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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Aug 12. 2020

[소설] 복수를 합시다

소비시대를 사는 우리가 소비하는 것이 어찌 물질뿐이랴 싶지만 이렇게 시작부터 해서 몇 페이지에 걸쳐 소비사회가 불러일으키는 여러 우울하고도 서글픈 현타(현실 타격)에 주인공만큼이나 덩달아 우울해진다.


이런 현실 앞에 정의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할 것 같달까. 어쨌거나 이런 공대생의 실감 나는 막장 주작질에 대한 고백을 듣노라니 역시 창작의 고통이 남다르지 않고 또 여기에서 더 어떻게 버라이어티 해질지 사뭇 궁금하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 모든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을 걷는 것,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단지 인내심만 있으면 된다." p137


무척이나 당연한 것인데 이 당연한 것을 해내느라 우린 더럽고 아니꼽고 서러운 침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삼키며 살고 있을까. 세상에서 제일 얇은 냄비처럼 얇디얇은 인내심을 탑재한 나는 당하는데도 용기를 내야 할지 모른다. 안 그랬다간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 암만.

소설은 얼마 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성이란 개미 똥만큼도 갖추지 못한 웹하드 양진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런 인간이 등장하고 복수라니 너무 뻔한가 싶을 즈음 이 소설은 스펀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을 쏟아부으면 처음에는 쉽게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다가 시작되면 거침없이 있는 대로 말려버리는 그런 스펀지. 시작하면 그냥 빨려 든다. 솔직히 딱히 긴장감이나 극도의 분노를 유발하지 않는데도 적당히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 내지는 정체를 벗겨 내려 애쓰는 나를 발견한다.


병진의 학폭으로 얼룩진 사진이나 앙칼의 상처로 얼룩진 동영상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작가는 묻는 듯하다. "나는 사장이 시키는 대로 했어요."와 "나는 모기가 시키는 대로 했어"의 차이는 뭘까. 책임을 회피하려는 병진의 말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떠올랐다. 결국 사람이 타인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무능이 죄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일. 그건 분명 죄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작가는 공을 가로채는 남편에게, 바람피우는 약혼녀에게 하는 복수를 비롯해 동영상 유포, 불법 도박 사이트, 가상화폐, 폭행 같은 상대를 의식하지 않는 가해자의 무분별하고 무자비한 행동이 타인의 삶을 어떻게 망가트리는지 보여준다.


다만,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하다시피 개인을 억압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은 어쩌면 가까운 사람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분노를 삭히는데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지적처럼 이놈의 시대는 부러 소비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꾸 분노 유발자들을 벽돌 찍어내듯 어디서 자꾸 찍어내는 기분이 들 정도다. 여차하면 진짜 복수를 해야 할지도 모른닷!


끝으로 사실 레몬과 버프가 누구든 관계없다. 하지만 너무 존재감 없이 사라진 점과 앙칼의 벌인 복수의 결말은 많이 아쉽다. 다소 뒷심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독자의 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만드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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