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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규 Oct 15. 2024

고양이도 외로움을 느껴

‘띠띠띠띠띠, 촤르륵’


누군가 현관문 도어록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박제된 후 내가 집에 있을 때 저 소리를 내고 들어온 이는 소울이뿐이다. 시계를 보니 소울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아니, 소울이는 이제 학교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나는 안방의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간다. 바로 그때 실리콘으로 된 공 하나가 또르르 내 발 밑으로 굴러온다. 공을 굴려 보낸 것은 햇살의 장난감인 ‘야옹토이’다.

 

반려묘 전용의 이 디지털 장난감은 소울이가 사달라고 한 것이다. 휴대폰 앱과 연결된 공놀이 버튼을 누르면 설정해둔 소리와 함께 간식이 담긴 실리콘 공이 밖으로 굴러 나온다. 또 사냥놀이 버튼을 누르면 번쩍거리는 LED 불빛과 함께 방울이 달린 깃털이 움직이며 고양이의 시선을 끈다.

 

주인이 외출한 후 반려묘가 혼자 남겨지더라도 심심하지 않게 놀 수 있도록 고안된 스마트 장난감이다. 방금 들린 현관문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는 이 디지털 장난감이 햇살과 공놀이를 시작하기 직전에 울리는 일종의 신호음이다.

 

사실 햇살은 길거리를 떠도는 길고양이였다. 아니,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서는 모습을 보면 사람 손에서 키워지다 버려진 유기묘일 가능성이 더 높다.

 

내가 햇살을 처음 본 것은 우리 아파트 정문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정류장의 인조석 위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 뭔가 닿는 느낌이 있어 돌아보니 웬 고양이가 한 마리 내 등에 기대고 앉아 있었던 것. 따스한 고양이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아 나는 그대로 앉은 채 버스를 기다렸다.


그 후로도 햇살은 아파트 안에서 종종 내 눈에 띄었고, 나는 그 같은 목격담을 소울이와 공유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소울이가 햇살을 집으로 데려왔다. 우리 아파트 주위를 돌아다니는 유기견에 쫓겨서 물릴 뻔하는 모습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햇살은 특유의 사교성으로 집안 분위기를 단번에 바꾸어 놓았다. 햇살의 재롱에 소울이는 모처럼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햇살을 집안에 들이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그렇게 된 후 내가 소울이와 함께 활짝 웃어본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다.


“아빠, 햇살도 외로움을 느껴. 내가 집에 없으면 외로워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햇살에게 과연 디지털 장난감이 필요한지 묻자 소울이가 내게 한 말이다. 흔히 고양이는 혼자 있는 독립생활을 좋아해서 외로움을 타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건 야생성이 강한 길고양이에 해당하는 말이고, 반려견보다 사람에게 애교를 더 부리는 햇살 같은 개냥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자기가 학교에 가느라 집을 비웠을 때 아빠도 오피스텔에 가고 없으니 원격으로 야옹토이를 작동시켜 햇살을 외롭지 않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소울이는 스마트폰으로 작동시간을 예약 설정해놓고 하루에 두 번씩 일정 시간에 야옹토이를 작동시켜 햇살과 놀게 해주었다.

 

소울이가 그렇게 된 후 나는 오피스텔로 가지 않고 줄곧 집에서 원고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소울이가 떠난 날부터 이제까지 야옹토이는 단 한 번도 작동된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한 달이 지난 지금, 난데없이 야옹토이가 작동된 걸까.

 

야옹토이가 소리를 내면서 공을 굴리고 방울이 달린 깃털을 흔들어대도 햇살은 작은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소울이가 떠난 바로 그날, 햇살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소울이가 사고를 당한 후 며칠이 지난 다음에야 햇살이 없어진 사실을 안 나는 아파트와 주변 공원을 샅샅이 찾아다녔다. 그러나 햇살은 보이지 않았다.


햇살은 소울이가 없어진 것을 알고 가출한 걸까. 아니면 둘이 함께 떠나기라도 한 걸까.

   

나는 깃털을 흔들어대는 야옹토이의 작동을 중지시킨 다음 유심히 살펴본다. 야옹토이가 굴려 보낸 실리콘 공에는 간식이 들어 있지 않다. 그건 소울이 담당이었으니 당연하다. 기기의 온오프 동작이 정확히 이루어지는 걸로 보아 고장이 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온라인에서의 착오나 교란으로 야옹토이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깃털을 축 늘어뜨린 채 잠잠해진 야옹토이를 집어 들어 햇살의 캣 타워가 있는 작은방에 갖다놓는다. 햇살이 늘 드나들던 작은방도, 그 맞은편의 소울이 방도 모두 주인을 잃은 채 적막하다.


나는 안방으로 돌아와 모니터 왼쪽에 보이는 단풍이야기의 아이콘을 실행시킨다. 내 아이디로 로그인 한 뒤 친구 목록을 확인해보니 보라매날다는 오늘도 거기에 없다. 강창기의 말대로 계정이 차단된 것이 틀림없다.

 

갑자기 보라매날다가 그립다. 깡충깡충 뛰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가 다가가면 황급히 도망가는 모습이 그립다. 아니, 단풍이야기의 내 친구 목록에 보라매날다가 그냥 표시되어 있기라도 하면 좋겠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소울이를 떠나보낸 슬픔을 보라매날다를 추적하며 삭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보라매날다의 그림자가 다시 내 일상의 문을 두드린 건 3일 후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지역의 랜드마크인 케이사이니지가 해킹을 당했습니다. 오늘 오전 10시 35분경 케이사이니지에는 정상적인 광고 화면 송출이 중단된 채 ‘여기 광고하지 마’라는 문구가 갑자기 떴습니다. 업체 측은 해킹 공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며 즉시 전광판 전원을 차단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케이사이니지가 설치된 삼성역 일대는 2016년부터 ‘옥외광고물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되어 다양한 옥외광고 전광판이 설치된 곳으로서 한국판 타임스 스퀘어로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케이사이니지를 비롯한 이 구역의 전광판들에는 한류 스타들의 영상이 자주 송출되므로 해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뉴스를 듣자마자 내가 보라매날다를 떠올린 건 단순히 해킹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내 의혹의 눈덩이를 부풀리게 한 건 뉴스 앵커의 이어진 말 속에 숨어 있었다.


“이번 사고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리눅스의 창시자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해킹 당한 케이사이니지 화면에는 ‘여기 광고하지 마’라는 문구와 함께 리누스 토르발스의 사진이 연이어 노출되었습니다. 때문에 해외 해킹조직의 짓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리누스 토르발스는 1991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운영체제인 리눅스를 개발한 후 소스코드를 무료로 공개해 누구나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덕분에 지구촌의 인터넷 환경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핀란드 헬싱키대학 컴퓨터공학과 대학원생이던 리누스 토르발스는 유닉스라는 운영체제의 교육용으로 제작된 미닉스로 프로그래밍 수업을 받던 중 성능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값비싼 유닉스를 살 수도 없어서 그는 새로운 운영체제인 리눅스를 직접 개발했다.

 

그것까진 컴퓨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는 좀 달랐다. 값비싼 유닉스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운영체제인 리눅스를 무료로 공개해 버린 것. 만약 그가 리눅스를 유료로 판매했다면 아마 빌 게이츠만큼 엄청난 부를 쌓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돈을 쫓지 않고 재미를 택했다. 그가 가장 재미있어 한 일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는 자신이 개발한 리눅스를 무료로 공개한 다음 전 세계 개발자들의 손을 거쳐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희열을 느꼈다.

 

내가 이처럼 리누스 토르발스에 대해 자세히 아는 건 소울이 덕분이다. 리누스 토르발스는 소울이가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어 한 인물이다. 소울이는 리누스의 자서전인 ‘그냥 재미로(Just for fun)’라는 책을 오아시스 가운데에 꽂아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펼쳐보곤 했다. 오아시스는 소울이 책장의 별명이다. 소울이가 있었을 때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는데, 요즘 나는 소울이의 물건들을 보면 소울이가 붙인 별명부터 먼저 선명히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해킹 당한 강남 번화가의 옥외 전광판에 왜 하필 리누스 토르발스의 사진이 게재된 걸까. 보라매날다가 데리고 있는 햇살이란 이름의 노란 펫, 소울이가 자주 드나들던 게임 속 장소까지 알고 있는 점, 내 전자일기장에 적힌 문구와 유사한 메시지와 댓글. 그리고 야옹토이의 갑작스런 작동.


최근 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이상한 현상들은 모두 해킹과 연관되어 있다. 그것도 소울이와 아주 관련이 깊은, 소울이가 할 수 있는, 소울이라면 해낼 수 있는 일들이다.


아니, 다시 한 번 냉정히 짚어보자. 리누스 토르발스를 존경하는 이는 소울이뿐만 아니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이니 해커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 만한 사람이다. 햇살이란 이름도 특정 고유명사가 아니니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소울이가 좋아하던 게임 속의 특정 장소도 소울이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야옹토이의 갑작스런 작동 역시 해킹이라는 증거가 없다.


내가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소울이를 자꾸 연관 짓는 것은 어쩌면 인지편향의 한 유형일지 모른다. 그럼 과연 내 전자일기장의 문구와 유사한 메시지와 댓글은 어떻게 된 일일까. 메시지 속 ‘연빈’과 ‘박제’라는 단어의 조합을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사용할 확률은 몇 프로나 될까.

  

삼성역 전광판에 등장한 리누스 토르발스의 사진에 대한 의혹이 나의 인지편향 탓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건 이틀 후 새로운 뉴스를 보고서부터다.


“서울 삼성동에 있는 옥외 전광판 케이사이니지에 대한 해킹 사고 때 국내 최대 규모의 온라인 숙박 플랫폼인 ‘요기놀자’의 전산망도 해킹된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해커는 케이사이니지의 해킹 당시 동일 전산망을 사용하고 있는 ‘요기놀자’ 이용자 100여만 명의 숙박예약정보를 포함해 총 150만 명의 개인정보 540만여 건을 빼내 갔습니다. 케이사이니지와 ‘요기놀자’는 국내 최대 광고매체 회사인 CW미디어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CW미디어는 국내 최장수 기업 중의 하나인 CW그룹의 계열사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소식이 전해지자 ‘요기놀자’의 이용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어느 숙박업소에서 언제 묵었는지에 대한 숙박 이용내역은 사생활과 관련된 민감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피해 방지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CW미디어의 대표는 CW그룹 창업주인 고 허주철 회장의 손자다.


“법률계에서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도 다른 개인 정보유출 사건과 마찬가지로 집단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기놀자’의 제휴 숙박업체들은 해킹 사건의 파장으로 예약 방문이 거의 없다며 제휴점 탈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허재현 CW미디어 대표는 최신 보안솔루션의 도입 등 보안강화 대책을 고려 중이라며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허재현 대표.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3년 전 그의 비서가 내게 전화를 처음 걸어온 날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안녕하세요. CW미디어 허재현 대표의 비서실입니다.”


그의 전화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아내 사건의 담당형사가 미리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화를 해온 건 그가 아니라 비서였다.


“네, 민동수입니다.”


“만나 뵙고 말씀 드려야 하는데 대표님께서 좀 바쁜 탓에 전화로 먼저 인사드리는 걸 이해해주시라고 전하셨습니다. 박 형사님께 말씀 들으셨겠지만, 지금 정연주 씨가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대표님께서도 어느 정도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어서 저희가 대신 나서게 되었습니다. 정연주 씨와 합의만 해주시면 아내 분의 치료비는 평생 걱정하지 않으시게 저희 측에서 책임지겠습니다.”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해자가 힘드니 피해자가 합의를 해달라고? 치료비 걱정만 덜면 너희 따위는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식물인간이 된 피해자에 대한 걱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말투였다.

 

허재현 측에서 언급한 정연주는 섹시한 몸매와 미모로 인기가 높아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나왔던 기상 캐스터다. 그녀가 매우 힘들게 된 건 아내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허재현이 어느(?) 정도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는 건 사고 당시 정연주의 동승자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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