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지옥인 두 사람이 있었다
꽤나 묵직한 영화다. 누구나 불행한 순간은 있지만 처음부터 불행한 이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잔잔하게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의 능력이 놀랍다. 시작과 끝이 이어진, 시작이 마지막이고 끝이 시작인 영화의 우직스럽고 단선인 영화에 무겁고 우울하지만 눈물이 마른 것처럼 뻑뻑해지는 영화. 어쩌면 로이가 나고 록키가 나인 누구의 불행이 아닌 우리의 불행인 영화다.
청부 조직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로이(벤 포스터)는 잦은 기침과 각혈을 하는 상태와 좀 더 정밀한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죽음'을 짐작한다. 가뜩이나 망할 인생에 찾아든 죽음은 더 낯설 것도 없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이것도 믿을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살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록키(엘르 패닝)는 삶에 대한 울분을 어쩌지 못해 울거나 절규하지만 그 어느도 듣지 못한다.
이 둘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청부 살인자 로이의 삶과 뒷골목 창녀 록키의 삶이 전혀 다르지만 묘하게 맞닿는 지점으로 향한다. 불행한 삶을 살지만 불행한 삶을 거부하지 못하고, 아니 그럴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두 사람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만큼 추락한 후에야 복수를 감행하기 위한 길에 동행한다.
록키는 어린 자신을 강간하고 아이까지 낳게 만든 새아버지를, 로이는 자신을 함정에 빠트려 죽이려는 보스를 죽이거나 협박하기 위해 떠난다. 그들에게 갤버스턴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마치고 싶었던 로이의 바람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에게 그곳은 잊을 수 없는 행복의 조각이었을까.
누구에게도 의지해보지 못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의지하고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불행한 상황을 더 불행하게 만들며 관객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들이 파라다이스를 그다지 열망하지 않아 더 아프다.
록키가 그렇게 무참히 죽지 않았다면, 아니 설사 그렇게 죽었더라도 로이가 보스의 비리를 폭로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마지막 티파니(릴리 라인하트)가 버려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을 때 우린 로이와 함께 그녀에게 더 이상 불행해 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안도한다.
우린 사는 게 지옥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