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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an 12. 2019

<말모이>  순한 영화, 이런 국뽕이라면 대환영!

<말모이>  순한 영화, 이런 국뽕이라면 대환영!



영화적 퀄리티를 떠나 이런 신파, 이런 국뽕은 환영합니다. 의도 자체를 넘어 순하고 좋은 영화는 함께 나누고 봐야지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우리말의 소중함과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모든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마 한글을 포기했었더라면, 지금은 일본어로 써 내려갔을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혼자 소름이..)




생소한 어감, 말모이란?


© 우리말 어벤저스 조선어학회


1940년대는 일본의 수탈이 극에 달하던 시절이었지요. 일본은 우리의 정신을 빼앗기 위해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창씨개명하고 일본식 이름을 쓰게 했죠.이는 민족말살정책 중 문화통치로  3.1 운동 이후 무력과 강압만으로는 지배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친일파를 길러  분열을 일으키는 고도화된 식민통치방식을 말합니다.



<말모이>는 그 정점에 달해있는 1944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전국의 말을 모은 '말모이 작전'을 최초 영화화했습니다. 말모이 뜻은 1911년 주시경 선생이 한일 합병 초기 국어사전을 내기 위한 원고를 일컫는 말로 '사전'의 순우리말인데요. 영화에서는 전국적으로 우리말을 모았던 비밀작전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는 곳에 뜻이 모인다는 말모이. 듣기만 해도 '우리'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 정신과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가 반영된 예쁜 말입니다.


© 김판수와 류정환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당시 비슷한 인물들은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까막눈 김판수(유해진)를 주인공으로 말모이를 함께 만들어 간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1929년부터 조선어학회가 진행하던 사전 편찬 작업이 사투리를 모아 표준어 공청회를 거쳐 비로소 완성을 앞두고자 하는데요. 영화에서는 까막눈, 전과자, 학생, 나이와 성별을 떠나 나라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값진 의미를 갖고 있죠.



전반부는 조선어학회 류정환(윤계상)과 소매치기 까막눈 김판수(유해진)이 만나 편견을 깨고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훈훈하게 보여주고요. 후반부는 점점 살기를 들어내는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실화와 상상의 씨실과 날줄을 엮습니다.



© 순하게 크라고 순희다, 아코 귀여워!



영화에 등장하는 단어와 문학은 한글의 우수성을 확인하기 좋은 예입니다. 가위, 고추장을 뜻하는 다양한 사투리, 호떡과 민들레의 의미, 엉덩이와 궁둥이의 차이, 아내 없이 남매를 키우고 있는 판수의 사연을 알 수 있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등 흥미로운 장면으로 한글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


© 판수는 홀아비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읽고 '마누라가 생각나서..'라고 눈물을 훔치는 장면으로 사별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당연히 쓰고 있는 한글. 그래서 소중함을 모르고 지냈을지도 모릅니다. 식민지 시절 목숨보다 더 소중히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참았던 눈물이 흐르던 영화였습니다. 이런 분들은 당시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서민 영웅입니다. 도시락이든 벤또든 배만 부르면 된다고 생각하던 소시민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감행했던 용기는 영화를 떠나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에 상상력을 불어넣은 드라마틱 한 구성은 이 영화가 데뷔작인 '엄유나'감독이 직접 쓰고 연출을 맡았습니다. 엄유나 감독은 <택시 운전사>의 각본가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연출은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조선어학회와 소시민의 만남, 그리고 시대상에 녹여 낸 검증된 이야기꾼이라 다음 영화도 기대됩니다.




© 사전 편찬 일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전국 사투리를 모아 표준어로 정하는 공청회 장면이 인상적이다



물론 지금은 영화 속과는 다르게   '우리'라는 단어가 쓰일 때도 있고, 동지(같을 동, 뜻 지)의 뜻이 희석되기도 했습니다. 하물며 한글 파괴와 외래어 사용으로 국어가 멍들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말은 곧 정신이며 글은 민족의 생명임을 깨닫습니다.



© <말모이>는 상투적인 장면과 신파가 있지만그래도 예쁘고 지켜주고 싶은 영화다 (사실, 유해진 배우 팬임)



<말모이>를 보고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을 한 번 더 봅니다. 그리고  근처 삼청동에 터만 있는 옛 조선어학회표지석도 다녀와 보세요. 의미 있는 영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문 둘레에 항상 있다고 하여 민들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민들레.  민들레 홀씨는 종종 서민을 대표하는 꽃입니다. 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이룬 우리 민족으로 상징하기도 하며, <말모이>의 주제를 담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 민들레 홀씨처럼 이 영화가 여러 사람의 마음에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  <말모이>의 배급사가 롯데엔터테인먼트입니다. 일본 지분인 롯데가 이미지 세탁이든 쇄신이든 이 영화에 투자했다는 게 아리송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쥔 세력이 문화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이 영화를 만들어줘서 다행입니다. 의도야 어떻든 간에 많은 사람들의 걸음이 모여 한글 더 공고히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말모이 운동이 쭉 이어져 3월 1일까지 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요.






평점: ★★★☆

한 줄 평: 내가 무심히 한글을 쓰고 있는 소름 돋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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