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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Nov 21. 2023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갔다


실은 십 년까지 묵은 건 아니라 그냥 한 일 년쯤 묵은 체증이랄까. 장르 불문 닥치는 대로 섭식 독서를 하다 보니 사회문제나 인권문제에 관심이 자연스레 생겼다. 하는 일도 복지이니 알아두면 좋겠다 싶어 관련 책이 눈에 띄면 가리지 않고 서평단에 줄 서서 읽었다.


물론 읽는다고 다 지식이나 지혜롭게 되는 건 아니라지만 이 분야는 더 어려웠다. 뭘까? 싶기도 했고 내가 자라온 시절의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은 당연하지 않아서 시위와 갈등이 촉발되기도 했다. 이럴 때 나는 동공이 흔들렸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 비로소 엄마와 아내의 삶이 조명됐고 나아가 2002년 생 내 딸이 이런 세상에서 살면 안 된다는 숨 가쁜 무언가가 가슴에서 요동쳤다. 퀴어가 뭔지, 무지개 깃발 휘날리며 이태원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과 그 건너에서 쌍욕을 날리는 사람들을 볼 때도 동공이 흔들렸다. 나는 어디에 서야 하나, 같은 질문들이 복잡하게 얽혔다.


나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떠나 그들의 성적 지향을 이해하는지, 그들이 저리 깃발을 나부끼며 거리를 뛰쳐나올 때까지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는지 그래서 그들이 지나는 길에 발자국같이 찍자 할 수 있는지. 질문은 많은데 대답이 없던 시간들이 있었다.


휠체어도 유아차도 그밖에 이동에 불편함을 겪는 모든 사람에게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고 동등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지하철을 멈춰 세운 장애인들을 보며 동공이 흔들렸다. 나는 왜 여기에 있고 거기엔 없는지. 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버스도 지하철도 언감생심 접근도 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나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그러고 있는지. 또 수많은 질문은 있지만 대답을 할 수 없던 시간들이 내게 있었다.


그래서 더 인권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오랜 도전 끝에 올해 기회다 닿아 빡센 교육(전혀 인권적이지 않던)을 견뎌내고 드디어 오늘 위촉 심사를 받았다. 물론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어 그나마 하고 싶던 몇 마디 조차 휘발되어 날아 가버리고 뭔 소리를 주절거렸는지 기억도 없이 15분의 시간이 끝났다.


그리고 질문, 인식개선과 인권 교육의 명확한 차이를 볼 수 없다. 당사자로 당사자 이야기만 하면 인권이 제한적이지 않겠냐, 인권의 확장은 어디까지 될 수 있겠느냐,  라는 교육 중에 무시무시했던 박병은 쌤의 날카로운 질문에 떠듬댄 말들은 답변이 되었을지. 심사장을 나오는 가슴은 체증이 뚫린 것처럼 홀가분하다. 떨어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또 그 나름의 공부는 된 것이니.


인권, 참 어렵다.

ps. 돌아오는 길은 마음과 다르게 너무 좋다.

#인권강사 #위촉심사 #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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