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라밸은 자신의 삶과 일이 균형을 이루도록 애쓰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사람, 나카무라 씨는 누군가의 워라밸이 가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려 자신이 발 벗고 회사 대표들을 만나 기업 철학 같은 것으로 구인 기사를 쓴다. 구인 광고가 아니라 기사다. 재밌지 않은가.
근데 직장인이 워라밸을 강조하는 회사는 좋은 회사가 아니라는 '썰'이 있는데 말이다. 회사가 싫어서 퇴근만 기다리고 퇴근 이후 자신의 진정한 라이프가 시작된다고 외치는 일은 사실 서로에게 좋은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무얼 어떻게 하고 싶은가를 찾는 일. 그것을 저자는 물 주기라 의미를 부여한다. 물 주기. 나는 지금 하고 있을까? 아니 해야 할까? 나는 무얼 어떻게 하고 싶은 게 뭘까.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좋은 공간이란 공간과 어울리는 사람들이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란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허락하기 위해서는 원래 그것이 안 된다는 감각이 전제되어야 하니까. 그런데 그곳에서는 원래부터 안 된다고 하는 감각이 없었어요. 그것이 그냥 그곳에 있었어요." p41
어쩌면 미지의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온몸의 세포를 각성시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톰이 낯선 일본에서 우연히 만난 한순간에 몸으로 익힌 규칙들이 자유로워지는 경험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이었을지 덩달아 소름이 돋는다. 그에게는 앞으로만 나간다는 일이 앞으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살짝 두려운 설렘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런 각성을 늘 꿈'만' 꾼다.
"스스로 자신의 일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p47)"이란 단순히 창작자만을 의미하는 건 아닌 거란 걸 알면서 왠지 그런 거라고 슬쩍 떠넘기는 기분이 들었다. 나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에 얽매인 사람들은 틀에 박힌 일상에서 빠져나오려면 웬만한 에너지로는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는 절망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물 주기는커녕 씨앗을 틔우지도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속상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전달하는 이야기는 몰입하게 된다. 과연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있어 계획보다 즉흥적으로 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 보지만 해본 적 없는 경험은 느낌도 알아채기 어럽다.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주저하는 내가 조금 답답하다.
"일이 끝났을 때의 이미지는 야구선수가 베이스를 밟았을 때의 느낌이에요. 아슬아슬하게 밟고 그대로 다음 루로 가기 시작하는 거죠." p90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나 십 년을 근무한 회사를 퇴직할 때나 마무리한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 중에 이처럼 적확한 게 있을까 싶다. 내용처럼 그것이 인생일지 모른다. 난 늘 일을 하는 데 있어 다음 베이스로 질주하는 느낌보다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베이스에 머무르려는 안정감을 좇는다.
"하나의 방법으로 과제가 해결되었다면 이상 끝, 자 다음, 하고 넘어가는 방식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좀 더 나아질 방법을 계속 찾아요. 자기 눈앞의 일을 열심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거든요. 그것이 일로 성장해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p98
이 책의 핵심 문장이 아닐까. 인생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일, 그것이 벌이를 위한 것이든 생활의 그 어떤 것이든 좋아서 하게 되는 일은 여기서 끝! 하고 끝낼 수 없지 않을까. 좀 더 성장한다는 것은 좋은 것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에 괜히 가슴이 덥혀졌다. 한편으로는 반성도 되고.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인연과 타이밍으로 점점 형태가 만들어진다. 과거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실패하면 다시 궤도를 수정하면 된다. 눈앞의 일에 확실하게 관여하고 있다면, 생각은 형태가 되어 스스로 가고 싶은 쪽에 가까워진다. 그런 감각이 있기에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동하는지도 모른다." p152
이 책은 자기 일과 선물이라는 삶의 태도와 방식에 대한 의미를 담았다. 자신의 일과 선물을 쑥쑥 키워내는 나무에 빗대 따뜻한 감성 넘치는 에세이이기도 하지만 많은 깨달음이 주렁주렁 달린 자기 계발서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말하는 자연스러운 관계에서 만들어진 '일 바'를 상상하면 따뜻한 이야기가 오가던 심야 식당이 떠올랐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특히 인터넷이 등장함으로써 사람의 관계성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는 듯하다. 복잡한 생태계는 서로 보완하면서 지탱하도록 제 역할을 하고 있다." p208
이 책은 일하며 사는 게 아닌 살면서 일하는(쓰고 보니 그게 그건 거 같지만 읽어보면 차이를 분명히 알게 된다.)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뭐 일본이라는 문화지리적 한계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 적용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들이 막 떠올라 안절부절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