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바꾸는 조금 긴 쉼표,
한 달 살기 여행가. 머물go라는 의미 심장한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여행가다. 내겐 그저 부러운 여행가랄까.
제목을 보는 순간 현실적인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 달? 그것도 아이들과? 일은? 학교는? 학원은? 같은 뻔하디 뻔한 아주 현실적인 것들. 게다가 삶의 공간을 며칠도 아니고 한 달씩 비운다는 이야기에 내 삶이 갑자기 더 팍팍해지고 답답해졌다.
"주저하고 앉아 있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얻었다." p9
'깨달았다'도 아니고 '느꼈다'도 아닌 '얻었다'라니. 마음에서 뭔가 쿵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퇴사를 노래하고 열두 번씩 어디에서, 무얼 하며 남은 인생을 소비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몇 년째 거듭하기만 하는 터라서 명치를 쌔게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머리말의 글들은 현실적인 고민이 안 들려야 안 들 수 없다. "도대체 직장은?" "전업 주분가?" "돈은 누가 벌고?" "작가 혼자 아이들과 떠나나?" 같은. 이상과 현실은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이 시대 학령기 가족에 대한 직접적인 궁금증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시작이 양구라니! 양구는 가 본 기억도 없는데 친구가 양구에 있어 그런지 왠지 정겹다. 양구에서 깨달았다는 '추위에 웅크리는 건 어른들의 마음'이라는 말에 울컥한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한 달 살기란 그저 기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소비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삶을 대하는 마음이나 집에 대한 의미 역시 이 짧은 한 달에 담겨 있는 거라 생각하니 단순한 여행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 멋지지 아니한가!
어디론가 멀리 떠나야만 여행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낯선 곳에서 여러 날 살아내야 하는 일과 나처럼 관계 맺기가 능수능란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낯선 환경이나 사람과 섞여야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또 섞일만하면 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일들은 어쩌면 또 다르게 '지치는 일'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게는 참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사막에서 서서 바쁜 한국 여행자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건너편 지구 저편에 한국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 그것도 서울에 천왕동이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나는 왜 이다지도 바쁘게, 남들 다 가본다는 사막을 꼭 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 여기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p120
읽다 보니 문득 '이 가족과 출발점이 다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저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제도권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일까. 농구 학원과 영어와 수학 학원의 차이. 말 그대로 한 달이 늦어지면 클래스가 달라져야 하니 말 그대로 좋은 것도 알고 부럽기도 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한 달이 건 세 달이 건 일 년이 건 읽는 동안 중요한 건 무턱대고 용감하게, 입 닥치고 떠나야 한다는 거다. 이거재고 저거재고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하는 순간 조금 생겼던 용기마저 날아갈지 모른다. 인생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한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읊조리게 되는 이유다.
"우리는 한 달 살기를 다니면서 국내든 해외든 내가 나이를 먹더라도 살아갈 방법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마도 다양한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았다면 미래가 불안으로 가득 차있을 나이일 테지만, 지금은 여러 선택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 두렵지 않다." p234
사실 아내와 아이들은 별생각 없는데 난 내가 떠나고 싶은 터라 고민이 깊어진다. 작가의 말처럼 여행은 머물기 위한 것이고 그 안에서 삶의 태도가 변화할 수 있는 일이라는데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작가가 경험했던 한 달 살기에 경험하고픈 한 달 살기가 더해져 이 책의 설렘은 엄청났다.
읽는 동안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자리를 박차고 어디라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아주 조금은 생긴 듯도 하다. 진짜 인생 뭐 있나. 가고 싶으면 가보는 거지!
오타를 보았다. p184, 14째 줄. '생기도'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