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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Oct 03. 2020

[사회] 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누구의 초상인지는 모르겠으나 두껍게 덧칠된 얼굴과 혐오가 겹쳐 보였다. 혐오로 인한 상처를 가렸거나 혹은 혐오 가득한 얼굴을 가린. 그렇게 그림과 제목에 끌렸던 것이 '두려움의 군주제: 우리의 정치 위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란 원제를 보고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두려움의 군주제'가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되기까지의 연결고리는 '두려움'인듯한데 또 이것이 '혐오'로 확장되는 그의 철학이 궁금했고 기대됐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두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강력한 절대 군주제를 원한다. 군주의 강력한 통치에 복종한다면 작금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p5


이해한다. 그가 제시한 두려움이란 키워드가 분노나 혐오 같은 감정으로 확장될 때 민주주의는 위협당한다는 말이 와닿는다. 말 그대로 전염, 삽시간에 전 세계를 집어삼킨 코로나19처럼. 증오와 혐오, 분노의 먹이가 바로 두려움이라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는데 참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읽는다. 인종차별과 분열로 점철된 미국 사회를 집중 조명하는 책이지만 한국의 현재와도 맞닿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쁜 일이 다가오고 있지만 나는 꼼짝할 수 없다는 것. p55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한 그의 두려움에 대한 정의는 읽는 것만으로도 감각적이 된다. 우린 때때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에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이런 무력감을 동반한 감정에 휘말리곤 하지 않던가.


그가 두려움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할 만큼 인간 본성에 깊게 내재화된 감정은 광범위하고, 특히 '문제를 제기하면 혼자 발가벗고 있는 듯하다.(p81)'라고 한 그의 표현에서 장애인의 편견과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즉 커버링의 자세를 취할 때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안은 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불평등과 부당함이 만연해 어쩌면 갑질이 있는 자들의 당연한 행동이라고 인식되는 한국의 암울한 현실에서도 희망적 대안의 메시지처럼 들리는 그의 이야기는 분노가 아닌 저항으로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믿음은 비현실적이거나 이상적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목표는 빨리 이루어지지도, 우리 시대에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노력한다면 의미 있는 전진은 기대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인류가 결코 유지할 수 없는 완벽한 정의처럼 목표가 비현실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희망은 절망과 냉소로 이어지기 쉽다. 진실한 삶이야말로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이다. 결점 많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혹은 실제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전부 포용하는, 믿음으로 강화된 희망을 품어야 한다. p264


이 책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변질된 감정으로 두려움, 분노, 혐오, 시기와 차별을 다룬다. 이 기괴한 감정이 사회 불안이나 분열을 조장하는 현시대의 문제를 직시하고 '선한 목적을 위해 순수하게 헌신하는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에 나서야 하는 시작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이 감정으로 만들어내는 사회문제에 대한 통찰을 공유하게 되는 시간을 제공한다.


읽는 내내 그의 간절함이 느껴졌다던 추천인 홍성수의 말처럼 나 역시 피 끓지 않은 문장이 없었다. 혐오의 시대, 부정적 감정에 편승하지 않으려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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