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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규 Oct 15. 2024

수상한 이메일 두 개

달달이가 보이지 않는다.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사육통의 뚜껑이다. 사육통에 처음 넣어주었을 때는 바닥재로 깔아둔 코코피트 속에 숨어 있었지만, 웬만큼 적응한 이후에는 뚜껑에 거꾸로 매달린 채 하루를 거의 다 보내곤 한다.


그러고 보니 달달이가 보이지 않은 게 이틀 정도 된 것 같다. 나는 냉장고에서 달달이의 배합사료를 꺼내 물에 잘 갠 후 상추와 함께 사육통에 넣어준다. 먹이를 주면 어디에 있든 귀신같이 알아채곤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 달달이의 먹이는 그대로다. 나는 달달이의 사육통을 들고 욕실로 향한다. 코코피트를 갈아주고 사육통을 청소하면서 달달이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2주에 한 번씩 코코피트를 갈아줄 때마다 사육통 곳곳에 묻은 달달이의 점액도 깨끗이 씻어준다. 또 달달이의 배설물은 보일 때마다 치워줘야 한다. 그래야 곰팡이나 진딧물 같은 벌레가 생기는 걸 방지할 수 있다.


나는 사육통을 청소할 때 달달이를 투명한 플라스틱 컵 속에 넣어둔다. 청소하는 동안 쫑긋 세운 조그만 더듬이를 움직이며 어디로 도망칠지 모르는 달달이의 탈출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코코피트 속을 뒤져 겨우 찾아낸 달달이의 상태가 이상하다. 껍데기 입구에 하얀 막이 쳐져 있고 달달이는 그 속에 숨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동면막을 친 것 같다.


동면막이란 말 그대로 야생의 달팽이들이 겨울잠을 잘 때 자신의 점액으로 패각 입구에 만든 보호막이다. 그런데 추운 겨울이 없는 사육 환경에서도 달팽이들은 가끔 동면막을 친다. 온도나 습도가 맞지 않거나 오랫동안 먹이가 급여되지 않을 경우다.

 

하지만 달달이의 사육통 환경은 그동안 내가 잘 관리해왔다. 달달이가 무슨 이유로 동면막을 치고 잠들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일단 달달이를 깨우기로 한다. 야생에서는 봄비 등으로 적합한 환경이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달팽이가 깨어나지만, 사육 환경에서는 깨어날 때를 분간하기 어려워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평평한 그릇에 미지근한 물을 아주 조금 담은 후 달달이를 놓아둔다. 동면막이 물에 불어서 자연스럽게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다. 10분쯤 지나자 달달이의 까만 더듬이가 껍데기 밖으로 스윽 나와 마치 레이더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안녕, 달달아.”


보이지 않는 동면막을 친 채 침대에 박제된 아내도 달달이처럼 그 막을 떼어내고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바람처럼 햇빛처럼 비처럼 새처럼 별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소울이도 언젠가는 달달이의 더듬이 같은 손을 흔들며 내 앞에 불쑥 나타날까.

 

나는 깨끗해진 사육통 안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달달이를 위해 음악을 튼다. 예전에 소울이의 피아노 연주를 스마트폰으로 녹음해둔 것이다. 정확한 곡명은 모르지만, 왠지 달달이도 좋아할 것 같다.


불현듯 달달이는 어떨 때 가장 행복해할지 궁금하다. 나는 그 희한한 질문을 최근에 나의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된 인공지능 챗봇에게 해본다.


‘달팽이에게 있어 삶의 낙은 무엇일까?’


그러자 챗봇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다음과 같은 문구를 모니터에 표시한다.


‘달팽이는 작고 느린 존재지만, 그들은 주변 환경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잎사귀의 맛을 즐기거나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는 등 작은 즐거움을 찾아냅니다. 이는 우리에게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고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가르쳐 줍니다.’


내 질문이 약간 이상해서인지 챗봇은 마지막을 교훈적인 말로 끝낸다.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물어본다.


‘달팽이는 무엇에서 행복을 느낄까?’


‘달팽이가 행복을 느끼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음식과 영양입니다. 달팽이는 식물의 잎, 줄기, 꽃 등을 먹으며 영양을 얻습니다. 충분한 음식을 찾고 먹을 수 있다면 그들은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안전한 환경입니다. 껍데기 안에 숨어서 자신을 보호하고,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은 달팽이를 행복하게 합니다. 다음은 동료와의 교류입니다. 달팽이들은 서로 교류하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느낍니다. 달팽이는 냉혹한 환경에서도 다른 달팽이와 모여서 번식하거나 먹이 활동을 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자연과의 조화입니다. 바람을 맞고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식물과 토양 속에 있을 때 달팽이는 조화로운 상태에 도달해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말대로라면 나는 ‘음식’과 ‘안전한 환경’이라는 행복 요건을 달달이에게 확실히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동료와의 교류’와 ‘자연과의 조화’라는 요건은 전혀 제공하지 못한다. 사육통 안에서는 바람을 맞을 수 없고, 비 내리는 소리는 물론 동료나 식물의 속삭임도 들을 수 없다. 달달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는 생각은 잠시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웅동체인 달팽이의 특성상 두 마리만 되어도 50개 이상의 알을 낳는 왕성한 번식력이 염려되어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달달이에게 해줄 수 있는 자연과의 조화는 사육통의 습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스프레이로 하루에 한 번씩 뿜어주는 물뿐이다. 늘 사육통 뚜껑에 거꾸로 매달려 시간을 보내던 달달이가 갑자기 바닥재 속으로 들어가 동면막을 친 건 혹시 이곳이 행복하지 않아서일까?

 

여름이 되면 달달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 부팅이 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이메일을 확인하는 일이다. 혹시 어디서 원고 청탁이 오지 않았는지, 송고한 원고에 대한 문의가 오지 않았는지 수시로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받은 메일함에 평소와는 좀 다른 제목의 메일이 두 개 와 있다. ‘경품 이벤트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와 ‘새로운 기기에서 로그인되었습니다’라는 메일이다. 메일을 보낸 이는 단풍이야기와 포털사이트로 각각 표시되어 있다.


나는 먼저 ‘경품 이벤트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메일을 열어본다.


‘안녕하세요. B라코차님. 단풍이야기입니다. 당사의 고객 보상 경품 이벤트에 정상 응모되셨습니다. 당첨자 결과는 6월 초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당첨 고객에게는 당첨 사실을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통해 개별 안내할 예정입니다. 당첨자 분들께서는 우편번호, 주소, 성함,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를 운영진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현물 경품의 제세공과금은 단풍이야기가 부담하며, 사양 및 외형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현물 상품 수령을 위해서는 반드시 단풍이야기 아이디가 존재해야 하며, 본인이 아닐 경우 당첨이 취소됩니다. 발송일 및 배송일정은 당사 사정에 의해 지연될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단풍이야기가 아이템 확률 조작 사건으로 인해 사과의 의미에서 경품 이벤트를 한다는 소식은 뉴스 기사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난 이벤트에 응모한 적이 없다. 아마 이번 경품 이벤트는 기존의 모든 고객들을 대상으로 진행해 나도 자동으로 응모된 모양이다.

 

다음으로 ‘새로운 기기에서 로그인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열어본다. 그런데 이번 메일 역시 약간 의외의 내용이 적혀 있다.


‘회원님의 아이디 doo*****이(가) 새로운 기기(브라우저)에서 로그인 되었습니다. 이 메일은 새로운 기기에서 로그인이 된 경우 발송됩니다. 하나의 기기라도 새로운 브라우저 또는 애플리케이션에서 로그인하면 각각 알림이 발송됩니다. 직접 로그인한 것이 아니라면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전체 로그아웃하여 타인이 로그인하지 않도록 관리해주세요.’


위와 같은 내용과 함께 메일에는 새로운 기기에서의 로그인 일시, 타입, 운영체제, 브라우저, 로그인 IP 등이 명시되어 있다.


내가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는 오피스텔에서 안방으로 옮겨온 내 PC와 스마트폰, 그리고 연구원 시절 사용하다 지금은 구석에 처박아 둔 노트북이 전부다. 최근 들어 이들 기기 외에 다른 기기나 장소에서 내가 로그인을 한 기억이 없다.

 

이런 메일은 포털사이트에서 자동으로 감지하여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다른 기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 혹시 새로운 기기에서의 로그인이 단풍이야기의 경품 이벤트 응모 확인 메일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나는 찜찜한 기분을 뒤로 하고 오늘 작성할 칼럼의 주제를 정한 다음 자료 수집에 들어간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휴대폰의 착신음이 울리면서 모르는 전화번호가 뜬다.

 

“네, 민동수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가사이버안보센터에 근무하는 한빛나리입니다.”


처음 듣는 명칭이라 확인이 필요하다.


“네? 국가사이버…, 센터요?”


“국가사이버안보센터입니다. 국가정보원 소속으로서 사이버안보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 기관입니다.”


“아, 네. 무슨 일이신가요?”


나는 원고 청탁이나 과학 관련 자문을 구하기 위한 용건이겠거니 생각한다.

 

“민동수 선생님께 협조를 좀 구할 일이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예상대로다. 그런데 이어지는 한빛나리의 말은 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건 대외비여서 선생님께서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최근에 KBSI의 컴퓨터 시스템이 해킹 공격을 받아 직원들의 개인 정보와 연구 결과 등이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나요?”


KBSI는 내가 근무했던 한국뇌과학연구원의 약칭이다.

 

“현재 저희 센터에서는 악성코드의 침입 경로를 추적함과 동시에 대대적인 악성코드 박멸작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KBSI에 근무 중인 전 직원의 컴퓨터는 물론이고 개인이 사용 중인 노트북과 휴대폰 등의 디지털 기기를 전수조사하고 있죠. 그런데 이 해킹 수법이 처음 보는 유형이어서 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퇴사한 직원의 디지털 기기까지 전수조사를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퇴사한 직원이라면 저도 포함되나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퇴사한 지 3년이 되었어요.”


“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좀 심각해서요.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용어는 공손하지만 말투는 단호하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되나요?”


“약속 시간을 정해주시면 저희 직원이 댁으로 방문할 겁니다. 선생님의 휴대폰과 노트북을 검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로 보시면 되고요.”


나는 금요일 오전으로 약속시간을 정한 뒤 한빛나리와의 통화를 끝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출연연구기관인 KBSI에서 내가 주력한 연구 분야는 뇌 오가노이드다. 뇌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길러서 뇌처럼 만든 ‘미니 뇌’를 일컫는다. 육안으로 보면 아주 작은 비정질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이 미니 뇌는 인체에서 가장 신비로운 장기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의 뇌가 일반인과 어떻게 다른지, 치매는 어떻게 일어나는지, 나아가서는 아내 같은 식물인간의 뇌는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뇌 오가노이드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연구 경쟁은 매우 치열한 편이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나라 연구진이 뇌 오가노이드 분야에서 세계 최초의 연구 성과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바로 나의 전 상사인 최석우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배양시킨 뇌 오가노이드에서 뇌파를 처음으로 감지해 주목을 끈 최 박사는 뇌 오가노이드에서 인간의 눈과 유사한 두 개의 구조물을 세계 최초로 발달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움푹한 구조물을 빛에 노출시키면 마치 실제 눈처럼 전기활동을 보이는 등 눈의 기능을 갖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 달 전에는 뇌의 서로 다른 부분을 각각 모방한 여러 개의 뇌 오가노이드를 세계 최초로 융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는 뇌와 관련된 질환을 좀 더 세밀하게 모델링해 치매 같은 뇌 관련 질환의 새로운 치료법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 언론의 메인 뉴스로 장식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단번에 뇌 오가노이드 연구의 선도 국가 반열에 올린 최 박사는 과학에 관심이 없는 국민들도 누구나 아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대통령이 직접 최 박사의 연구실을 방문해 격려했으며, 최 박사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정치권 유력인사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경찰에서는 거의 총리급에 준하게끔 최 박사를 경호하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그를 국가 과학자로 지정해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세계적인 뇌 관련 석학들의 잇따른 공동연구 러브콜이 쏟아지면서 국민들은 최 박사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대학 동기들이나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최 박사와 연구를 계속하지 왜 거길 나왔냐는 질책을 들어야 했다. 물론 그들도 내가 연구원을 그만 둔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아내가 침대에 박제됐을 때 KBSI에 사표를 냈다.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맡기로 결심한 것이다. 살림이라고 해봤자 소울이와 나 단 둘이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엄마 없이 생활해야 하는 소울이를 하루 종일 혼자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KBSI를 나온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핑계거리를 찾던 나에게 아내의 부재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구실이 된 것이다.

  

한빛나리. 특이한 이름이라 기억하기 쉽다. 나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국가사이버안보센터 한빛나리’라는 문구를 입력한 뒤 엔터키를 누른다. 신기하게도 두 단어가 서로 붙어서 검색되는 항목은 하나도 없다.

 

다시 ‘국가정보원 한빛나리’라고 입력해 검색해 본다. 결과는 마찬가지다. 혹시 내가 국가정보원 직원 사칭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이번엔 ‘한빛나리’라는 단어만 입력해 검색한다. 그러자 유튜버 등을 비롯해 그 이름을 가진 몇몇 인물과 관련된 내용이 나열된다. 그중에서 내 눈길을 끄는 내용은 딱 하나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한국 출신의 17세 소녀가 미국에서 주최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해킹대회에 솔로로 참가해 우승했다는 11년 전의 기사인데, 바로 그 소녀의 이름이 한빛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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