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때때로 열정보다 그리움이다
삶에서 리즈 시절을 추억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허나 그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추억이 아닌 타인(그게 아내라도!)에게 의해 강제적으로 떠올리는 건 추억이 아닌 그저 기억에 머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카페 벨 에포크>는 좋은 시대 혹은 전성기, 황금기라는 뜻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를 주제로 첫사랑을 추억한다.
추억과 기억의 차이는 뭘까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자아 개념을 설명하면서 '인간이 계속 성장하고 성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의 수집 가능성에 대한 개방성과 민감성이 필요하다.'라고 했는데 딱 마리안의 삶을 표현하는 말임에도 정작 마리안은 로저스가 아닌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을 외치며 행동하지 않고 무력감에 빠진 남편 빅토르를 몰아세우는데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남편의 지긋지긋함을 분출하는 것으로 영화는 출발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것이라곤 하나 없는 빅토르(다니엘 오떼뉴)와 마리안(화니 아르당)은 사교 모임 자리에서조차 취향의 문제로 날을 세운다. 이 부부 '도대체 왜 사나?'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상처를 내고 소금을 쫙쫙 뿌려대기만 한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LP를 올리며 미소를 짓는 아날로그 남편과는 달리 아내는 최첨단 인터넷 방송까지 섭렵한 아내는 최첨단 디지털 문명을 적극 수용한다. 심지어 남편은 종이 담배 아내는 전자 담배다. 세월이 지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빅토르와는 달리 가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 젊음을 되찾고 싶은 마리안은 기술을 탓하며 일까지 놓아버린 빅토르의 무기력을 견디지 못하고 남편을 쫒아 내고 자책한다.
서로를 지지하고 영감을 주고받던 열정이 식어버린 지금, 잠자리에서 코 안 고는 거만 빼고 옷에 밴 냄새조차 질색하는 아내 마리안은 바람피우던 빅토르의 친구이자 고객인 프랑수아를 결국 집으로 들인다. 갈 곳 잃은 빅토르는 시간여행 설계자인 앙투안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잊고 살았던 그때, 첫눈에 반해 버린 첫사랑을 찾아 떠난다.
영화는 보는 내내 빅토르에 동화되면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무기력하고 아들에게 질투하기도 하고 아내에게 구박만 받는 처지인 데다가 스스로는 무력감에 빠져있는 빅토르는 자신이 사랑받던, 아니 조금은 더 자신감 넘치던 28살, 4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고 추억 속에 각인된 1974년 5월 16일 그날로 돌아가 첫사랑을 만나는 자리, 덩달아 난 1998년 8월 28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열정이 식은 빅토르와 마리안과는 다르게 열정으로 불안한 앙투안과 마르고의 사랑을 대비되는 게 흥미롭기도 했다. 더구나 빅토르가 빠져들면서 더욱 더. 어쨌거나 내심 빅토르의 첫사랑이 마리안보다 좀 더 근사한 여성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살짝 김 빠지는 느낌도 없지 않긴 하지만 뭐 이것도 꽤 로맨틱하다는 생각에다 빅토르가 훨씬 더 매력적인 남자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던 시인의 말처럼 함께한 세월이 길수록 그리움을 잃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쓸쓸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중년의 그리움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 가을, 강추한다.
당신이 그리워요.
내가요?
네. 이제 막 알았는데 이미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