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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Oct 27. 2019

틴 스피릿

들끓게는 못하지만


음악 영화에서 음악이 혹은 노래가 주는 강렬함 내지는 달콤함은 프로페셔널한가 아니면 아마추어의 날것인가가 꽤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위플래시의 강렬한 비트나 비긴 어게인의 달콤함, 인사이드 르윈의 우울함, 러덜리스의 애잔함 그리고 스타 이즈 본의 사랑스러움을 포함한 여러 영화들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실로 선물이다.


이 영화 <틴 스피릿> 역시 십 대 소녀 오디션 성장기다. 엘르 패닝이 직접 부른 노래는 후벼파진 않지만 좋다. 개인적으로 전혀 프로페셔널한 가수가 아님에도 브래들리 쿠퍼의 노래는 레이디 가가의 노래보다 더 가슴을 후벼팠더랬다.


어쨌거나 고급 진 달팽이관을 가지지 못한 탓에 남의 노래가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듯하여 노래 이야기는 여기서 자르고, 영화 이야기로 돌아간다.




십 대이면서도 십 대의 삶을 살지 못하는 바이올렛(엘르 패닝)은 학교에서도 튀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남학생이 학교 밖에서 처음 보았다고 놀라워할 정도다. 어린 시절, 엄마의 외도로 아빠가 집을 나가고 궁핍한 생활을 엄마와 나눠지고 십대가 하기엔 좀 껄쩍지근한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진창스러운 일상이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뽑아 내 버렸다.


우연히 마을에 유명한 노래 경연인 '틴 스피릿' 오디션이 열리고 친구들의 무시와 조롱에도 지역 결선에 오르는 바이올렛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퇴물 오페라 가수인 블라드(즐라트코 버릭)와 손을 잡는다. 우여곡절 끝에 본 대회에 입성하고 바이올렛을 상품화하려는 줄스(레베카 홀)와 블라드는 신경전을 벌리고 그 사이 바이올렛은 갑자기 변한 자신의 상황에 불안해한다.


© 틴 스피핏 스틸컷

아주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최종 결선을 향하는 바이올렛의 비장한 모습이다. 바이올렛이 진창이던 삶에서 도약하는 길을 보여주 듯 무대를 향해 걸어가는 길을 롱샷으로 느리게 때론 빠르게 바이올렛을 잡아끈다. 특히 비장한 기운이 감도는 얼굴로 경쟁자들을 헤쳐나가는 장면은 짜릿할 정도다. 여기에 자신의 감정을 옥죄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벗어던지듯 목걸이를 풀어 헤치고 오른 무대여서 더 그렇다. 파이널 무대의 그녀의 노래는 세상 사람들을 향한 절규다.


그토록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던 궁핍한 삶을 벗어던질 수 있고 무한 미래가 보장될 수 있었던 계약서는 결국 자신의 삶을 더욱 옥죌 수 있음을 깨달았던 걸까. 바이올렛의 인생에는 우승 트로피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싶으면서도, 줄스는 나와 함께하면 부와 명성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 묻는다. "왜 노래를 하느냐?"


"노래가 좋아서요."라는 바이올렛의 대답에서 정말 좋아하는 노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던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노래하는 건 성가대에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엄마를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준 것으로 충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 찜찜하다.


그렇게 반대를 하던 엄마는 버릴 수 없었던 남편의 상징을 딸에게 전달하며 새로운 삶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바이올렛 역시 행운을 가져다줄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 모를 아버지의 목걸이를 벗어던짐으로써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 새로운 시작은 덤이다.


© 틴 스피핏 스틸컷


성장 드라마인 이 영화는 사실 미라클 밸리에와 닮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주 진창이지만 벗어날 수 없는 궁핍한 가정의 굴레에서 유일하게 안식이 되는 것이 노래라는 점, 마을 시장에서 생계를 찾아야 하는 점과 집안일에 아르바이트까지 십대가 누려야 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 폭발적인 성장을 도울 짠하고 나타난 노래 코치에 성장하는 스토리까지.


그럼에도 서로 닮은 만큼 서로 다른 느낌이 담겨 있기도 하다. 벨리에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가족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는 성장이라면, 바이올렛은 엄마의 외도로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엄마에 대한 원망 그리고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고픈 용기를 채워가는 성장이다.


어디에서도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심지어 동네 술집 무대에서조차도 정숙한 모습으로 노래를 해야 할 정도로 위축된 바이올렛의 열정은 결국 그녀의 좁은 방에서 혼자만의 무대에서 발산된다. 우연히 자신의 노래를 진지하게 들어준 퇴물 오페라 가수인 브리의 도움으로 오디션에 참가해서 결국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는 뻔한 스토리의 전개가 민망할까 싶어 준결승에서 관객들의 허를 찌르며 탈락 시키고 우승자의 부정으로 다시 결승행 티켓을 받는 장면은 영화에서도 관객들도 환호성을 지르기는 민망할 정도로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어쩌면 감독은 그동안 바이올렛이 성장을 향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꾹꾹 누르기만 했다는 점을 탈락하는 이 장면에서 트럭 뒤에 숨어 백미러를 작살내며 절망하는 모습에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함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바이올렛은 우승했고 매니저 자리는 비었고 트로피는 그 자리에 내팽개쳐졌다. 결국 앞으로의 삶은 혼자라는 상징일지도. 영화는 음악 영화답게 OST는 함께 흥얼거리며 귀를 즐겁게 하긴 하지만 바이올렛의 열정이 들끓게 하지는 못하는 게 살짝 아쉽다.


© 틴 스피핏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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