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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Nov 19. 2023

익준 쌤은 정녕 현실에는 없어요?

※주의: 욕설에 가까운 의료진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의료계에 종사하신다면 거북할 수 있으므로 읽지 않으시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수술은커녕 교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시간만 지나니 엄마가 조급해하셨다. 주말이 껴있긴 하지만 수요일에 응급실로 입원했으니 벌써 4일이 지났다. 오늘, 5일째 아침에서야 교수는 빼꼼 얼굴을 내비쳤다.


엄마는 응급실에서 처치 후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복부에 관을 꽂은 후 병실로 올라왔다. 통증으로 진통제를 달고 먹고 하면서 이틀을 고생했다. 덩달아 아내도 잠을 설쳐 몸이 말이 아니다. 아무튼 어제부터 통증도 완화되고 컨디션도 오르는 중인데, 오늘 아침은 흰 죽이기는 하지만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엄마는 회진 온다는 소리에 꽃단장까지는 아니지만 손수 머리도 감고 일찍부터 교수 맞을 준비를 하고 앉았다. 궁금한 게 너무 많다. 드디어 나타난 교수는 그런 엄마 마음과는 다르게 시큰둥하다.


관은 언제 뽑는지, 수술은 언제 하는지, 결정적으로 퇴원은 언제쯤 하게 될지.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교수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엄마의 조급함을 이미 눈치챘는지 얼굴에 짜증이 한가득 담고 대답한다.


먼저 담낭을 막고 있는 돌을 빼내야 하는데, 그건 우리 과에서 하는 게 아니다. 그건 소화기내과에서 한다. 그쪽 스케줄은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거 하고 나서 담낭 제거를 해야 하는데 그게 어떻게 될지 자기도 모른다. 빨리 되는 어르신도 있지만 2달이 걸릴 수도 있다.


의사의 짜증 만렙인 소릴 듣자니 열이 확 받았다. 그래도 인내하고 아내가 대신 재차 확인한다.


"아, 2달이나? 그렇게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그럼 그때까지 입원해야 해요?"


의사는 인상을 구긴다.


"병원에 그렇게 오래 못 있지 않죠. 관을 꽂은 채로 퇴원했다가 스케줄 봐서 재입원하고 수술할 수도 있어요. 이게 그렇게 쉬운 수술이 아니에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아니라, 집에 환자가 또 있어서, 빨리 가야 하니까..."

"집에 환자가 있는 건 우리가 알바 아니고요."


이런 시베리안허스키 같은 놈의 시키를 봤나.

집에 아픈 사람을 혼자 놔두고 병원에 들어와 있는 자기 환자의 마음이 얼마나 조급하고 막막한지 헤아릴 순 없나? 그리고 그렇게 쉬운 수술이면 뭐 하러 대학병원까지 와서 이런 설움 받아 가며 몸뚱이를 맞기겠냐 이 시키야.


어려운 거, 아무나 못하는 거 아니까 비싼 돈 쳐 들여가며 너 같이 인성도 안 된 놈들한테 몸을 맞기는 거지. 다들 어쩔 수 없는 환자들이라 면허증만 가진 너 같은 놈들 돈 처벌게 하주는 거라 우리도 속상하다. 이 시키야. 너 같이 손기술만 있고 사람 위하는 가슴이 없는 놈들이 어서 빨리 기계에 밀려나야 할 텐데.


속에서 천불이 나더라고. 눈이 마주치면 속마음이 거침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아서 천장만 쳐다보고 울분을 삭였답니다. 그렇게 의사 놈들 돌아가고 나서 기운 축쳐진 엄마를 보니 눈물이 나더랍니다. 지들 밥그릇만 사수하려 애쓰는 것들이 아프고 지치고 힘든 환자들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겠냐 싶어서, 오늘도 익준이 생각이 나서 주먹 불끈 쥐고 사리 하나 조용히 만들었답니다.


집안에 의사 한 명쯤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긴 하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똥구멍으로 버렸을 저딴 의사 놈들로 키우는 것보다 차라리 안 만드는 게 인류애를 지키는 게 아닌가 싶은 하루이기도 했다네요.


전화기 넘어 아내의 분에 섞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화도 나지만 아내도 많이 힘들고 지쳤구나 싶어 마음이 아픕니다. 저렇게 힘겨운 마음으로 내일 혼자 출근해야 할 남편 걱정이 한가득이니 더 속상합니다.


#병원일지 #일상 #공감에세이 #감성에세이 #의사같지않은의사놈들 #히포크라테스선서는똥구멍으로버렸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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