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개인적으로 따라 하면 성공을 맛본다거나 습관을 바꾸고 행동을 변화 시키면 성공한다는 식의 자기계발서는 믿지 않는다. 어차피 모두 처한 입장과 성향이 다른 데다가 결정적으로 개인이 추구하는 성공의 의미가 다를 테니 말이다. 나이 오십이 넘은 나는 아직 성공의 정의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왜 이 책에 끌렸을까. 뜻도 몰랐던, 어찌 보면 이렇게 무서운 의미를 가진 뜻인 줄 알았다면 선택했을까 싶을 정도로 냉철한 자기 점검을 하게 하는 책이다. 내가 가진 아비토스는 치열한 경쟁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성공에 물불 안 가리는 편은 분명 아닌데 말이다. 아마 한자 한자 읽히는 독음이 좋아서 그랬을지도. 뭔가 강하면서도 투박하게 부드러운 소리. 가만히 읽어보면 귀에 착 감기는 소리. 아비투스가 그랬다. 나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계층 사다리의 중간에 있는 사람들'
얼마나 긴 사다리인 줄 모르겠지만 중간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랫부분의 일부를 뚝 띠어 그 중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아래의 중간이라면? 계층 계급은 얼마든지 내 생각과는 다를 수 있지 않던가. 표지가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차민혁이 애지중지하던 피라미드가 생각나버렸다. 먹이사슬의 꼭대기. 아무튼 서문만으로도 충분히 비장하게 만들더니 고작 몇 페이지로 이렇게 사람을 짜증 나고 자괴감 들게 만든다. 이런 감정은 사실 현실을 직시하기 때문 아닐까 싶어 짜증은 나지만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어려서부터 고급 아비투스가 몸에 밴 사람은 평균적으로 두 배 더 빨리, 더 쉽게 최고가 된다." p25
저자는 이렇게 사회 계층의 상위를 차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비투스를 설명한다. 관련한 투자 포트폴리오로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자본 일곱 가지를 설명한다. 현실적이면서도 냉혹하게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선택을 종용한다. 오를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 그도 아니면 떨어질 것인가?
저자는 책 초반부터 아비투스는 분명하고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세습되는 게 당연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더해 슈퍼리치나 세습 부자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형성된 아비투스는 쉽게 얻을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신분 이동은 가능할 수 있다고 하고 있지만 전제되는 것은 자신의 아비투스를 명확히 인지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성장 마인드 셋이나 5-HTT 유전자의 회복탄력성, 야망, 관대함 등 타고나는 것보다 노력해서 변화 가능한 것에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고 설명하면서 인사부장은 면접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사람보다 야망이 느껴지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선호한다는 저자의 말이 생경하다. 우린 그동안 적당히 겸손을 미덕으로 알고 있지 않았던가. 아비투스를 접하고 보니 색다르게 느껴진다.
성공에 필요한 다양한 키워드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신분이나 계급이 당연하다는 설명은 불편하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불평등의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이상 이런 불평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쉽지 않다. 하지만 책장이 덮은 지금은 아비투스란 부의 세습이라는 경제적 대물림의 관점에서 자행되는 갑질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런 상류층은 주류와 다른 비평범성을 추구하며 그런 다른 점으로 특권의식을 누리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다른 특권으로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품격을 기른다는 것을 소개한다. 그래서 이 책이 특별할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느껴지는 건 성공한 사람들에게 각인된 이 많은 성공 자질에 대한 깨달음뿐만 아니라 저자도 말했다시피 자기나 나같이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노력하면 되는지에 대한 팁이 없다는 거다. 예를 들면 점원에게 팁을 주기 위해 당장에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포기할 줄 아는 게 관대함이라면 그런 10살짜리 꼬마 애도 몸에 밴 관대함을 51살이나 먹은 내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렇다고 매번 먹고 싶은 걸 포기하고 팁만 준다고 익혀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교양 있는 사람은 취향을 드러내되 절대 거기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p84
나아가
"문화자본은 어떤 자본보다 사회적 경계를 더 많이 만들고, 이 경계는 한 번의 도약으로 뛰어넘을 수 없다." p85
무릎을 치게 되는 통찰이 아닌가. 한국 도로에 언제부턴가 쏟아져 나왔다 싶을 만큼 외제차들이 굴러다닌다. 그것도 세 대 중에 한 대는 억 소리 날 만큼 고급차다. 한데 차는 그런 그런 명품차를 몰고 다니는 운전자의 수준은 고급 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좁은 도로에 자기 편하자고 무지막지하게 주차를 해놓거나 도로를 무법천지로 만들며 난폭운전을 하거나 장애인 주차구역에 버젓이 얌체 주차도 서슴지 않는다. 말 그대로 품격이 없는 저질들이 많다. 저자의 말대로 문화를 향유하는 품격은 돈으로 결정되지 않는 게 확실하다.
이 책이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는 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즐기고 향유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있는 위치에서 머무르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 성공하고 싶다면 다소 까다롭고 피곤할지 모르는 일이라 하더라도 아비투스를 익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큰 동물은 작은 동물에게 얕잡아 보이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p254
짧은 대화에서조차 구분되는 계층이라는 것이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충분히 공감된다. 저급한 언어와 상대를 무시하는 말투, 시도 때도 없이 남을 향한 험담. 모두 내가 하고 있는 수준이라 생각하니 참담하다.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챕터다. 다시 말하면 계층 이동에는 그들만의 아비투스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만 팔천 원으로 이 탁월함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