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샤펠>은 제1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조성진, 임윤찬, 손열음 등 한국 피아니스트와 더불어 인기를 누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메인 테마로 흐른다. 올해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 기념과 ‘퀸 엘리자베스 재단’의 지지로 만들어진 클래식 심리 스릴러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클래식 계의 행사이며 우승자는 평생 경력을 보장받을 수 있다.
영화는 콩쿠르 결선 앞두고 모인 12명의 결선 진출자들의 일주일을 담았다. ‘샤펠’이라 불리는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성(城)은 본선의 리허설 무대 같다. 오롯이 음악에 집중해야 하는 극한 경쟁을 만들어낸다. 철저한 방음이 되지 않아 연습하는 동안 날 서 있는 팽팽한 기싸움이 화면을 뚫고 전해진다.
예술의 한 분야에 정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다룬 <블랙 스완>, <위플래쉬>와 맥을 나란히 한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의 실제 개최지인 보자르 예술센터에서 촬영해 현장감을 높였다. 실제 피아노를 연주하는 듯한 배우의 몸짓과 표정이 압권이다. 영화는 클래식 애호가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트라우마 극복기
유년 시절 기대를 한몸에 받은 피아노 영제였던 제니퍼(타거 니콜라이)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진출하게 되었다. 엄마는 따라가고 싶다고 또 극성이다. TV, 인터넷, 스마트폰 사용이 철저히 금지. 외부와 소통이 단절된 장소라고 말했지만 걱정인지 과잉인지 한시도 떨어지지 못해 안달이다. 힘들게 홀로 뒷바라지했을 엄마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우여곡절 끝에 전 세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음악 천재들이 모여 있는 샤펠에 도착했다.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엄마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즐거웠던 몇 안 되는 한때는 아빠가 있었고, 슬프고 가여운 아빠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피아니스트는 사실 엄마의 꿈이었다. 피아노 하나 더 사지 못하는 빠듯한 형편, 자유를 꿈꾸던 아빠와 자녀교육관의 차이로 불화를 겪었다. 줄리어드에 보내려는 엄마와 그럴 돈이 없는 아빠의 갈등은 고조되고 폭력과 스트레스가 만연했다. 한창 행복해야 할 8살 제니퍼의 유년 은 상처투성이가 되어갔다.
완벽에 가까이 닿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은 지정곡과 비지정곡을 동시에 선보여야 하는 부담으로 짓누르기 시작한다. 시종일관 까만 장갑을 끼고 신경을 건드리는 나자렌코(재커리 샤드린)는 애증의 존재로 주변을 맴돈다.
숨통이 트이는 때도, 숨통이 조여 오는 때도, 모두 피아노를 연주할 때라는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 피아노와 음악이 싫은 건 아니지만 무엇을 좇아야 하는지 점차 흐릿해진 건 사실이다. 엄마의 꿈이 나의 꿈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모호함. 보호라는 명분 아래 우승을 향한 강박은 점점 광기로 짙어진다.
예술은 한계에 도전할 때 발현되기도 한다. 제니퍼가 가야 할 길은 음악으로 만들어진 무아지경이지만 높은 허들이 문제다. 대리만족을 꿈꾸는 엄마, 트라우마의 근원인 아빠, 눈에 가시인 경쟁자, 그리고 자신을 넘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영화는 1등만 추구하는 엘리트 문화를 꼬집으며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피아니스트의 심연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드디어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한다. 신들린 듯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를 마친 제니퍼는 홀가분과 아쉬움, 복합적인 심리가 몸짓과 표정으로 나타난다. 올해의 우승자가 발표되었을 때의 옅은 미소가 압권이다. 트라우마, 죄책감, 우울을 덜어 낸 해방감에 나 또한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