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그동안 사람들이 자신의 보폭으로 걸어야 한다고 할 때 나는 그 보폭을 찾아 헤맸다. 성큼성큼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사부작 거리며 살아야 하는지 어떤 게 내 보폭인지, 그게 살면서 잃어버린 게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몰랐다는걸. 살짝 안도감을 느꼈다.
에세이라기보다 사진일기같이 참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생각과 글이 어우러진 적당한 사진 한 장은 굳이 많은 이야기를 담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된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꾸만 뒤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p35
정말 그럴까 싶었다. 적지 않은 나이다 보니 이제는 앞으로 나가는 게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 가물가물해서 늘 같은 하루는 지겹다기보다 그저 새롭지 않은 정도라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두리번거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암튼 앞을 보는 일은 적어진 건 확실하다.
"사람을 버리자, 사람이 소중해졌다." p46
보통의 속도로 살지 못했던 작가가 보통의 속도보다 느리게 살면서 보고 느끼고 살아가는 모습이 담긴 이 책은 개인의 일상에서 덜어내는 관계를 통해 삶 자체가 가벼워졌다는 이야기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살아야 하는 서울 살이인 나는 입맛만 다시게 된다. 그래서 약오른다.
가을이 왔는데
여름이 아직 가지 않았을 뿐이다.
이별이 왔는데
사랑이 아직 가지 않았을 뿐이다.
시차, p116
'내 머리 오른쪽 약 2시 위치에 항상 있다는 그'를 기억하든 안 하든 잊든 잊지 못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이런 멋들어진 문장은 도대체 어디서 기어 나오는 건지 알고 싶네요. 작가님!
이 책을 읽으면서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생생한, 무작정 제주로 이민을 떠나 머물렀던 외도에서의 3년 살이가 훅 하고 밀려들었다. 그때의 삶은 내 51년의 삶 중 기억의 가장 위에 자리 잡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작가의 풍부한 감성 덕에 충전되는 시간이었다.
죽었던 감성을 몽글몽글 숨 쉬게 심폐소생술 해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