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장cine 수다

<슈퍼 해피 포에버> 5년 전 잃어버린 모자 찾아요

by 장혜령

영화 <슈퍼 해피 포에버>는 5년 전 휴양지에서 만난 아내를 잊지 못한 남편의 가슴 아픈 연가(戀歌)이자, 팬데믹을 버티고 지나온 인류를 향한 다독임이다. 불만 가득한 민폐 남성이 휴양지를 휩쓸고 다니지만, 후반부에 밝혀지는 안타까운 사연은 그를 이해하고 나를 꾸짖는 신기한 경험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유독 끌렸던 영화다. <슈퍼 해피 포에버>는 서두르지 않고 언제까지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건지, 상실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담담한 어조로 묻고 있었다.


쉬러 가서 오히려 화가 난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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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종일관 무력감으로 가득한 사노(사노 히로키)를 비춘다.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고 일상이 파괴되어 버렸다. 친구 미야타(미야타 요시노리)와 5년 전 아내 나기(야마모토 나이루)와 사랑에 빠진 해변을 다시 찾았다. 미야타는 실의에 빠진 친구를 기꺼이 위로해 보지만 쉽게 가닿지 않는다.


두 사람은 추억의 레스토랑과 유람선을 찾아다니며 2018년을 곱씹으려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휩쓴 자리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지금 묶고 있는 리조트호텔마저도 폐관을 앞두고 있다. 모든 상황이 5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미야타의 간절한 기대와는 다르게 사노는 괜찮아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사노는 돌발행동을 자주 했다. 해변을 거닐다 불현듯 5년 전 잃어버린 빨간 모자를 찾아 헤매고, 택시 기사에게 갑자기 화를 낸다. 해변을 지나던 가족에게 무례하게 모자의 출처를 묻거나, 카운터 직원에게 5년 전 분실물 목록을 체크해 달라 떼쓴다. 며칠 동안 이런 일이 반복되던 중 사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허밍에 이끌려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그때는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북적이는 공간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과 여유로운 움직임이 나른한 행복을 안겼다. 리조트 로비에서 졸고 있던 사람이 핸드폰을 떨어트리려는 순간 나기와 사노는 잠결에도 부여잡는 장면을 동시에 목격한다. 이후 두 사람은 유람선에서 마주치며 급속도로 친해져 호감을 쌓아간다. 둘만의 데이트가 되어버린 소중한 시간, 빨간 모자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잃어버린 건 모자일까,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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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기억은 희미해지겠지만 영원히 잔상으로 남는 감정은 잊히지 않는다. 빨간 모자는 5년 전 사노가 나기에게 선물한 물건이자 사랑의 징표다. 평소에는 물건을 잘 잃어버렸던 나기는 소중한 모자를 잃어버려 정신없이 해변을 배회하다 이내 포기하고 만다. 5년 후 사노도 나기처럼 같은 공간을 떠돌지만 허탈함만 확인할 뿐이다. 그에게 모자는 핑계일 뿐 아내라는 행운을 다시 만나고 싶은 의도인 셈이다. 잃어버린 모자, 떠나간 아내는 결코 돌아올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겠지만 마음속에서는 윤슬처럼 영원할 것이다.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바비 대린의 beyond the Sea는 사노의 마음을 대변하는 주된 테마다. 가사를 곱씹어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떠나는 항해는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연인과 재회하고 싶은 소망을 표현한 남성은 바다 너머로 떠난다. 떠난 연인과의 물리적 거리(죽음)와 정서적 연결(음악)은 바다를 통해 이어진다.


사노가 나기와 만난 장소를 다시 찾은 이유도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재회하고 싶은 소망의 일부다. 모자에 집착하는 것도 상실을 받아들이는 태도 중 하나다. 모자는 사물이고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기억을 또 다른 누구에게 전이되고 다른 형태로 치환되어 끝없이 전해진다.


사실 모자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베트남 직원 안(호앙 느 꾸잉)에게 당도했다. 나가가 5년 전 안에게 분실물 습득을 부탁했던 탓이다. 슬픔에 잠긴 사노가 안이 흥얼거리는 노래(beyond the Sea)에 이끌리는 이유도 나기와 쌓았던 기억의 조각의 일부 때문이다. 따라서 안과 사노, 나기 셋의 인연은 영원하다.


로맨틱한 무드의 아날로그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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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행지에 핸드폰을 두고 온 나기를 통해 아날로그 감성을 깨운다. 바로 이미지를 볼 수 없는 필름 카메라의 기대, 연락처를 종이에 적어주는 따스함, 빈티지 모자의 생활감, 연락이 되지 않아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리움이 <슈퍼 해피 포에버>의 주된 감수성이다. 팬데믹 이후 상실을 향한 감각을 일깨우며 독특한 반향을 불렀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이상하게도 두 영화가 떠올랐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휴양지를 찾는다는 설정이 비슷했지만 전혀 다른 톤으로 접근한 <퍼스트 라이드>와 죽음으로 사라진다고 해도 연결된 감정과 기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겹쳤다. 상실을 주제로 떠올리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까지 이어졌다. 밝은 미래를 보장받지 못해 불안한 미래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고민도 은은하게 깔린다. 영화 한 편이 주는 사유는 끝이 없다.


또한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적인 경험이 자연스럽게 겹쳤다. 인류 전체를 공포와 절망으로 밀어 넣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나간 후 세상은 지각변동을 겪었다.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치관, 습관, DNA까지 바꿔 놓았다. 코로나를 견뎠지만 관람객이 급감한 휴양지의 한적한 모습은 과거의 찬란함과 대비되고, 어쩐지 쓸쓸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비대면이 디지털 시대를 앞당겼지만 오히려 인류애는 옅어졌음을 피부로 느낀다. 재난이 지나간 후 일상을 되찾았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가족, 스킨십, 모임 등 함께 모여 나누는 무형의 기쁨을 빼앗겼다. 제목 ‘슈퍼 해피 포에버’가 뜻하는 영원한 행복이란 제목이 짓궂게 다가온 이유다.


세상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아내를 잃고 사노의 마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심리 변화를 겪을 것이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치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 믿는다. 극한 성장통은 인간을 또 다른 희망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 줄 테니까. 사노에게 말해주고 싶다. 모자를 잊고 새 삶을 살아가라고,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는 소우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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