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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an 16. 2019

<일일시호일> 매일 매일 좋은 날은 무탈한 하루다

© 일일시호일, 오모리 타츠시, 日日是好日, Every Day a Good Day, 2018



작년 별세한 배우 키키 키린의 유작인 <일일시호일>. 자연스러운 연기의 '키키 키린'과 청량한 매력의 '쿠로키 하루'가 만나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이 느껴집니다. 20-30대 여성이 특히 공감할 듯한 내용이 빼곡합니다. '나도 다케다 선생 같은 멘토가 있었으면..'하고 괜스레 부럽고 찡하기도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연할 때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음을 다독이는 위로 같았으니까요.





© 노리코는 사촌 미치코와 우연히 다도를 배운다



영화 <일일시호일>은 다도(茶道)를 통해 인생의 맛을 배웁니다. 스무 살인 '노리코(쿠로키 하루)'가 우연히 시작한 다도를 통해 일상을 서서히 만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도는 생각보다 형식과 절차가 까다로운 일이었습니다. 삐걱거리고 답답한 일의 연속이었지만,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비울 수 있었습니다.


© 다도가 이렇게 형식적인지 처음 알았다



영화 속에는 온난화로 경계가 느슨해진 24절기를 다실에서 느껴볼 수 있습니다. 차(茶)와 24년을 보낸  반복되는 24절기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 있습니다. 덥고, 습하고, 춥고, 시원한 계절 변화를 오롯이 느끼는 것.  절기가 바뀔 때 들리는 빗소리, 바람소리, 내리는 눈의 질감과 감각의 변화. 좋은 것을 많이 보고 감각을 키우라는 다도 선생의 조언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노리코는 남들처럼 살려고 했지만,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가르치다 보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말이 용기를 줍니다.


© <일일시호일>은 키키 키린의 유작이다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




너무 많은 정보와 빠름 사이에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알아가는 일이 요즘 같은 시대에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봅니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작지만 큰 행복임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무탈한 하루를 보내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도 반복되는 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노리코는 남들의 기준에 맞추기 보다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찾게 된다



제일 추운 절기 입춘(立春)을 사람들은 봄의 시작이라 말했습니다. 이는 봄을 고대하며 추위를 잊고자 한 옛사람들의 지혜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남들의 성장 속도보다 더디다고 느낄 때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당신은 지금 입춘의 코앞에 있습니다. 시작하기 위해 움트는 준비를 조금 길게 하고 있는 것일 뿐, 실패는 아닙니다.  매일매일 좋은 날이길 기원하며, 당신의 봄을 응원합니다!





© 영화 <일일시호일> 시사회 '오모리 타츠시'감독과 배우 '최희서' GV



덧, 한국에서 본인 영화가 처음 상영한다며 내한한  감독 '오모리 타츠시'는  동명의 원작을 친한 프로듀서와의 합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원작에서는 다도 선생님과 툇마루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과, 사촌 미치코(타케 미카코)와 바다나 계곡을 가는 장면은 없지만 두 사람의 관계선과 배우의 조합을 위해 넣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일본의 전통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음악만은 전통음악을 하기 싫었다며 다도와 노리코의 반생을 다룬 만큼 노리코적인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노리코와 사촌 미치코의  통통 튀는 상큼함이 기분 좋은 영화입니다.



© 차와 다과를 마음껏 눈으로 즐겨 볼 수 있는 영화다


다도는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것이라 합니다. 다실에서 보는 계절의 변화와 우리의 삶도 닮아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매일매일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이 되는 것이겠지요. 보내주기 싫은 '키키 키린'의 생활연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영화라는 게 안타깝지만 곧 찾아올 봄처럼 해사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만들어 줄 소확행 영화로 강력 추천합니다.


영화 <일일시호일>은 일본에서도 현재 개봉 중이며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들었다고 합니다. 원작 또한 40만 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로 순항 중이라고 하네요. 원작 에세이는 '모리시타 노리코'의 대표작이며 실제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평점: ★★★★

한 줄 평: 차 한 잔에 녹여 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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