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드라마는 쭈욱 봐왔다.
얼마 전에는 tvN의 <환혼> 시리즈를 봤다.
물론 그전에도 뭔가를 보고 있었을 테고,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이번엔 ENA의 <나의 해리에게>를 봤다.
예전에 SBS의 <하이드 지킬, 나>에서
두 개의 인격을 지닌 해리성 장애를 주제로
현빈과 지성의 열연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어 출연 배우의 충성도는 낮았지만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드라마다.
반면,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은호가 사람 감정을 가지고 노는 '짓'거리에
많이 분노했지만.
아무튼 나는 다중인격 혹은 해리성인격장애를
'아픔'내지 질환으로 표현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정신장애에 관한 수많은 편견이 넘쳐나는 시대에
감기처럼 누구나 정신적 트라우마로
툭하고 튀어나올 수 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보여주는 것,
그래서 정신장애인을 무조건 격리를 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를 조금은 낮출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좀 있었달까.
그래서 내용의 순서와 상관없이 맥락도 없이
그저 마지막 회를 본 소감을 적어 보자면,
이별은 누군가는 많은 시간
천천히 준비해야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문을 닫고 나가는 것처럼
빨리 닫고 나가면 그만이다.
사람마다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
누군가는 약한 이의 피를 빨아야 직성이 풀리고
또 누군가는 불의를 보면 용기보다 누르는 데
더 많은 애를 쓰며 사는 게
현실일지 모르는 것처럼
누구나 살면서 아픔과 상처 하나쯤은
가슴에 묻고 산다.
드라마는 그렇게 서로 사랑과 상처를
쿡쿡 찔러대며 회차를 거듭한다.
결혼을 거부하는 남친에게 상처받고
무심결에 튀어나온 무의식 속 혜리로
은혜는 1/2의 삶을 산다.
그저 사는가 했는데 알고 보니 혜리는
자신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달고 산다.
그런 혜리의 삶을 은호는 살고 싶다.
그래서 사랑으로부터 도망친다.
도박에 미친 아버지 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엄마,
결국 화재로 죽어버린 아버지.
그런 불우한 환경을 탓하기보다
보은의 무게감으로 삶을 버텨낸 현오는
사랑과 행복은 별개다.
형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엄마로부터 자신은 이미 심정적으로
지워졌다 생각하는 주연은
자신의 삶에 불쑥 들어온 혜리에게
살아있음이 고마운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혜리를 사랑하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드라마가 사랑을 통해 관계의 농밀함을
전하려 했다면
나는 이 드라마가 참 괜찮다 싶다.
뻔한 사랑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관계에서 피어오르고 꼬이고 트는 그래서 사랑이
너무 어렵고 한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일깨움이 있지 않겠나.
분명 사랑은 어쨌거나 얼마간은 누군가에겐
일방적으로 뛰어드는 일이므로
은호가 현오에게
현오가 은호에게
은호가 혜리에게
혜리가 주연에게
주연이 혜리에게
그리고 지온도 은호에게
주연에게 혜연도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있음을 무척이나 공감했다.
그리고 사적인 감상을 뿌려 보자면
혜리 너무 말투가 내 스타일이었던 탓에
은호가 정신 차리면서
더 이상 혜리로 각성되지 않는 것이
조금 아니 좀 많이 아쉬웠던 건 사실이다.
주연이가 펑펑 울며 난간에 매달려 기다리겠다고
은호가가 아닌 혜리를,
아니 누구여도 상관없다고
기다리겠노라 매콤한 눈망울을 날리는 통에
안쓰러움에 몰입한 나머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알콩달콩한
은호와 현오를 보며
분노한 아내를 조금은 이해도 한다.
좋은 이별? 그건 개코같은 소리다.
역시나 좋은 이별은 하는 쪽이
마음 편하자고 짜놓은 판이고
배려도 하는 놈이 아니라 받는 놈이
편해야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어쨌거나 좁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세상을 보면서도
행복을 느끼던 해리를 알면서도 은호가
사랑보다는 이별을 더 생각 하는 건
아마도 사랑의 방향이 달라서 인 것이 아닐런지.
혜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일상이 무채색이 된 자신에게 다가온 현오가
온통 무지개색으로 채워놓았으니
아무리 혜리가 주연을 좋아한대도
은호는 은호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 말이다.
그래도 어느 날 불쑥 다시 혜리가 튀어나온데도
무섭지 않고 반가울 수 있으니 다행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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