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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an 14. 2019

<가버나움> 신도 버린 사람들

행복추구권은 어디에 있나?

© 가버나움, 나딘 라바키, Capharnaum, Capernaum, 2018


제대로 속았습니다! 다큐인지 극영화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자연스러움은 실제 비연기자인 길거리 캐스팅 때문입니다. 영화의 모든 인물은 해당 역할과 비슷한 환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꾸려졌으며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는 시장에서 배달하던 시리아 난민입니다.



© 감독 '나딘 라바키'가 자인 알 라피아'에게 연기지도를 하고 있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성경에 등장하는  마을 '가버나움'을 제목으로 지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염두 해 놓은 주제인 아동 학대, 난민 문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서류(예를 들면 출생등록증) 등을 나열하다가 생각했고, 각본을 쓰기 전에 제목 가버나움을 정했다"라고 말했죠.



우리 안의 가버나움은  과연 어디일까?

© 영화의 모든 인물은 비연기자다. 그렇게 진정성과 현실감은 배가 된다



'가버나움'뜻 은 예수가 멸망을 예고한 성경 속 마을로 지금은 지옥이나 카오스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버나움> 속 등장인물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신에게 생지옥을 보고 있냐는 항의 같았고,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출신 계급을 향한 자해 같았습니다.



영화 포스터만 보고 속지 말아야지 했는데, 밝고 따스한 파스텔톤과 아이들의 눈망울에 또 한 번 속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많은 결심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던 영화였습니다. 내가 어른이라는 게 부끄럽고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작년 똑같은 속임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어느 가족> , <아무도 모른다>와 같은 결을 하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신도 버린 사람들

© 아이의 눈으로 잔혹한 현실을 보는 내내 불편하고 미안한 영화다


세상에 존재조차 증명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죽음을 향해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나아질 기미도, 희망도, 그래서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는 절망의 늪입니다. 결코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신도 버린 사람들이니까요.  


그렇게 태어난 자인은 유령 같은 존재입니다. 부모의 삶을 물려받은 자인과 동생들은 무능력하고 아이를 돌보지 않는 부모 탓에 거리로 나와야 했고, 각종 범죄와 위험에 노출된 채 하루 벌어 하루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힐은  불법 체류자에  미혼모이기까지 한 또 다른 하층민이며, 자기 보다 더한 처지의 자인을 돌봐줍니다.


© 자인은 부모를 고소하고 싶다고 한다



자인은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다고 합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했고, 돌보지 않아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아이의 입에서 듣는 거친 말은 가슴의 비수로 꽂힙니다. 과연 자인의 부모를 무조건 비난할 수 있을까요? 죽을힘을 다해 사는데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힌 사람들을 구제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영화를 보고 난 후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과 싸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대로 사는 어른이 되어야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 영화는 난민, 불법체류자, 아동학대 등 사회 이슈를 다뤘다



한 컷도 웃지 않았던 자인은 태어날 때부터 웃을 줄 모르는 아이 같았습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마지막에라도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 미소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동반되는  엔딩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의 엔딩 크레딧에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실제 자신의 삶을 스크린에 구현한 자인, 라힐, 요나스의 근황이 궁금한 관객은 결말 후 자리를 떠나지 말길 바랍니다.



© 영화 <가버나움>


덧, 이 영화는 멀티플렉스에서 되도록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엔딩의 감정을 추스를 새도 없이 야속하게 켜지는 조명 탓에  여운을 침해받을 수 있으니까요. 영화를 본 뒤 오랫동안 감정의 우물이 생겨 글을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영화지만 두 번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올해의 영화, 올해의 연기로 손꼽을 정도로 파장이 큰 영화기도 합니다. 작고 어리지만 그 몸에서 느껴지는 힘과 카리스마에 압도당할 준비가 필요한 작품입니다.




평점: ★★★★★

한 줄 평: 세상에서 가장 벅찬 엔딩,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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