등이나 도덕적 가치를 담고 있으며, 여기에 덧붙여 교육에 관한 저자의 성찰이나 생각을 전하고 있다.
"단지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가 일어나는 모든 과정에서 불가해한 존재로서의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시도 멈춰 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p31
솔직히 적어보자면 저자의 지적 수준을 따라갈 수 없는 나는 이 책이, 물론 주옥같은 가르침이 분명해서 수많은 줄긋기를 해야 할 정도로 탐독하고 사유하게 만들지만 글의 수준이나 단어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라 어렵다. 때론 아주 건조한 설명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식 습득으로써의 교육만이 아닌 인간 가치에 대한 통찰을 동반한 교육에 대한 내용은 쉽게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인문학자는 산타클로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장은 눈을 번쩍 뜨게 만든다. 이는 인문학자에 국한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복지사 역시 그러면 안 되는 건 아닐까.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사회복지사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내서 무작정 돕는 일은 어쩌면 그들의 삶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회복지사만 폼 나는 산타클로스가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산타클로스에게 선물 하나 받으려면 울지도 않아야 하고, 착한 일도 미리미리 해놓는 정성을 들여야 하지 않는가. 상대를 이유 없이 돕는 건 상대를 그만큼 이유 없이 불쌍하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배우는 사람의 삶의 성장을 위한 앎의 추구 행위가 아닌 경우에는 교육 대신 준비나 훈련이라는 용어를 쓴다." p39
고 신영복 선생님의 일화에서 그 여고생의 행위는 우리가 살면서 만드는 관계의 수준이 아닐까 싶었다. 선생님이 지적한 바대로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처럼 행동하는 일이 어디 버스에서 일뿐이랴. 등 돌리면 안녕이라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로 우린 일상에서 관계는 그저 '등 돌릴 때'를 대비한 만큼만 마음을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친하다 한들.
"우리 아이들은 각자의 개별성에 따라 서로 다르게 아파하면서 성장한다." p53
교육자로서 교육이라는 것이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게 선행된 후 그 자체로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오랫동안 곱씹게 한다.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오히려 더 불안했던 폭력이 횡행하던 중·고 시절의 기억이 조금은 억울해졌다. 왜 이렇게 자신의 행동으로 가르치던 교사는 없었을까.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p98
21세기 포노 사피엔스의 세계에서 과연 교육의 도구로서 활용되는 스마트폰이나 온라인은 과연 플러스인가 마이너스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얼마 전에 읽었던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의 관점과 다른 저자의 관점이 흥미로웠다.
교육 전문가인 저자의 예측은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교육의 수준 차이는 또 다른 사교육 양성이나 아예 도태될 수 있다는 교육 불평등에 대한 부정적 관점과 달리 제이슨 솅커는 온라인 교육은 경제적 수준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의지만 있다면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다는 보편적 교육으로서의 긍정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누가 옳다 그르다 할 순 없겠지만 어쩌면 코로나19 팬데믹의 무서움은 모든 익숙한 것들을 불확실하게 만드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교육의 성찰을 통해 삶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의미와 그것이 가진 힘을 알려준다. 읽는 동안 성장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얇은 책이 이토록 무거울 수가 없다. 멋진 책이다. 이달 나만의 추천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제품을 무상으로 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