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모든 사랑 이야기가 아름다운 건 아마도 결말이 없어서가 아닐까. 우리가 그동안 서럽게 그리고 아프게 해왔던 사랑과 이별과 안타까운 것들을 모두 내가 꿈꾸는 사랑으로 물들일 수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난다. 너무 사랑스럽다. 이 책. 이 작가도.
처음이다 이렇게 짧은 소설이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꿈틀이게 만든다니. 첫사랑인 줄도 모르고 지나쳐버린 첫사랑도 생각났다가 진지한 궁서체 모드로 임했지만 첫눈 오는 크리스마스이브 등에 토토로 인형을 짊어진 채 "오빠 이제 그만 만나!"라는 통보와 총총거리며 떠났던 고교시절의 사랑도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연민과 동정의 그 어디께쯤 있던 하지만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이 떠올랐다가 아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만든다. 알고 있긴 했지만 오늘따라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내 아내.
그래. 이것도 사랑이다. 공항이 아닌 파리 에펠탑 아래가 아닌 녹색 어머니회 조끼를 입고 횡단보도 앞에서 현란한 깃발을 휘날리며 만나더라도. 그게 지나간 옛사랑이라도. 옛사람이라도. 지금 만나 설레었다면 말이다. 비록 "아저씨가 엄마예요?"라는 질문을 받더라도 말이다. 너무 웃퍼 눈물이 났다. 아침 여덟시 십일 분이다. 내 첫사랑은 어디서 깃발을 휘날리고 있을까. 젠장.
"어디 마음이 나이를 먹나요? 세상이 먹는 게 나이지." p46
애지중지 키운 딸이, 그것도 별다른 학원도 보내지 않은 딸이 "대학도 재수 없이 턱 한 번에 붙어버렸다." 다는 이 문장이 왜 자꾸 반복해서 읽히는지 모르겠다. 너무 웃겼다. 입시를 앞둔 내 딸 때문일까? 녀석도 재수 없게 한 번에 떡하니 붙어버려야 하는데 말이지. 근데 왤케 웃기지?
성오와 민아의 재회에 먹먹해지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연정에 울컥하고 은미와 창수, 예은이와 민규가 타는 썸에 큭큭 거리고 그러다 또 서영 씨의 썸을 끝내버린 서주임의 땀방울에 가슴이 몽글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 아무도, 아프지 말라 했건만 나는 아프다. 그것도 심하게.
"장소든 시간이든 단어든, 아끼는 사람이 글을 쓴다. 매일 글로 쓰다 보면 아끼는 마음이 들게 된다." p231
사랑의 종류도 색깔도 심지어 냄새도 제각각이겠지만 그처럼 그의 아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화를 내라'니. 여느 보통의 부부처럼 칼로 물도 베며 싸우고 화내는 부부의 정이 갈급했을까. 당최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귓불이 아니라 온몸에서 맥박이 뛰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