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을 찾아!
출연한 배우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유명 배우가 출연한 영화가 아님에도 입소문으로 흥행되고 있다는 이 영화는 소문이 궁금해서 보게 된 영화다.
조폭 영화라고 하기엔 다소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어쨌거나 "대가리를 뜯어 씹어 먹어버린다"라는 대사가 기억이 날 정도로 클럽과 조폭 영화는 맞긴 맞다. 다만 조폭 영화치고는 식겁할 정도로 잔인하거나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패싸움은 없다는 게 신선함이라면 신선함이다. 게다가 주인공 찬우(박해수)의 박학다식함이 기분 좋게 만들 정도다.
마약, 재벌, 검찰, 조폭들의 얽히고 얽힌 커넥션을 다룬 뻔한 조폭 영화에서 양자물리학이라는 고급진 제목은 낚시였을까? 개인적으로 영화의 제목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찬우는 어린 나이에 술집 삐끼부터 시작해 특유의 재능으로 클럽 대표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캐릭터다. 술집 종업원이라는 인간적 개무시에 좀 있어 보이려고 공부를 시작한 양자물리학의 세계에 흠뻑 빠져 자신과 파동이 맞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동료를 찾아 식구로 맞는다. 또 비운의 캐릭터처럼 보이는 은영(서예지)는 미모와 지적인 도도함으로 상류층의 로비스트로 유명세를 떨치고 찬우의 식구가 되고, 청와대를 주무르는 큰 손 백영감(변희봉)의 뒤를 캐다가 찬우와 거사를 벌이다 되려 역습을 당한다는 이야기.
"이래서 니들 같은 검사 새끼들한테는 직접 수사권 주면 안 된다니까!"
이야기는 조폭 영화의 수순을 그대로 밟는다. 조직원의 배신, 서로 물고 뜯기고 범죄자를 쫓는 검찰은 커넥션으로 궁지에 몰리고 결국 악은 멸하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다. 검은 돈을 탐하는 권력과 그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검사의 모양새가 너무 적나라해서 소름 돋았다.
그런데 이 뻔한 이야기에 양자 물리학이 파동을 만든다. 물론 찬우의 말발로 아주 가볍게 넘겨지고는 있지만 사실 양아치의 치기 어린 아는 척으로 넘겨버린 엔 묵직한 메시지를 담는다. 모든 입자(욕망을 가진 사람)는 서로의 파동을 내뿜고 그 파동은 서로에게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파동은 파장이 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하면 서로 공생적 관계를 만든다.
이 공생적 관계는 얼마든지 파동이 맞는 사람끼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지만 자칫 잘못하면 역파동이 된다. 여기에 이 파동이 장애물을 만나면 수그러 드는 게 아니라 돌고 돌아 새로운 파동을 만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배신자를 만나면 또 다른 배신의 칼이 되어 돌아간다는 말이다.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라는 찬우의 말이 다소 허황될 수 있다. "진짜 믿느냐"라는 은영의 질문에 "내가 바본가?"라고 하는 걸 보면 그도 그걸 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되지 않을 일에 에너지를 낭비할 봐에야 긍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살아보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신념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진 파동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인생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권선징악적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여러 굴곡진 파동을 만드느라 애를 쓰긴 하지만 어쩐지 뒷목 잡고 놀랄만한 반전은 터트리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정의롭고 공부하는 양아치를 내세운 색다른 조폭 물이 신선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버닝 썬과 맞물리고 한참 검찰개혁 시위 중인 요즘과 맞물리면서 아주 매력적인 영화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