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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Aug 02. 2020

[사회] 2050 거주불능 지구

: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2020년에 바라본 2050년 지구의 이야기이면서 제목부터가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전 세계가 팬데믹에 휩싸여 1,800만 명에 가깝게 확진되고 그중 70만 명 넘게 죽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 공습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릴 거라던 대한민국의 여름은 집중 폭우를 동반한 긴 장마에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이 되고 있다. 집안에서 물 위를 걷는 듯한 습한 환경은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곤혹함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 아니 지구를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만드는 이 모든 사태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고 저자는 확실하고 엄중하게 경고한다. 이렇게 시시각각 인간에 의해 변화되는 지구의 몸살은 별반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하필 이 시기에 이 책을 읽는다는 공교로운 일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거센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쏟아붓는 폭우의 냄새를 맡는 일은 심각함에 두려움을 얹는 기분이다.


"최소한 우리가 지나온 길은 달라지잖아요."라며 바다로 뛰어드는 김용규 문수정 부부의 환한 얼굴은 빛이 났다. 잡지 <볼드 저널 16호>를 본 이후 이 부부를 티브 광고로 보고 나니 왠지 아주 친밀하고도 그들의 길에 동참하고 싶기까지 했다. 아마 이전에 환경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첫 페이지부터 호흡이 바빠진다. 저자가 연대기를 콕콕 짚어가며 빠르게 변화하는 지구 재난 속도만큼이나 숨은 거칠어진다. 두 페이지 동안 10개의 주석이 달렸고 이 주석을 읽지 않고서는 넘어가기 쉽지 않다.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두렵기도 하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확인이 필요했다. 100배나 빠르다니. 오히려 속도감을 모른 척하고 싶을 정도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면 세상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제로섬 경쟁을 벌이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이므로 자신이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 우리는 큰 그림을 그리는 면에서 긍정적인 소식에만 편향된 주의를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p27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절반'이란 주장을 보면 식겁할 수밖에 없지만 조만간 현실로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점이 더 식겁하다. 그저 2도 높아진 기후나 자연의 문제가 아닌 인류 생존이 걸린, 그중 거주의 문제는 현재 당면한 현실일지 모른다는 경고가 경고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반면 저자는 극도의 절망감이나 두려움만 알리려 애쓰는 것 같진 않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인간이 자연과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고는 있지만 때론 그 반대편에서 노력이란 걸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여지는 남긴다. 그 방법은,


"집단적으로 무작정 행동하되 극적인 방식은 물론 지극히 일상적인 방식으로 해낼 수 있다." p59


라는 현재 편리함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서 조금은 불편한 아니 상당히 짜증이 날법할 정도로 불편해져야 하는 현실을 동반하기에 사실 허황된 뜬구름일 수는 있지만 말이다. 열대야가 지속되는 잠 못 드는 밤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야 한다면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심지어 아침 일찍 회의라도 있어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면 더더구나 이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테다. 하지만 인체 내의 온도를 조금 내리는데 필요한 에어컨의 탄소 배출은 열대야의 밤을 더 길게 높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뿐이다.


"기후변화의 영향력이 '모'아니면 '도'라고 오해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는 '그렇다' 혹은 '아니다' 둘로 나뉘는 문제가 아니며 '오늘날 기후가 영원히 갈까' 아니면 '바로 내일 종말이 올까'로 구분할 문제도 아니다. 오히려 온실가스를 계속 생산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상황이 악화돼 가는 연속적인 함수와 같다." p40
"기후변화는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전 지구 상에 동시에 일어나는 무언가 인 셈이다. 우리가 붙잡지 않는 이상 기후변화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p41


트럼프가 아니 어쩌면 미국이 파리 기후협정에서 발을 뺀 것처럼 인간이 환경 재난을 외면하는 시나리오의 끝에 드러나는 끔찍한 진실은 '센타바바라처럼 길거리에 덕지덕지 돈을 발라 놓은 곳보다 빈곤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부의 기준이 재난을 피하는 티켓은 아닐지 모른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문제다.


이 책은 이미 지구나 환경 그밖에 자연 같은 공공재에 관심이 많거나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나같이 '종이컵을 쓰지 않아야지'라고 하면서도 편리함에 종이컵을 놓지 못하는 정도의 사람, 그러니까 당신이나 나나 모두 읽어야 한다. 그렇게 조금씩 온도를 1도씩 낮춰가는 일에 동참하려는 생각들이 많아지는 것은 책 표지에 그려진 쩍쩍 갈라진 지구에 녹색 물감을 뿌리는 것일지 모른다. 당신은 '예언자'형 인간인가? 아니면 '마법사'형 인간인가? 사실 그 어느 쪽이든 눈물은 북극에 있는 곰이 흘릴게 아니라 우리가 흘려야 한다.


이 책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난을 담고 있다. 단지 폭염, 기아, 해수면 상승, 산불, 기후 변화, 물 부족, 해양생물의 멸종, 대기 오염 - 특히 해양 미세 플라스틱 오염에는 2위로 한국이 이름을 올렸다. 어쩔! - 등 12가지 재난 시나리오가 아니다. 지금 겪고 있고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이다.


끔찍하지만 읽는 걸 멈출 수 없다. 솔직히 마법사형 인간은 아닌 데다가 저자도 말했다시피 읽는 것만으로도 패닉 수준의 공포를 경험한다. 심지어 해발 9미터 이상의 지대로 이사를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산불이나 산사태로 3km나 휩쓸려 내려 간 아이의 이야기에서 결국 어디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것이란 결론을 마주할 뿐이다. 이게 현재 진행형이라는 게 더 겁난다.


이 책을 읽은 이상 더 이상 방관자로 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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