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 썸머>는 <로망스>, <팻 걸>, <미스트리스>를 만든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의 10년 만의 신작이다. 덴마크 영화 <퀸 오브 하츠>(2019)의 리메이크 영화다. 데뷔 이후 줄곧 여성의 도발적인 욕망과 금기를 탐구해온 감독이 자신만의 확고한 섹슈얼리티로 재해석해 제76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의붓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그리스 신화나 페드라 콤플렉스에서 더 나아간 은유가 포함되어 있다. 소재는 파격적이지만 한 인간의 욕망, 해방, 위선을 날카롭게 끄집어 낸다. 숨기고 싶은 본능을 거울처럼 비추는 통찰력에 매료된다. 누구나 사회와 가족 앞에서 자신을 포장하려는 마음을 적나라하게 직시하며 안정과 쾌락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간다.
여성과 남성을 떠나 인간은 모두 욕망에 이끌려 행동한다는 단 하나의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오래된 동물적 본능을 현대인은 도덕과 윤리, 법 등 사회적 제약에 따라 숨기고 있을 뿐이라며 풍자적 메시지를 건넨다.
의붓아들 사랑에 빠진 정의로운 변호사
안느(레아 드루케)는 청소년 분야에서 남다른 성과와 정의감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변호사다. 사적 감정을 투영해서는 안 되지만 미성년을 상대로 한 어른들의 다양한 문제적 행동에 늘 날 서 있는 전문직 우먼이다. 퇴근한 후에는 더 완벽한 슈퍼우먼이다. 살림과 육아, 남편 뒷바라지까지 똑 부러지게 하면서도 멋진 중년의 외모를 잃지 않는다. 둘 사이에는 입양한 딸 이 둘 있는데 누구보다도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아들 테오(사무엘 키어셰르)가 찾아오며 평화롭던 일상은 깨지고야 만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전처마저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테오를 갑자기 떠안게 된 피에르(올리비에 라보르딘)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아들이지만 함께 보낸 시간은 많지 않기에 훌쩍 커버린 아이와 어색하기만 하다.
어린 두 딸만 키워 봤지 한창 반항하기 시작하는 사춘기 테오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서성이기만 한다. 그와 다르게 안느는 테오까지 끌어안으며 완벽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한다. 쉬는 날이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지려 한다.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고민도 들어주며 새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가 되어보려 다가간다. 그러나 선을 넘어 버린 한순간의 착각은 권태롭던 일상에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러지 말아야 할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자꾸만 헛된 생각이 많아진다. 그럴수록 안느는 가정과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욕망과 위선의 위태로운 갈등
영화는 남편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는 충격적인 소재에도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의 영화 중 순한 버전에 속한다. 오히려 원작 <퀸 오브 하츠>가 북유럽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 날 선 풍자와 수위, 마지막 결말까지 완벽히 차가워 논란이 될만하다.
프랑스에서 제작된 <라스트 썸머>는 여름의 뜨겁고 끈적한 한 공기처럼 둘의 관계를 불쾌함과 순수함 그 어디쯤으로 설정한다. 보는 사람 각자의 생각에 따라 해석을 열어 두게 했다. 계절이 변하는 자연스러운 순리처럼 둘은 한때의 불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점점 테오가 순수한 진심에 가까워지는 반면 안느의 말과 행동은 새빨간 거짓말이자 악어의 눈물처럼 덧없이 흘러간다.
안느는 가식 그 자체다. 테오의 막말에 깊은 상처 받은 남편 피에르를 위로하기 위해 비밀을 털어놓는다. 종종 ‘나이 들어 보이냐’는 남편의 질문에 안느는 연상이 좋다며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한다. 또한 부모의 학대로 힘들어하는 청소년을 살뜰히 챙겨주고, 아이를 입양해 사회적 신망도 은근히 드러내지만 속내는 다르다. 테오가 관계를 폭로하자 돌연 거짓말로 포장해 짓밟아 버린다. 테오와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처럼 모질게 굴었다가도 테오를 다시 품에 안는 이중성을 보인다.
그래서일까. 관객은 안느의 복잡한 속내를 제대로 알 수 없다. 각자의 시선과 윤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도록 설정했다. 둘의 뜨거웠던 한때를 몇 차례 보여주지만 적나라한 몸을 오래 담기보다 얼굴을 클로즈업해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 미래 세대를 선도하는 사회적 위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는 굳은 믿음 등 겉치레에서 벗어나 순수해지는 때가 테오와의 시간임을 보여준다.
원했던 삶에 안착하자 오히려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중산층 중년의 일탈을 제대로 보여준다. 자제력을 잃고 추락할 뻔했다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는 상황도 드라마틱 하게 펼쳐진다.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큰 거짓말로 덮어 버리는 임기응변, 내로남불의 결말은 유독 오랜 여운을 남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결혼반지의 반짝임은 올해의 엔딩으로 꼽을만할 정도로 파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