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미 이치로의 행복해지는 책 읽기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는 기쁨과 행복 또한 인간관계 안에서만 느낄 수 있다. 따라서 행복해지려면 인간관계 안에 들어가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p12
유명 작가는 어떻게 독서를 하는지 그렇게 쌓인 독서의 내공을 어떻게 글로 써내는지 궁금했다. 한데 느닷없이 행복 예찬이 나온다. 그것도 관계를 통한 행복이라니. 이분이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 대가인 걸 깜빡했다.
어떻게든 관계를 늘리지 않고, 유지하는 관계에서도 쉽게 피로를 느끼는 저질 감정 게이지를 가진 탓에 될 수 있는 한 관계밖에 있으려는, 자발적 튕겨 나감을 선택하려 애쓰는 편이라서 좀 당황스럽다. 단지 독서법이 궁금했는데. 내가 불행을 '선택'하면서 행복하려 애쓰고 있는 건 아닌지.
어쨌거나 내 예단과는 다르게 독서를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역시 저자의 내공과 필력은 남다르긴 하다. 나는 언제쯤이면 내공이란 게 만들어지려는지 힘이 좀 빠진다. 이제 눈도 침침해서 장시간 독서도 힘든데.
책을 읽는 방식, 그러니까 스스로 선택해서 읽느냐와 다른 사람이 추천해준 걸 읽느냐에 따라 주체적이냐 아니면 의존적이냐 하는 삶의 방식도 알 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서평이랍시고 여기저기에 글을 올리는 나로서는 저자의 말이 끝이 뾰족한 것에 찔린 느낌이다. 앞으로는 좀 더 생각하고 글을 정리해야겠다는 각오도 생긴다.
한때 출판 업계에서 일하면 원 없이 책을 읽으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일로 읽으면 책을 좋아하지 않게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부질없어진다. 아직까지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게 쉼이고 힐링이고 행복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한데 기시미 씨, "선생에게 반론하면 얻어 맞거나 학점이 깎이고 상사에게 반론을 제기하면 회사 생활 괴로워져요. 심지어 잘릴 수도 있죠. 거긴 안 그래요?"라고 반론이랍시고 중얼거린다.
저자의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늘 조언에는 신중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답을 너무 간단히 내버리는 책, 인생을 어찌 살아야 한다고 안이하게 가르치는 책은 안 된다"라고 정색하고 조언하는 느낌이 들어 내심 놀랐다. 이런 책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이 책은 학창 시절부터 줄곧 저자가 어떻게 독서를, 독서에 필요한 책을 얻었는지, 그런 일들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고백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나아가 어학 공부와 자세, 시간 등 다양한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독서는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재미가 있어야 하고 재미없다면 과감히 책장을 덮을 용기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아직은 책을 고르는 눈은 없어서 닥치는 대로 읽고 보는 다독 수준인 내게 종종 책을 추천해 달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땐 조금 우쭐한 기분도 들어서 이런저런 책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그 책들은 저자가 말한 대로 내게는 공명이 일었지만 그 사람과는 파장이 맞지 않을 수 있으니 그 사람은 별 시답잖은 책을 추천해줬다고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고 보면 북소믈리에라는 일도 아무나 해서는 안 되겠다 싶다. 한 사람 인생을 바꿀 수도 위로와 위안,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책을 아무렇게나 추천할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책 속에 나오는 책들, 소위 책치기에는 무던한 편이었는데 국적이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저자의 책치기에 흥미가 생겼는데 마침 8년 만에 나왔다는 국내 작가의 신간을 냉큼 주문해 버렸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되려면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필요하다." p287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책은 교과서도 읽지 않던 내가 언제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하기 시작했을까 생각해 봤다. 스무 살 난데없이 목이 부러져 전신마비 신세로 근 1년을 숨만 쉬다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있게 됐을 때 무료한 시간을 재활 삼아 책을 읽었다는 게 기억났다. 그땐 진짜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는데 손가락 그것도 달랑 새끼손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어서 다 읽은 책장을 꼼지락 거리며 새끼손가락으로 들썩이면 옆에서 어머니가 넘겨 주시곤 했다. 평소 공부는커녕 아들이 책 읽는 걸 본 적이 없는 어머니는 진심 기쁘게 그 수고를 감내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암튼 그때부터가 시작이었고 퇴원하고 나서는 시간이 좀 더 많아져 역시 재활 겸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고르고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그리고 블로그에 읽은 책을 서평이랍시고 올리면서 저자의 말대로 쓰기 위해 한번 더 사유하는 재미가 더해져 다독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숙독이 아닌 속독하는 편이라 솔직히 읽은 책들의 의미를 다 이해했다고 하긴 어렵다.
이전에는 책을 잡으면 어렵든 쉽든 끝을 봐야 하는 책임감 같은 게 있었다. 너무 어렵고 난해해 멀미가 날 지경인 책들도 있는데 그런 책들은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아도 읽으려 애썼다. 아마 관심 부족이거나 전문성이 부족해서 그랬겠지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과감하게 덮을 용기가 생겼다.
최소한 나는 독서에 관해서는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뉠 만큼 의미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