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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규 Oct 15. 2024

익명의 제보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서병린이라는 이름을 찾아낸 뒤 통화 버튼을 누른다.


“안녕하세요, 매형. 어쩐 일이세요?”


처남은 항상 내 전화를 반갑게 받는 편이다.


“지금 통화 가능해?”


“네, 괜찮아요.”


나는 처남에게 좀 전에 받은 한빛나리의 전화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일단 매형이 받은 전화는 국가사이버안보센터에서 한 게 틀림없는 것 같아요. 한빛나리도 제가 잘 아는 인물이고요.”


“혹시 11년 전 미국 해킹대회에서 우승한 소녀가 이 한빛나리인 거야?”


“네,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사이에서도 천재로 통하는 해커죠. 아버지 근무지인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열 살 때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을 했다고 해요. 중학교를 중퇴한 후 홈스쿨링을 하면서 혼자 공부했는데, 아이큐가 175로 알려져 있어요. A사의 I폰은 물론 국내 포털사이트의 취약점을 찾아내 유명해진 후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이 얘한테 자문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국가정보원에서 어떻게 스카우트했는지 현재는 국가사이버안보센터 최연소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죠.”


“그런데 퇴사한 지 3년이나 지난 직원의 노트북까지 원래 조사하는 거니?”


“한국뇌과학연구원이 해킹 당했다는 사실은 저도 몰랐어요. 지금 대외비인 것 같은데…, 최석우 박사 잘 아시잖아요. 아마 최 박사와 연관돼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러니까, 거기서 나온 지 3년이나 되었는데 왜 나까지 조사하는지 모르겠어.”


“아마 곧 개통할 국가융합망 때문에 국정원에서 좀 민감하게 구는 것 같네요. 전 부처 및 국가 주요 연구기관의 통신망을 양자 암호기술이 적용된 국가융합망 하나로 연결하면 아무리 솜씨가 좋은 해커들도 들어올 수 없는데, 이게 지금 거의 마무리 단계거든요. 우리 부서에도 공문이 내려왔어요. 국가융합망의 개통 전후로 해서 더욱 철저히 보안 점검을 해야 된다고요.”


처남은 지난 2008년 중동 지역을 담당하던 미국 중부사령부의 군사기밀이 외부로 유출된 사건이 일어났을 때 14개월 동안이나 진행된 대대적인 악성코드 박멸작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당시 해킹을 당한 부대뿐만 아니라 모든 미군의 컴퓨터와 외부 저장장치까지 모조리 전수 조사했다는 것. 만약 KBSI 시스템에 대한 악성코드의 침입 경로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면 예전에 근무했던 직원들의 디지털 기기까지 조사하는 게 당연하다며 나를 안심시킨 뒤 처남은 전화를 끊는다.


처남이 우리 아파트로 불쑥 찾아온 건 국가사이버안보센터 직원들이 집을 방문해 디지털 기기들을 검사한 지 3일이 지난 후다. 그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나를 아파트 놀이터로 불러냈다. 내가 다가가자 놀이터 벤치에 앉은 처남이 뒤돌아보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매형. 그런데 NCSC에서 다녀갔어요?”


“NCSC라니?”


“국가사이버안보센터에서 매형 집을 방문한다고 했다면서요.”


“아, 그래. 지난 금요일에 왔었지. 처음엔 1시간이면 된다고 해놓고선, 시간이 꽤 걸렸어.”


“그랬어요? 근데, 그 후로 혹시 달라진 거 없나요?”


“뭐가 달라져?”


“음, 예를 들면 갑자기 인터넷 속도가 느려졌다거나 이상한 문자가 온다거나. 아무튼 컴퓨터나 휴대폰을 사용할 때, 아니면 일상생활 중에서라도 뭐 이상한 점 느낀 거 혹시 없어요?”


“글쎄….”


“아무 거라도 좋으니 잘 생각해보세요.”


“별다른 거라면 이상한 이메일은 받은 적이 있어. 국가사이버안보센터에서 방문하기 전의 일이긴 하지만.”


나는 단풍이야기의 경품 이벤트 신청 확인 이메일과 새로운 기기에서 로그인 되었다는 이메일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음…, NCSC에서 다녀간 후로는 뭐 생각나는 게 없어요?”


“없는 거 같은데……. 그런데 왜 그러는 거야?”


“음……, 이건 일단 매형 혼자만 알고 계셔야 돼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처남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어간다.

 

“제가 그때 매형 전화 받고 이리저리 좀 알아봤는데요, NCSC에서는 매형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나를 의심하다니?”


“KBSI에 해킹 공격을 한 범인으로 매형을 의심하고 있다고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혹시 우리 집을 방문해서 조사한 것도 나를 의심해서야? 퇴사 직원까지 전수 조사한다는 건 핑계일 뿐이고?”


“퇴사 직원에 대한 전수 조사를 진짜로 진행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형을 주요 용의자로 보고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아요.”


“이유가 뭔데? 무슨 근거가 있을 거 아냐.”


“CW미디어 허재현 사건을 담당한 박영태의 수사 조작 비위가 드러나게 된 건 익명의 제보 때문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 제보를 한 이가 블랙 해커로 밝혀졌어요. 국과수와 파주경찰서를 해킹한 용의자 말이에요.”


“그럼 박영태의 수사 비위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란 게 모두 해킹해서 나온 거라는 말이니?”


“네, 국과수와 파주경찰서의 컴퓨터 시스템이 해커에게 탈탈 털린 거죠. 그런데 그 수법이 CW미디어 해킹 사건과 상당히 비슷해요. 거 있잖아요, 삼성동 대형 전광판이 해킹되고, ‘요기놀자’ 고객들 숙박정보가 공개돼서 난리를 친 사건요.”


주요 기관에 침입하기 위해 해커들이 주로 쓰는 수법은 가짜 사이트를 만들어 기관의 구성원들이 접속하게끔 하거나 해킹을 막는 인공지능을 잘못된 방식으로 학습시키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번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기존 방식이 아닌 처음 보는 수법으로 해킹을 당했다는 것. 또한 해킹 공격자를 역추적한 결과, 분석된 디지털 흔적이 모두 유사했다고 처남은 알려준다.


“그게 내가 의심 받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지?”


“이 해킹들로 제일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형님과 연관돼 있어서죠. 허재현은 물론이고, 최석우 박사도 그렇고…. NCSC에서는 매형이 최 박사와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퇴사한 걸로 파악하고 있나 봐요.”


“아니, 나와 관련된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심을 하다니 그게 근거야?”


“그뿐만이 아니에요. 매형이 지하철에서 당한 사고 있잖아요. 지하철 패륜녀 사건. 그때 전동차 내부에 설치된 CCTV 영상이 유출된 건 지하철종합관제소가 아니라 사건이 일어난 해당 열차에서 바로 해킹된 걸로 확인됐어요. 우리가 볼 땐 정말 말이 안 되고 특이한 케이스죠. 또 단풍이야기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조작 사건을 밝힌 보라매날다의 해킹 건도 그렇고…….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두 사건의 디지털 흔적 역시 허재현과 최석우 해킹 사건과 비슷하거든요. 물론 이 사건들까지 NCSC에서 조사했는지는 저도 알 수 없지만요.”


“……, 그래서 처남도 날 의심하는 거야?”


“의심이고 말고 할 게 뭐 있어요. 매형이 이처럼 신출귀몰한 수법으로 해킹을 할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 제가 잘 아는 걸요.”


처남은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나는 처남과 만난 이후 내내 궁금하던 질문을 조심스레 던져본다.


“혹시 소울이라면 가능해? 이 사건들처럼 수사 당국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의 해킹을 할 수 있어?”


“소울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내 말은 예를 들자면 소울이 정도의 실력이 되면 이런 해킹이 가능한지 궁금해서.”


“매형, 소울이 사부가 누구예요? 바로 저잖아요. 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걸 소울이가 어떻게 해요.”


처남의 말이 맞다. 서병린이 누구던가? 카이스트 전자공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국내외 해킹방어대회를 휩쓴 천재 해커가 아니던가. 더구나 지금은 우리나라 사이버 수사계를 이끄는 핵심 멤버인데, 그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신종 해킹 수법을 어떻게 소울이가 구현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가…….


“해커가 KBSI에서 빼내간 정보가 도대체 뭐야? 나를 의심한다는 걸 보니 최 박사에 대한 정보인가 보네.”


“네, 그런가 봐요. 지금 최 박사의 연구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잖아요. 최 박사의 연구 노트와 연구 자금 내역, 그리고  KBSI 전 직원의 신상정보까지 몽땅 털렸나 보더라고요. 정부에서는 최 박사의 연구를 향후 우리나라의 새 성장 동력 기반으로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난리가 난 거죠.”


“그럼 처남은 NCSC 직원들이 우리 집에 와서 조사할 때 뭔가 나를 감시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 갔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전화가 아닌 집으로 직접 와서 나를 여기로 불러낸 거고.”


“요즘 세상에 도청은 안 하겠지만, 이게 하도 중대한 사안이라……. 법적으로 승인을 받았다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매형을 주시할 수는 있겠죠. 아무튼 조심하시고, 뭐 이상한 점 있으면 연락주세요.”


처남을 지하주차장까지 바래다준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꽤 있다. 한빛나리는 내 노트북과 휴대폰만 조사하면 된다고 했는데, 집으로 방문한 NCSC 직원들은 안방에 있는 내 컴퓨터는 물론 소울이의 컴퓨터까지 이상한 장치를 갖다 댄 채 검사했다.


또 그들이 다녀간 이후 컴퓨터를 켤 때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화면이 잠깐씩 스쳐 지나간 것도 같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무슨 화면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전에는 본 적이 없는 현상이다.

 

그러고 보니 단풍이야기도 좀 이상하다. 보라매날다가 계정 정지당한 이후 게임은 잘 하지 않지만,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단풍이야기에 로그인 한다. 그곳에 가면 왠지 소울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다. 아니, 그냥 그곳이 그립고 편안하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로그인 할 때마다 패치 파일을 새롭게 다운로드 해야 된다는 창이 뜬다. 원래 게임 패치는 새로운 이벤트 등으로 기능을 추가하거나 버그 수정, 보안 개선 등이 필요할 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집으로 들어온 나는 곧장 단풍이야기부터 로그인 한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패치 파일을 새로 받으라고 한다. 홈페이지의 최근 공지 사항을 체크해 보지만, 새로운 패치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나는 패치 파일을 받지 않고 단풍이야기의 홈페이지 창을 닫는다.


고개를 돌려 안방 문 너머의 거실 쪽으로 바라보니 월 패드가 있다. 최근에 아파트의 월 패드가 해킹돼 집 내부를 촬영한 영상이 온라인으로 유포되면서 월 패드 해킹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거실의 월 패드는 안방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는 포스트잇으로 월 패드의 카메라를 가린다.


내가 사용하는 포털 사이트들의 이메일함도 차례차례 열어본다. 특별히 수상쩍은 이메일은 없다. 그래도 나는 스팸 메일함에 쌓여 있는 메일들을 모두 삭제하고, 받은 메일함의 메일 중에서 필요 없는 메일들은 모두 지워버린다.

 

이메일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문득 오래된 화장실 벽을 떠올린다. 그 벽에 했던 낙서 중에는 최석우와의 갈등으로 내가 했던 고민들이 분명 포함되어 있다. 최석우가 NCSC의 수사관들에게 직접 발설하지 않았다면 내가 최 박사와 갈등을 겪었다는 사실을 타인이 알 수 있는 건 ‘발자국 99’밖에 없다.


  나는 아내가 박제되기 전의 날짜를 뒤져 마침내 그날의 일기를 찾아낸다.


  2018년 7월 12일 목요일 날씨 : 흐리고 비

  제목 : 실험의 일부?     

  모든 오가노이드가 그렇지만 특히 뇌 오가노이드의 경우 윤리 문제에 대해 투명해야 한다. 인간의 의식과 인격에 대한 실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인체 조직의 출처와 획득 방법이 합법적이어야 하는데, 최 박사는 그렇지 않다. 동의를 받지 않고, 어디에 사용할지도 밝히지 않는 채취. 

  더구나 오늘은 출처도 불분명한 뇌세포를 가져와 페트리에서 배양 중인 세포에 융합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오가노이드로 커 가고 있는 세포에다 인체에서 채취한 뇌 세포를 합치면 그건 오가노이드일까 아닐까. 이것도 실험의 일부일 뿐이라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가버린다. 

  이젠 최 박사가 두렵다. 뇌 오가노이드에 대한 그의 집념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이게 과연 연구에 대한 집념인지, 개인의 명성에 대한 집념인지 모르겠다. 그가 어디까지 질주할지 두렵다.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용기도 없고 명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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