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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Nov 27. 2023

선한 사마리아인이 된다는 것

상대가 원치않는 친절은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때때로 원치 않는 친절이나 과한 친절이 되레 불편한 마음을 주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니의 안부 확인차 병원을 찾았다. 유명 대학병원인지라 사람들로 북새통이기도 했지만 넓은 공간에서 휠체어 사용이 가능한 다목적 화장실을 혼자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오가다 그만 내 방광의 안녕이 위태로워졌다. 나는 긴박뇨가 있어 요의를 느끼면 5분 안에 해결해야지 아니면 부끄러워지는 참사가 벌어진다.


CCTV보다 더 빠른 움직임으로 눈과 고개를 돌리며 이 고난을 해결해 줄 이를 찾는데 혈안이 되었다. 결국,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바닥을 밀고 가는 청소용 카트를 발견, 휠체어 최고 속력으로 달려가 물었다.


"혹시 가까운 다목적 화장실이 어디 있을까요?"

"장애인 화장실이요? 저쪽 끝으로 가면 보일 거예요."


감사하다,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에스컬레이터 사이 좁은 길 끝에 있는 화장실이라니. 이러니 눈에 뜨일 리가 있나.


정면에 자동문과 휠체어 사인이 보여 빠르게 내달리다 입구 위로 조그맣게 치마 그림이 보여 멈칫했다. 여성용이다. 그럼 남성용은? 주위를 둘러봐도 또 다른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곤란함에 괄약근에 힘 한 번 빡 주고 다시 휠체어를 돌려 나오다 보니 남성용 화장실 입구가 보이고 그 안으로 다목적 화장실이 보였다.


얼른 열림 버튼을 누르니, 천지신명의 우렁찬 목소리로 "사용 중입니다."라며 입장 거부를 알렸다. 등에서 식은땀 한 줄이 주륵 흘렀다. 고장은 아니겠지, 싶은 마음에 다시 한번 열림. 다시 한번 거절의 우렁찬 알림. 자연스럽게 비어있는 여성용 다목적 화장실로 시선이 빠르게 돌았다. 갈까? 금방 나오려나? 그냥 좁은 일반 화장실로 비비고 들어가 봐? 오만가지 생각이 튀어나왔다.


"누가 있어요?"


눈치를 챘는지 미화원이 묻는다. 얼굴에 긴장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찰나,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부끄러워졌다.


"여기 여성용을 써도 돼요. 장애인 화장실이니까 남자가 써도 돼요. 들어가요. 같은 장애인이데 뭐 어때요? 안 급한가봐?"


왓! 같은 장애인? 장애인은 성별 구분도 안 될 만큼 신인류인가? 아니면 그 모든 걸 수용 가능한 강력한 프리 패스 티켓을 쥐고 있는가? 순간 당황스럽고 민망했다.


딱 봐도 남잔데 대놓고(쓰읍… 생각해 보면 대놓고 쓰는 게 은밀하게 쓰는 거보다는 낫겠다 싶지만) 여자 화장실을 써도 된다는 걸까?


내 외모에서 높은 수준의 지적 아우라가 풍기진 않더라도 사회문화적 규범 정도는 지킬 수준의 이성적으로는 봐줄 만할 텐데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너는 장애인이고, 그래서 여성 화장실을 이용해도 아무 문제 없지 않으냐?'라고 공공연하게 큰 소리로 화장실 사용을 용인하는 이 친절한 미화원은 과연 내게 선한 사마리아인인가?


마침 문이 열려 대형 참사는 없었다. 서둘러 화장실로 빨려 드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 미화원이 보인다. 그런데 나는 그의 친절이 불편했고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아서 그가 자리를 떠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가지 못했다.


PS.

그런 와중에 문(입구)과 변기 옆 2개의 개폐 장치가 눈에 띈다. 보통은 1개다. 그리고 다목적 화장실은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 오픈된다. 물론 화장실마다 열리는 시간은 다르지만. 그럴 때 화들짝 놀라서 볼일 보다 말고 휠체어에 다시 옮겨 타서 입구로 가서 다시 닫힘을 누르던지, 누군가 지나가길 기다려 일부러 열고 싸지 않는다고 항변하듯 닫아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곳은 그런 불안감을 가질 필요 없는 안심 화장실이다. 의도했다면 센스가 남다른 사람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괴로워하는 사람에 대한) 자비와 친절의 대명사이자, 계산하지 않고 상대방의 필요를 좇아서 활동하는 자선가(慈善家)를 상징한다. [출처: 네이버 Data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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