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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Sep 04. 2020

[에세이]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 삶의 지도를 확장하는 배움의 기록

"Why not?", "왜 안되겠어!"라는 명쾌한 경험을 강조하는 이 책은 감독이자 작가이자 기타 한가지로 정의하기 어려운 이길보라가 네덜란드 필름아카데미에서 삶의 지도를 확장한 2년간의 기록을 엮은 책이다.


부모의 방식이 자식에게 답습 된다는 사실이 놀랄 일도 아닌데 놀랍다. 이길보라의 책은 자꾸 그런 지점을 만든다. 내 경험이 다른 경험과 일맥상통하지 않은 생경함. 그래서 막 좋다. 반면 그의 거침없는 행보와 그의 부모의 거침없는 삶의 태도가 오늘 나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그의 책은 우리 아이들에게 1순위로 권하는 책이 됐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나를 꼭 안아준 기분이었다. '스무 번째 지원자'가 아닌 '지원자 보라'가 되는 경험." p55


말도 외모도 심지어 문화적 배경도 다른 누군가가 나를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경험은 좁디좁은 한국에 규정된 내 가치관으로는 뚜렷한 온도차가 존재한다.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이랄까. 누군가에게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받아들여진다는 건 내 학습된 경험으론 분명 비굴모드 지향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타인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관계 맺음의 가장 기본일 텐데 왜 그리 어렵고 힘든 것일까." p 60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고, 일몰 시간에는 가던 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었어야 했으며, 국민교육헌장이 교실 정 중앙에 걸려 있고 단박에 외워나갈 수 있어야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쯤으로 여겨지던 시절을 보냈던 어릴 때부터 '백의민족'이며 '단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국지적, 민족적 프레임을 만들었다. 그로 인해 피부색이나 신체적 특성을 포함한 것들이 규정된 '정상성'과 다르다는 것은 거부하거나 부정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야 하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가 경험하는 '국적'이나 '자퇴'라는 일이 감흥을 만드는 놀라운 이벤트가 아님에도 그렇게 만드는 코리안이라는 정체성이 지구 반대편에나 가야 비로소 선명해진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그런 것쯤은 너무 당연해 익숙한 것처럼 무시되는 곳에 있던 그가, 그의 경험이 부럽다.


한편, 예전부터 궁금하기도 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머리 모양이 바뀌고, 얼굴이 야위고, 피부 트러블이 솟아나더라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자유롭기만 한 일일까 싶다. 뭐, 관심에 대한 접점이기도 한데 오지랖만 아니라면 이런 일들은 알은체 해주는 정도의 관심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만, 또 쓰다 보니 갑자기 단발로 나타난 직원에게 "애인하고 헤어졌어?"라고 말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역시 과하면 탈이다.

  

"다른 이들이 간 길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지금 꼭 필요한 걸 선택하고 직접 해보고 책임지는 사람들이 내 옆에 있다." p180


삶에 무늬를 만드는 일에 경험'만'이 중요하고 그렇다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또 남이 걸어온 길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 역시 옳지 않거나 불필요 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방향만 맞는다면 빠를 수도 수월할 수도 있으니 무작정 반대를 하고 볼 일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의 경험처럼 나만의 길을 찾기에는 나만의 속도가 필요하고 내 길을 걷는 건 아주 중요하다는데는 격하게 공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추천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숨을 크게 내쉬고 공원에 누워 하늘을 보면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데 나는 한국에 산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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